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사는 법
어떤 생각들은 안개처럼 내 주위에 가득하지만 미처 그 존재를 깨닫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어떤 깨달음이 떠오르면 그 안개가 가연성 기체라도 되는 것처럼 서로 조응하여 내 안에서 번쩍 번개가 친다.
얼마 전 나는 불현듯 다짐하고 말았다. 내년엔 나로 살아야겠다고.
올 한 해 많은 성과를 거뒀다. 주위에서 그동안 열심히 해온 결과라고 했고 나 역시 그간 꾸준히 해온 과정을 잘 알기에 그 평가 앞에 당당할 수 있었다. 처음엔 가슴이 웅장해지기도 했고 부끄럽기도 했던 '작가'라는 호칭도 어느새 자연스러워졌다. 게다가 올해는 공저를 포함, 3권의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나는 하나의 정체성을 더하며 여전히, 그리고 계속 글쓰기의 영역 안에 있다.
동시에 지금 가진 행복이 너무 좋아서 불안해진다. 잃어버릴까 봐. 그리고 어떤 일을 했을 때 나중에 '글로 쓰면 좋은 소재가 되겠다' 내지는 '글 쓰는데 도움이 되려고 한 거냐?' 같은 오해 아닌 오해를 산다. 꼭 그저 만나고 싶어 연락했는데 보험상품을 팔려고 그러나? 미리 경계받는 보험 컨설턴트가 된 기분이다. 게다가 '앞으로 더 쑥쑥 성장할 거다'같은 축복의 말도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지금의 모든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또 꾸준히 거만해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노력과 별개로 부담은 역시 부담이다.
아마도 그래서 머리를 든 바람일 것이다. 작가도 아닌 독립출판업자도, 블로거도 아닌 나로 살기. 그런데 나로 산다는 건 뭘까? 셋 모두가 나의 정체성의 일부라서 그것들을 떼어낸 나를 상상하기 어렵다.
나로 살고자 하는 건 저런 정체성의 거부가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나를 향한 주위의 기대를 벗겠다는 다짐인지도 모른다. 내가 말하는 것만큼이나 타인의 말을 들어주는 걸 좋아하는 게 글의 소재를 모으기 위한 염탐이 아니듯, 앞으로 놓인 내 시간을 직선 위에 올려두고 싶은 마음도 없다. 원할 수 있다면 그 미래에 지금의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길 바란다.
나답게 산다는 건 지금 내게 부여된 정체성의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로부터 조금 거리를 둔 시간들을 확보해야 한다. 일부러라도 확보하기 위해 애쓸 필요가 있다.
결국, 나는 직선으로 자라나기 보다도 더 깊어지고 싶은 사람인 걸까?
그렇다면 생산적이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 놓이고 그것에 집중하면 될 일이다. 그건 역할로서의 나가 아닌 상태로서의 나.
며칠 전에 새로 개관한 도서관을 방문했다. 나는 1층부터 3층까지 천천히 둘러보고 사진으로 기록을 남겼다.(무음 촬영) 이후 좌석을 잡고 책도 읽고 글도 쓰면서 2시간이 넘는 시간을 몰두했는데 이때가 내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 날을 블로그에 포스팅했다. 도서관에 관한 정보와 소감, 촬영한 사진이 주요 내용이었다. 이후 나의 소소한 행복은 포스팅에서 한 두줄에 그쳤다.
어떤 일을 해도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글로 쓸 일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오랜 글쓰기 생활로 뇌구조가 그렇게 되어버렸으니까. 그러나 내가 확보한 행복한 시간에 머물며 만족감을 느낀다면 충분히 나답게 살 수 있으리라. 새로운 다짐을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 몰라 안개처럼 뿌옜던 머릿속이 순식간에 개운해진다. 내년에도 나로 잘 살 수 있을 거란 예감에 초록 불이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