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엔 좋아하는 사람의 미간이 찌푸려질 때 손끝으로 살살 풀어주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상대를 아끼는 사람이 하는 행동의 대표적 클리셰다. 금요일밤 맥주 한 잔을 앞에 두고 이야기하는 친구의 미간이 도톰하게 솟아올랐다. 이런 목격은 처음이 아니었다. 과거에 알았던 지인도 사람은 순하고 상식적이었는데, 이야기를 할 때면 미간을 자주 구기곤 했다. 안타까운 이야기, 맘에 안 드는 이야기, 타인의 흉을 볼 때 그랬을 것이다. 아직 금방 접혔다 펴졌지만, 주름이 되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나도 모르게 손끝으로 내 미간을 더듬는다. 지인의 얼굴은 코 앞이지만, 거울과 대화하는 게 아닌 이상 내 표정을 살피는 건 쉽지 않다. 특히나 감정이 격량을 만났을 때 다채롭게 변하는 표정은 나로선 절대 보기 힘든 표정이다. 나라고 미간을 찌푸리지 않았을까? 눈앞의 상대도 날 보고 나의 미간 주름을 어림짐작하지 말란 법은 없었다.
스스로 확인하기 어려운 것이 우연히 그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그건 나도 모르게 찍힌 타인의 사진 속 이미지에서다. 카톡에 공유해 준 사진에 내가 있다면 사진을 최대한 확대해 나를 찾는다. 내가 잘 나오면 타인은 눈을 감았든 무방비하게 찍혀 웃기든 그건 잘 나온 사진이다.
그런데 그 확대된 사진 속 나는 잔뜩 뿔이 난 모습이었다. 대화 내내 특별히 마음이 상한 적은 기억에 없는데 무슨 일일까? 그런데 어째 이 사진을 과거에도 본 것 같다. 10대 초반, 친척 동생들과 함께 롯데월드 놀러 갔을 때 찍힌 사진에 이런 사진이 있었다. 마치 옆자리의 동생을 잡아먹을 듯한 표독한 표정의 나였다. 남의 눈엔 내가 이렇게 보이나 놀랍고 두려웠던 기억이 있다. 그때로부터 한 세대도 넘게 지났는데 표정은 도찐개찐이었다.
작년부터였나 재작년부터였나 입꼬리를 올리는 연습을 하고 있다. 본래도 무표정으로 있으면 입꼬리가 일자가 아닌 조금 아래로 처진다. 거기에 노화가 겹치니 압꼬리 피부까지 늘어진다. 이러단 입모양이 아예 U를 거꾸로 뒤집은 꼴이 될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다.
그 뒤로 나는 연습에 돌입했다. 처음엔 단단히 굳은 입꼬리 근육이 파들파들 떨렸다. 혼자 있을 땐 할 수 있는 만큼의 입꼬리를 끌어올린다. 눈은 웃지 않는데, 입만 웃고 있으니 공포 영화 속의 피에로와 다르지 않겠지만, 그래도 무표정하거나 냉담한 표정보단 나아 보였다.
초반엔 이런 노력으로 표정이 바뀔까 의구심이 없던 건 아니었다. 그래도 애쓰는 시간들이 쌓이자 그간의 시간이 무의미하지 않았다. 타인의 사진 속 나는 여전히 웃는 상은 아니었다. 기대한 것보다 효과는 미미했다. 그럼에도 확실한 변화는 웃는 연습을 하는 게 전보다 익숙해졌다. 의식적으로 애쓰지 않아도 습관적으로 수시로 입꼬리를 단속했다.
과거의 나는 표정관리를 잘 못했다. 특히나 부정적인 감정을 다루는데 익숙지 않아 그 날것의 감정을 표정에 그대로 드러냈다. 또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게 싫어 어설픈 웃음으로 상황을 모면했다. 그건 누굴 위한 행동이었을까? 마음도 상한 주제에 누굴 신경 쓴 걸까? 그럴 때마다 스스로의 비겁함에 기가 질렸다. 그때부터 나는 내내 포커페이스가 되는 게 꿈이었다. 그런 사람이 유능해 보이고, 진짜 어른 같았다. 나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사람들이 운동에 쉽게 중독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테지만, 그중 하나가 자신의 몸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감각일 것이다. 운동은 몸은 당연하고 마음까지 단련한다. 입꼬리를 단속할 수 있게 되자 마음도 조금 더 단단해졌다. 화, 우울함, 무기력이 파도처럼 나에게 다가와도 표정 관리를 하고 있으면 그 감정은 뭍에 도달한 파도처럼 금세 흐므러졌다. 웃는 표정으로 화를 내거나 우울할 순 없다.
단골 미용실을 오랜만에 찾았다. 머리카락이 툭툭 아래로 쏟아질수록 왜 미련 맞게 지금껏 머리를 내버려 뒀나 후회가 든다. 미용실의 스몰토크는 싫어하지만, 단골이라 친해진 미용사와 한담을 나누는 일도 익숙해졌다. 그때 사장님이 놀랄만한 얘기를 했다.
“손님은 잘 웃으시네요?”
놀란 나는 거울 속의 내 표정을 살폈다. 편안한 얼굴에 금방 지나간 웃음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날 차갑게 본다. 그래서 그런지 웃으면 표정이 확 바뀐다는 말은 종종 들었다. 그렇지만 잘 웃는다는 이야기는 살면서 처음 들어봤다. 그간의 노력이 이런 성과를 냈다는 생각에 얼굴에 더 환한 웃음이 번져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