활동하고 있는 독서회는 도서관 소관이다. 이는 지역 시민들의 인문학적 소양을 향상하기 위한 일종의 수업이다. 그 앞에 붙은 호칭이 영 맘에 안 든다.
'주부 독서회'
평일 오전 10시에 도서관에 모일 수 있기 가장 만만한 사람이 주부인 건 인정. 주부는 인구로 보면 많지만, 때로는 조롱이나 폄하의 대상이 되기도 하니, 그런 인식에 대한 배려라면 인정.
이 정체성에 대해 반대하는 이도 있고 별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독서회로 무언가를 해보려고 시도할 때는 짚어 넘어갈 필요가 있었다.
- 저는 주부 독서회라고 호칭하는 건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시작은 그랬지만 점점 그것을 벗어나고 결국 초월하는 '지향'을 보여주는 거죠.(나)
- 굳이 주부라고 할 필요가 있을까요? 저는 제가 주부라는 정체성 안에 갇히는 건 아니라고 봐요.(A)
six weeks later...
- 윈터가 BTS 정국이랑 사귄대요.(나)
- 나 윈터가 누군지 정국이 누군지 모르겠어. 누가 누군지 구별이 안 가.(B)
- 그게 관심이 없어서 그래요. 다들 얼마나 다른데요? 꼭 우리를 누군가 개인으로 봐주지 않고 '아줌마'라는 덩어리로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구요.
- 아줌마가 사실인데 뭘.(B)
- 그래도 남들의 시선을 무시할 수 있나?(A)
나는 40대 어떤 각성을 한 후(그랬다고 슈퍼맨이 되는 건 아니었고 책을 좀 더 많이 읽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아줌마'라는 덩어리로 판단되는 것에 대한 불만이었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데 그런 부분에 대한 인정이 전혀 없었으니까.
물론 지금은 나의 정체성 중 하나로 '아줌마'라는 부분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나를 개별적으로, 그러니까 하늘 아래 유일한 존재로 바라봐줄 존재에 대한 열망이 사라진 건 아니다. 더 절실해졌다. 아줌마라고 뭉뚱그려 나의 개성이 무시된다는 점에서 '노바디'고, '지금의 나', 그러니까 나만의 시선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나는 좀 더 특별한 존재, '썸바디'다.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읽고 있다. 거기서 쉽게 말해 우리나라보다 잘 사는 나라에선 현지인으로 보이고 싶어 하고 그러지 않은 나라에선 관광객으로 보이고 싶어 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끄덕끄덕. 현지인은 노바디고, 관광객은 썸바디다.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여행지에서 노바디가 되어 '예의 바른 무관심'을 받고 싶을 때 있다. 어떤 때는 썸바디로 '존중과 환대'를 받고 싶을 수 있고.
한 사람의 입에서(그게 A든, 나든) 이율배반적인 말이 동시에 나올 수 있는 건 우리가 그만큼 비이성적이고 역설적인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무리 속에서 녹아들고픈 마음 사이에서 우리는 오늘도 그 역설을 살아내고 있다.
* Pixabay로부터 입수된 Vilius Kukanauskas님의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