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닫힌 문 밖으로 날 꺼낸 건 때론 추억, 때론 그리움
조부모나 외조부모와 큰 교류가 없던 내게 잊히지 않는 물건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나와 언니가 외갓집에 갈 때 사간 사과 모양의 사탕 케이스다. 아랫부분은 빨간색이었고, 윗부분은 투명해서 안에 담긴 알록달록한 사탕이 보이는 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제법 조잡한 모양새다. 외할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고 혼자였던 외할머니마저 돌아가시는 일은 평범하게 일어났다. 외갓집의 텅 빈 건넛방에 들어섰을 때, 천장에 매달린 그 사탕 케이스를 보았을 때, 나는 옥주처럼 속절없이 외할머니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에 맞닥뜨릴 수 밖에 없었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2014년 ‘불꽃놀이’라는 영화를 만든 윤단비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다. 이 영화는 무려 14개의 영화제에서 수상을 했으니 2020년 최고의 영화란 평가에 무리가 없다. 내겐 낯선 배우들, 최정운배우(옥주), 박승준배우(동주), 양흥주배우(아빠), 박현영배우(고모)가 출연했다. 조연으로 구분하기 황송하게 큰 존재감을 보여준 할아버지역은 김상동배우가 연기했다.
옥주네 가족은 철거를 앞둔 반지하방에서 쫓기듯 왕래가 없던 할아버지댁으로 이사를 간다. 얼마 후 남편과의 불화로 고모까지 할아버지네로 들어오면서 아빠와 고모, 옥주와 동주라는 두 남매는 잊을 수 없는 여름밤을 맞게 된다.
(스포주의) 영화의 후반부 할아버지의 빈 자리를 확인한 옥주가 급작스럽게 울음을 터뜨릴 때 난 그것이 조금 의외였기에 의문이 생겼다. 말만 혈연뿐인 할아버지와 함께 보낸 시간은 고작해야 한 달 남짓일텐데, 그 죽음이 실감은 날까? 슬픈 마음이 들까? 물론 인간관계의 깊이가 함께 보내온 시간만으로 결정되는 건 아니다. 그 관계의 밀도가 깊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걸 알지만, 납득할만한 이유를 찾기 위해 난 영화를 열심히 보았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세 개의 키워드, “문 - 꿈 - 그리움“으로 이 영화, ‘남매의 여름밤’을 이해하게 되었다.
영화의 많은 구석이 내겐 메마르고 푸석푸석했다. 수없이 등장하는 문의 존재 때문이다. 영화의 시작부터 곰팡이가 슨 낡은 반지하방의 대문이 등장하더니 할아버지의 집은 현관을 모두 막아버리는 커다란 문과 2층과 1층을 구분하는 문까지 가지고 있다. 등장 만으로도 갑갑한 기분을 느끼게되는데, 할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기 위해 또 할아버지 몰래 집을 팔기 위해 아빠와 고모는 2층 문도 모자라 할아버지의 방문까지 슬그머니 닫아버린다.
반면 옥주에게 도드라지는 것은 물리적인 문이 아니라 감정에 드리워진 문이었다. 옥주는 자신의 모기장 안으로 들어온 동생을 밖으로 내몰고 실망스런 아빠를 비난하고 자존심 때문에 엄마를 만나려 하지 않는다. 자신 몰래 엄마에게 다녀와 선물을 한아름 든 동주를 보았을 땐 참을 수 없이 폭발하는 분노에 동생을 때리기까지 한다. 옥주가 꼭꼭 걸어잠근 문은 할아버지네서 맞게 되는 여름밤으로 그 성격이 달라지게 된다.
문보다 더 빈번하게 등장하는 꿈에선 그 의미가 더 확실해진다. 아빠(양흥주)는 어느날 아침, 잠든 아버지와 동주를 보며 과거 아버지의 장난을 떠올리고 동주에게 같은 장난을 되물림한다. 꿈을 꾸고 나서야 기억난 어린 시절의 추억이다. 아빠는 고모에게 묻는다. “잊어버리고 있던 기억을 왜 꿈을 꾸냐고?”
모기장 안에 함께 누운 옥주에게 고모는 말한다. 엄마가 어린 자신을 안고 뛰었던 기억이라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꿈이었다고. 자신은 꿈을 꾸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옥주에게 고모가 하는 이야기는 아빠의 질문에 대한 답이 된다. “엄마가 보고 싶으니까 꿈에 나오는 거겠지.” 옥주는 자신이 그리워할 사람이 없어서, 엄마조차 그리워하지 않아서 꿈을 꾸지 않았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지는 않았을까?
윤단비 감독은 그리움을 관통하는 장치로 ‘꿈’을 활용했다고 인터뷰한 적이 있다. 엄마와의 관계를 온전히 끝내지도 끝낼 수도 없었던 옥주였기에 마음의 문을 열려 했던 존재, 할아버지의 부재에 큰 상실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위기감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리워하지조차 못한 엄마를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것은 그동안 스스로 걸어 닫았던 문 안의 감정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옥주가 스스로 연 문은 아니라 감정의 범람으로 속절없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던 감정이었다 할지라도 내딛은 한 발은 소중하다.
덕분에 장례식장에서 옥주는 처음으로 꿈을 꾼다. 이질적으로 보였던 가족 각각이 영정 사진을 배경삼아 맛있게 밥을 먹는 장면은 너무 일상적인 장면이라서 더욱 이질적이었다. 나는 2번째 영화를 볼 때 이것이 꿈인 것을 알아차렸다. 꿈을 꾸고 난 후에야 옥주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스스로 온전히 받아들이게 된다.
제목 ‘남매의 여름밤’에 나오는 남매가 옥주와 동주 뿐이었다면 이 영화는 제법 밋밋했을 것이다. 영화는 일견 우연히 맞게 되는 두 남매(아빠와 고모/옥주와 동주)의 어느 여름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지만, 두 남매에게 여름밤이 갖는 의미는 많이 다르다. 특히 이야기의 주인공인 옥주에게 이 여름밤은 할아버지의 상실로 그리움에 눈을 뜨게 되는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아빠와 고모의 여름밤은 ‘하이퍼 리얼리즘’이란 단어를 연상시킨다. 할아버지가 죽기 전 둘은 대변을 실수한 자신들의 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고 남겨진 집을 팔기 위해 동분서주해왔다. 요양원을 보고 돌아오던 날 둘은 불편한 속내를 드러낸다. 그것은 아버지를 버린다는 죄책감이고, 그것이 내 삶에 반복될까봐 두려운 마음이기도 하면서 둘째 그리고 딸이라는 이유로 지금껏 친정 도움 없이 알아서 살아온 고모의 불편함이었다. 둘의 대화가 끝난 지점을 오토바이 소리가 명확하게 가른다.
그런 아빠와 고모에게 닥친 현실의 갈등이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순식간에 해소된다. 이제 요양원을 알아볼 필요도 집을 파는 일에 망설일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런 지점들이 나에겐 이 영화가 아름답지 않은 이유다. 이런 분위기는 옥주 한 사람만 보더라도 믿을 사람 하나 없이 꽉 막힌 듯 답답한 현실의 분위기와 다르지 않다.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아이의 매력을 마음껏 발산하는 동주의 해맑음을 편하게 즐길 수 없는 이유다.
나는 이들을 이상적인 가족이라고 말할 수 없다. 요양원이나 집 문제에서 당사자인 할아버지가 철저히 배제되고 오랜만에 만난 부자간 부녀간엔 대화가 없거나 짧은 형식적 대화만이 오간다. 옥주는 가족과 어울리지 않는 단어인 눈치, 비굴, 자존심을 가족과 동격으로 생각한다. 내가 가족에 과하게 이상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영화의 아름다움에 취하기엔 내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나의 독립영화에 대한 기대감,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이 영화에 내린 호평으로 아름다움에 대한 설레임을 안고 본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내게 충분히 아름답지 않아서 불편했다. 비록 현실은 이 영화 속 남매들의 현실보다 더 각박하고 쓸쓸한 구석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런 씁쓸함을 스크린 속에서까지 확인하고 싶지 않다.
영화 곳곳에서 빛나는 배우들의 연기는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할아버지랑 무슨 얘길해?” 라고 묻는 동주에게 고모가 대답을 할 때의 연기가 정말 좋았다. 수많은 아이들의 질문에 어른이라면 응당 이래야 한다는 태도로 먼 곳을 살피는 듯한 눈빛, 호흡 위에 살짝 얹힌 듯한 어떤 진실되지 않은 기운. “뭐든 좋아하실 거야” 라는 대답은 정답이기도 하면서 정답이 아니기도 하다. 할아버지가 다가오는 손주를 내칠 일 없다는 점에서 정답이지만, 무엇을 좋아하실지 관심도, 알 의지도 없는 부녀사이라는 점에선 정답이 아니다.
잘 자던 동주가 아빠의 장난에 잠에서 깨버리고 ‘왜 깨웠어? 잘 자고 있었는데...“라고 대답하는 따스함 그리고 생일밤 자신의 자리에 앉아 웃는 듯 우는 듯 경계가 불분명한 표정의 할아버지 뒤로 흐르는 장현의 ’미련‘은 이 영화를 따스하게 하는 지점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진 등장인물은 누가 뭐라고 해도 동주이다. 할 말이 없는 할아버지를 향해 기꺼이 먼저 손을 내밀고 옥주 누나와 치고 박고 싸운 후에도 ”우리가 싸운 적이 있었나?’라며 너스레를 떤다. 간디도 한때는 조폭이었다면서 어설픈 위로를 누나에게 건넨다. 분명 할아버지와 아빠, 고모 사이의 관계는 위태로운 점이 있었지만, 텃밭에서 일군 방울 토마토를 나누며 미소 짓던 옥주와 동주는 많이 다르다. 지금껏 이 아이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가족이 되었는지 구구절절 알 순 없지만, 지나온 가족과는 다른, 좀 더 따뜻한 가족을 만들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남매의 여름밤’의 영어 제목은 ’moving on’이다. 이는 옥주 가족이 할아버지네 집으로 이사를 들어가는 몸의 옮김 외에도 옥주가 느끼는 추억 그리고 그리움 역시 옮겨감을 의미하고 있기도 하다. 그것을 예고하듯 영화의 첫 장면은 낡은 반지하 집에서 한때 영광을 품었을 2층 양옥집으로 이사하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끝으로 영화는 옥주 남매의 그리움이 될 추억이 소복소복 쌓인 할아버지의 집 이곳 저곳을 훑으며 끝이 난다. 거기에 옥주의 꿈으로 들어서는 잠이 있다. 어쩌면 이 남매의 소란스런 밤은 옥주의 꿈 한자락인지도 모르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