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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없이 자라는 마음

by 은섬

나는 낡고 지쳤다. 무거운 걸 들 때 '영차' 소리를 내지 않으면 힘이 나지 않고,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일어날 때는 앓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한때는, 이것 꿰보라며 엄마가 바늘귀를 들이밀었고, 밤을 새도 잠깐의 눈부침으로 회복됐었다.


어릴 적 아버지의 앓는 소리가 참 듣기 싫었다. 아픔과 고통이 넘쳐흘러나온 걸 텐데도 나는 그게 꼭 나 좀 봐달라는 제스처로 읽혔다. 그런 아버지가 유치하다고, 조금은 엄살을 떨고 있다고 생각했다. 미안해하고 마음 아파하는 것보다 싫어하고 부정하는 게 더 손쉬운 방법이어서 그랬을 거다.


나의 혼잣말이나 '영차' 또는 앓는 소리를 아이는 질색한다. 아이는 나를 공공장소에서 불필요한 말을 크게 말하는 민폐 아줌마 취급한다. 내가 어디 가서 교양 없다 소리 듣는 사람은 아닌데... 그럴 때마다 서운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지만 이거, 옛날에 아빠 싫어했던 거 돌려받나? 싶어진다.


어릴 때 엄마가 재래시장에서 채소를 팔 때 자주 따라갔다. 해 저물녘까지 채소가 많이 남으면 엄마는 내게도 한 자리를 만들어줬다. 엄마가 파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지만, 사람들이 많이 가는 길목이다. 아이가 채소를 파니 일부러 사주는 사람도 있어서 나는 꽤 잘 팔았다.


그 앞에 역시 노점에서 신발을 파는 아저씨가 있었다. 물론 나 같은 팝업 스토어가 아닌 꽤 오래 장사를 하신 분이었는다. 그 아저씨가 날 예뻐하셨다. 여름 엄마의 주 품목은 오이였는데, 오이를 많이 먹어서 예쁘냐고 농담하셨다. 그분이 어느 날 내가 멍하니 있을 때 입을 헤 벌리고 있다고 알려주셨다. 이전에 아무도 알려준 적 없어서 몰랐던 사실이었다. 그의 지적 몇 번에 그 버릇을 고쳤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어떤 습관들은 의식적으로 노력이 필요하구나 깨닫는다. 그래서 요즘 나는 앓는 소리를 안 내려고 노력 중이다. 어릴 적 아버지가 그 소리가 싫어했던 날 닮은 아이를 위해서다. 쉽지 않다. 조금만 정신을 놔도 이미 한숨 한 자락이 튀어나가서 홉 입을 닫아야 했다.


그래도 그 한숨과 앓는 소리 그리고 불필요한 말들을 참을 때마다 기분이 좋다. 몸 안에서 어떤 기관이 그걸 참느라 끙 소리를 내는 것 같다. 추임새가 없어 조금 아쉬워도 이런 모습이 꼭 내가 정말 어른이 되어간다는 실감처럼 받아들여진다. 적지 않은 나이인데도 여전히 어른 흉내를 내고 있는 것 같은 나. 이렇게 조금씩, 진짜 어른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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