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의 장례식과 1번의 결혼식

by 은섬

주위에 최근 아버지를 잃은 이들이 많다. A는 지난봄 아버지의 암 소식을 전해 들었는데, 두 달 후 그가 돌아가셨다. 그 일이 있기 전 A의 글에서는 어머니가 자주 등장했다. 나와는 반대여서 신기하단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아버지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데 아마도 이 일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오직 아버지가 주인공인 글을 쓰는 일은.


B는 고령의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다. 이미 아흔을 넘기신 나이였기에 B 역시 언제고 마음속에 아버지를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한들 어느 자식에게 아비의 죽음이 황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마지막 밤 아버지 방의 불을 끄며 잘 주무시란 말을 하지 못한 걸 B는 두고두고 후회했다.


C 역시 아버지의 말기 암 소식을 들었는데 실제 사망은 병원에서 예고한 시간보다 훨씬 빨랐다. 3주 만이었다. 입관할 때까지만 해도 눈물이 나지 않았는데, 화장을 한 후 유골함을 받아 들었을 때의 마음이란. 아직 온기를 품은 유골이 아버지라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그는 젊어 술을 좋아하셨고 폭력적이었다. 그런데도 C는 아버지에게 해주지 못한 것만 생각이 났다.


그런 연이은 부친상 소식 중에도 누군가는 결혼을 한다. 지난 주말에 다녀온 결혼식에 주례는 없었지만, 화촉 점화나 혼주석 등은 변함없었다. 다행히 양가 혼주석은 빈자리가 없었고 대타도 없었다. 버진로드 너머에서 조용히 결혼식을 지켜봤다. 내가 부모라면 내 아이에게 또 새 식구에게 뭐라고 말해줄지 고민했다. 내 아이에겐 '잘 살아', 새 가족에겐 '고맙다' 그 말밖엔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단순해서 더 돋보이는 진심이었다.


지인의 부친상 소식을 들었을 때나 누군가의 새 출발을 보면서도 눈물이 났다. 나이가 들면 눈물샘이 느슨해진다더니 나도 그 전철을 밟고 있다. 눈물이 찡 올라올 때 가만히 그 감각을 관찰했다. 코끝이 시큰해 그게 찌르듯 얇고 날카로운 감각이라고 생각했는데, 시작은 그럴지라도 그 고통은 면적을 넓히며 짙어졌다. 경상도 사투리로 '우리하다'가 비슷한 감각일 것이다. 눈물이 각막을 가리듯 슬픔의 장막이 내려온다.


A와 호프집에서 아버지 얘길 했다. A의 글은 아버지에 대한 연서인 동시에 그를 이해하려 애쓰는 발버둥이었다. B는 아버지를 생각할 때 (스스로 아는지 모르겠지만)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짓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C는 어린 시절 아버지 때문에 괴로웠을 테다. 그런데 아버지를 잃은 슬픔과 고통은 닮아 보였다. 자식들은 참으로 부모를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구나! 사랑하려고 애쓰는구나!


어떤 부모들에게 자식 사랑은 애씀을 필요로 하는 영역이 아니다. 그저 아이를 키우는 일상 속에 있다보면 아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지도. 그래서 선인들은 ‘내리사랑’이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두 사랑은 그저 방향만 다른 게 아니라 가진 결과 무게가 다르다. 이해하고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쪽은 자식일 경우가 더 많을 것 같다. 그 마음엔 자신도 자녀에게 이해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바람이 있을까.


부모 자식 간의 모습은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다 다르다. 그래도 일반적인 게 있다면 그 둘 간 사랑의 역학이다. 나는 그저 그런 관계가 왠지 서글프고 안쓰러워서 눈물이 났다. A와 앉은 곳이 어두침침한 호프집이어서, 눈물을 들키지 않을 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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