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최후의 파라오 프사메니투스는 펠루시움 전투에서 패배한 뒤 적국 페르시아의 캄비세스 황제가 있는 곳으로 연행되었다. 그가 지나갈 때 제일 먼저 딸이 노예가 되어 나타났는데, 그때 파라오는 침묵을 지켰다. 다음에는 형장으로 끌려가는 아들이 나타났는데, 그때도 파라오는 동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기를 모시던 시종들 가운데 하나가 두 손을 사슬에 묶인 모습으로 나타나자 프사메니투스는 흐느껴 울면서 자기 운명을 매우 과격하게 한탄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나오는 이야기다. 벤야민이 '이야기꾼 에세이'에서 여러 번 언급했고 책의 뒤편에 실린 에른스트 블로흐, 미셸 드 몽테뉴의 글에서도 역시 소환된다. 파라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것만큼이나 어떻게 이 이야기가 여러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는지가 궁금해졌다.
책에 나온 이유도 납득이 됐고 모임에서 지인들이 한 대답도 그럴싸했지만, 찜찜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때 기억 속에서 떠오른 건 10여 년 전에 있었던 아이의 재롱잔치. 그때 나는 아이의 재롱이 우스워서 자꾸 웃음이 났다.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아이는 귀엽고 기특한 데에서 나오는 웃음이었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눈물이 났다. 저 아이들이 저렇게 공연하기 위해 얼마나 연습했을까? 또 여럿이 만들어내는 조화로운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관광지에서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한 각설이를 볼 때도 나는 우습다기보단 자녀가 저 모습을 보면 얼마나 억장이 무너질까 싶었다. 이런 남들과는 조금 다른 감정의 메커니즘이 프사메니투스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마지막 파라오의 이야기가 이렇듯 회자되는 것은 이것이 생각을 시험하는 장치, 일종의 사유의 시험석이기 때문이다. 벤야민이 말하는 이야기꾼은 끝내 설명하지 않고 어떤 교훈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런 취지에서 프사메니투스 일화가 이야기의 전형인 것이다. 나 역시 딱 떨어지는 답이 없으니 계속해서 마음에 남아 지인들에게까지 조언을 구헀던 것이다. 이야기의 기능인 전승성이 그렇게 확보됐다. 그리고 경험을 남긴다.
벤야민은 경험을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곧바로 소모되는 경험(에어레브니스)과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의미를 얻는 경험(에어파룽)으로 구분했다. 벤야민은 후자를 전승시키는 것이 이야기꾼이라고 보았다. 요즘 출판계에 인기를 얻는 직업을 다룬 에세이들 다수, 공모전에서 요구하는 수필도 모두 에어레브니스에 가깝다. 재롱장치에서 내 아이를 보고 감동하고 각설이의 공연에 웃는 게 맞았지만 감정은 지금-여기가 아닌, 조금 비켜선 자리에서 도착하는 것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타인과 달랐던 나의 감정 메커니즘을 이해하자 책 전체에서 여러 번 언급되는 소설 '감정교육'(구스타브 플로베르)도 떠올랐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어슴프레나마 알 것 같아 등줄기에 삐죽 소름이 돋았다. 플로베르는 '감정교육'에서 의도적으로 어떤 설명, 해석, 결론도 주지 않는다. 책의 분량은 많은데 특별한 사건이 없고 이해할 수 없으니 읽기 힘들 책일 것이다.
요즘 쇼츠는 10여 초 만에 이해하고 공감하고 스와이프 하게 만든다. 이런 시대에 설명되지 않고, 늦게 오는 감정을 견디기는 쉽지 않으리라. 비효율적이라고 판단도 피하기 어려울 게다. 이 설명되지 않음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벤야민은 말하고 있는 것인데 뭔지 모르겠으면서 동시에 알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랄까?
나는 십 년 넘게 하나의 독서회에 몸담고 있다. 그곳에서는 우리의 이야기는 책을 소재로 어디까지고 뻗어 나간다. 술 한 방울 없이도 3차까지 수다를 떠는 건 책이라는 공통점에서 끝나지 않는, 어떤 감상 때문이다. 헤어지고 난 후에도 계속 생각나는 어떤 것이 분명 조금은 포함되어 있다. 커피숍이 현대판 광장의 노릇을 하는 것처럼 이런 관계가 현대의 이야기꾼 노릇을 할 수도 있겠다. 우리는 각각은 이야기꾼이 되지 못하겠지만, 이야기꾼 같은 시간을 만들어내는 관계를 맺고 있다.
책 내용이 어려워 많은 부분, 많은 시간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읽었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입장에서 생각이 이리저리 뻗어나가는 재미난 경험을 했다. 안갯속인 것처럼 여전히 오리무중이지만, 이런 느낌이 바로 '이야기'라는 걸 떠올리면 위로를 받는다. 에움길은 '에워서 돌아가는 길'로 지름길의 반대다. 이 책 역시 에움길을 돌아 내게 또다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