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없이 던진 시선에 낯익은 얼굴이 걸렸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나는 그 사람인 걸 단박에 알아차렸다. 첫인상은 우습게도 '늙었다'였다. 최근 다른 사람을 오랜만에 만나고도 같은 감상을 느꼈는데, 이제 나의 나이는 그런 시기인가 보다.
한 번쯤 상상했다. 같은 지역에 살고 있으니 어디서 한 번 만나지 않을까. 그런 상상을 했다고 해서 그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앞사람 그림자 안에 숨어버렸다. 뒤늦게 우리가 자주 만나던 곳이 같은 브랜드의 커피집인 걸 생각하니 이 우연이 그저 우연으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잠시 후 커피를 손에 든 나는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2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앉아있는 그가 보였다. 테이블에 혼자 앉은 그가 뭘 하고 있었더라? 삐걱대는 몸으로 나는 바 스툴이 있는 자리에 자릴 잡았다. 오랜만에 카페에서 글을 쓰려고 왔는데, 그 역시 비슷하려나, 괜한 연결점을 찾아본다.
그를 등지고 한참 작업을 하다 화장실에 가는데 또 긴장이 됐다. 그의 자리가 화장실 쪽과 멀지 않은 탓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그곳으로 향하자 어느새 다른 사람이 그 테이블을 차지한 게 보였다. 벌써 갔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자마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마 그는 나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혹시 봤더라도 그런 티를 내지 않은 연기를 훌륭히 선보인 셈이다.
쓰레기를 버리러 1층에 내리자마자 공용현관에 바짝 붙은 인영을 마주했다. 아파트 우리 라인에 살고 있는 장애를 가진 남성이다. 아침마다 시설에 가는 것 같은데, 마침 시간이 겹친 것이다. 내가 다가가자 현관문이 자동으로 열렸음에도 그는 즐거운 놀이라도 하듯 비켜줄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어쩔까 고민도 하기 전에 그에게서 뻗어나온 손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손이 나갔다. 작은 악수를 하며 '반가워요' 인사했다. 그리고 '잠깐 지나갈게요'라고 했지만, 응당 떨어져야 할 그의 손이 계속 맞닿아 있다. 그걸 보고 놀란 그의 엄마가 빠르게 달려와 그를 내게서 떼어냈다. 돌아올 땐 엄마가 먼저 그를 한쪽으로 밀어 세운다.
솔직히 지적 장애 남성을 만나면 조금 긴장하게 된다. 매체에서 본 그들과 관련된 사고들이 생각나기 때문인데, 만약 그가 장애가 없다고 하더라도 나보다 큰 키와 덩치를 마주하니 위압감이 절로 느껴졌다. 그러나 그런 마음은 잠시였고, 오래 남은 건 닿았던 그와의 손맞춤이었다. 참으로 부드러웠다.
돌아서며 생각했다. 그가 타인에게 바라는 것도 이런 일상적인 접촉일 수도 있겠다고. 장애 때문에 먼저 자신을 꺼리고 두려워하고 때론 싫어하기까지 하는 시선을 수도 없이 만났을 것이다. 이 만남이 나만큼 그에게도 좋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건 나의 추측일 뿐 그의 마음을 알 도리가 없다.
어쩌면 그것은 나의 바람이다. 글쓰기라는 취미생활을 공유하며 한때 soul mate 라고 생각했던 그. 지나간 인연이 된다고 해서 전혀 모르는 남과 같을 수 없다. 여전히 그게 아쉬운 나는 이렇게 우연으로라도 만났을 때 그가 먼저 손 내밀어 오길 바라지 않았을까?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우리의 손맞춤은 아주 부드럽고 또 따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