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에 매번 조금씩 늦는 사람이 있다. 10분은 기본이고 가끔은 30분도 늦는다. 1:1 미팅이 아닌 그룹 미팅이라서 한 사람쯤 늦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조금 더 크고 공식적인 수업도 다르지 않다. 수업이 시작되고 누군가 진지하게 이야기를 할 때도 종종 문이 열린다. 그가 주위와 인사를 나누면서 힘들게 모였던 집중은 순식간에 흩어진다.
우리는 이런 경우를 ‘코리안 타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문화라고 할 정도로 빈번히 일어나서 우리 모두에겐 친숙한 표현이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 우리는 ‘몇 시에 어디서 만나자’ 얘길 하면 상대가 나타날 때까지 30분이고 1시간까지 기다렸다. 남녀 사이엔 그런 게 꽤 낭만스럽게 느껴졌다. 정각 몇 시보다 언제 즈음이 더 익숙한 우리이기 때문에 늦으면 상대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했다. 그렇기에 시간을 칼같이 지키는 사람을 유도리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언제부턴가 ‘차가 막혀서’라는 변명이 일상화될 정도로 늦음은 점점 일상에 가까워졌다.
과거 파리에 갔을 때 갑작스러운 지하철 파업으로 크게 당황한 적이 있다. 알고 보니 프랑스에선 흔한 일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라면 며칠 전부터 뉴스에서 파업 소식을 알리고 당일에도 최대한 인력을 끌어모아 정상 운행이 되도록 애쓸 것이다. 시민의 발목을 잡고 떼를 쓴다는 워딩도 심심찮다.
그렇기에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오면 놀라는 것 중 하나가 대중교통수단의 엄격한 시간엄수다. 지하철도 버스도 정시 출발, 정시 도착을 기본으로 한다. 연착이나 심하면 취소되는 경우도 흔한 일상을 살아오던 그들에겐 신선한 충격일 것이다. 빨리빨리 문화의 긍정적인 적용 사례다.
이렇듯 코리안 타임도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에서 모습을 달리해왔는데, 최근엔 이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는 듯하다. ‘코리안 타임’이란 표현이 한국인만의 유일한 현상이 아니듯, 이 말을 문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그 의미는 시대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요즘은 시간의 가치를 중히 생각한다. 바쁜 만큼 누구에게나 동일한 24시간의 시간을 아껴 써야 한다. 예약 문화가 자리 잡고 그것을 어기는 것을 민폐라고 여긴다. 코리안 타임은 이제 개인의 영역에서까지 발 붙이기 힘들어졌다.
누구나 약속 시간을 염두에 두고 준비한다. 약속 장소까지 이동하는 방법을 선택하고 걸리는 시간도 가늠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게 일정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내가 염두에 두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고(예를 들면 엘리베이터나 신호 대기 시간 등) 생각지 못한 변수도 종종 발생한다. (예를 들면 화장실, 반가운 지인과의 조우 등) 그러다 보면 처음 생각했던 소요 시간은 고무줄처럼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다.
나도 종종 코리안 타임을 이용했다. 10분쯤 늦는 걸 상대가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역시 약속시간은 지키는 편인데, 나만 먼저 가서 약속 장소에 멀뚱하니 앉아 있으면 이 만남이 나에게만 소중한 건지 의문이 생긴다. 억울한 마음도 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역시 늦었을 땐 불편한 마음이 훨씬 컸다. 그러니 나는 약속을 지켜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건 누군가와의 약속이 아닌 나와의 약속이었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시간이 넉넉하다고 느낄 때 외출 준비를 시작한다. 어차피 할 일이라면 미루지 말자고 다짐한다. 시간이 남으면 그건 여유로 즐기면 되니까. 이럴 땐 준비하는 중에, 약속 장소로 가는 중에 어떤 일이 생겨 조급증을 느낄 필요가 없다. 그런데 신기한 건 이렇게 서둘러도 생각보다 여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가능하면 아주 여유있게 도착해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며 여유를 부리고 싶었는데, 지금껏 30분 전에 도착한 적이 없다. 약속 시간 전에 도착해 지인들을 기다리는 게 고작이었다.
그래도 이른 준비는 역시 기분이 좋다. 코리안 타임을 이겨냈다는 작은 만족감도 있다. 언젠가 그 만족감은 옅어지고 이것은 당연한 나의 일상이 될 것이다. 약속한 정시 전에 도착하겠다는 건 내가 좀 더 여유롭게 살겠다는 다짐이고, 타인의 시간을 내 것처럼 아껴주겠다는 마음의 배려다. 내게 다가오는 타인을 먼저 맞이하겠다는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그것은 역시 코리안 타임이 아닌 나만의 타임이다.
오늘도 서둘러 준비를 끝내고 나를 향해 또깍또깍 걸어오는 ‘한 사람의 일생’을 기다린다.
(‘한 사람의 일생’은 정현종의 ‘방문객’ 중에서 인용한 표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