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의심했다. 전화벨 소리가 울리는 폰의 화면엔 아주 낯설면서도 동시에 아주 익숙한 이름이 떠있었다.
그는 내 지인과 동명이인이었다. 성이 다를 뿐 이름이 같아서 과거엔 김 OO의 전화가 오면 내가 좋아하던 정 OO이 전화한 줄 알고 괜히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그런 그와 연락이 끊긴 지도 어느새 2년 반이다. 그 덕분에 오랜만에 폰에 뜬 그 이름을 김 OO인데, 내가 정 OO으로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했다.
왜 전화가 왔지? 무슨 일이지? 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나의 '여보세요?'에 상대도 '여보세요?'로 응수한다. 목소리 만으로 과거 속의 인연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내가 아는 OO 언니 맞으세요?"
"내가 아는 OO 씨 맞죠?"
수회가 속의 목소리에 장난스러운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그는 정말 정 OO이 맞았다.
그가 내게 연락을 한 사연은 그랬다. 시를 배우러 옆 동네 도서관에 갔고, 그 수업의 선생님인 시인이 이번에 동인지를 냈다면서 시집을 건넸다고 한다. 그리고 표지에서 출판사 이름을 봤는데 내 1인출판사 이름이었던 거다. 반가워서 전화를 했던 것이다.
변명처럼 그간 왜 연락을 못했는지 이유도 들었다. 갑자기 여러 가지 질병이 찾아와서 연락할만한 상황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그가 어릴 적부터 많이 아팠던 것이 떠올랐다. 그래도 나와 연락하고 지낼 땐 건강을 염려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어쩌면 겉으로만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아팠다니 이해가 됐다. 그렇지만 어차피 연락이 끊겼을 때부터 그를 미워하는 마음은 없었다.
다음에 한 번 보자는 말로 전화가 끊어졌다. 그 말이 얼마나 무의미한 말인지 잘 알고 있다. 한국인에게 그건 그저 인사치레에 지나지 않는 것도. 그럼에도 나는 속으로 그가 먼저 연락을 줬으니 이젠 내가 다시 연락해도 되지 않을까 혼자 가늠했다. 씁쓸했다.
이 믿기지 않는 인연에 신기한 마음이 제일 크다. 그런데 마냥 반갑냐면 그렇지 않다. 그때 내가 마음을 접느라, 그와의 인연을 내 삶에서 덜어내느라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데. 다시 그 괴로움이 시작될까 봐 나는 두려웠던 것 같다. 놀러 갔다 그곳이 그가 가르쳐준 곳임을 상기하고, 우연히 카페에서 뒷모습에 몸을 숨길 정도로 마음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음에도 다시 시작되는 게 좋지만은 않은 이유다.
그와의 인연이 끝났을 때, 꼭 좋은 인연이라고 해서 내 곁에 오래 머무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인연은 타이밍 좋게 내 곁에 있어서 좋아지기도 한다는 것도. 그러나 역시 인연은 역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와의 인연은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