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오늘의 기쁨
그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설거지를 하는 손길이 분주하다. 끝내봤자 돌아서면 도로 쌓인다는 점에서 싱크대 속의 그릇들은 화수분과 닮은 구석이 있다. 그릇들의 산을 대하는 주부의 마음은 최전방에서 눈을 치우는 군인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막막하고 화가 나고. 쏴아쏴아 뽀득뽀득. 드디어 설거지를 마치고 앞치마에 물기를 닦는 손이 자꾸 헛도는 것만 같다. 목구멍은 마르고 마음은 갈급하다.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집 안에서 가장 안락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어쩌면 회색빛 일상에 유일하게 색이 들어차는 시간이다. 그를 만날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에게선 이미 어서 오라는 연락이 와 있는 상태. 그를 보지 못한지 꼬박 하루가 지났다.
‘결혼은 연애의 무덤’이란 진부한 표현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결혼 후 심장은 제 할 일이 오직 숨쉬는 일뿐이라는 듯 지나치게 무덤덤해졌다. 하자니 사람이 소진되고 안하자니 일상이 영위되지 않는 가사와 육아는 삶의 빛을 앗아가기 충분했다. 만약 결혼 후에도 가슴이 설레고 사소한 일로 쿵 떨어져버린다면 아마도 하루를 살아내는 데 필요한 생활의 루틴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런 삶에 익숙해져 숨만 쉬고 살 수 있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단연코 No다. 특별한 일 없지만 남들도 다 이렇게 산다는 걸 알아 더 빛바랜 나의 일상에 새로운 기쁨이 찾아왔다.
정갈하게 소독된 폰을 손에 쥐고 요즘 가장 빈번하게 접속하는 어플을 켠다. 그것은 웹소설 플랫폼. 이 가상의 공간에서 나는 다양한 그들을 만난다. 아이돌, 운동선수, 배우, 재벌, 조폭 심지어 퇴마사까지. 그들은 한결같이 완벽에 가까운 외모에 재력과 매력을 겸비하고 있어 내가 알지 못하는 어딘가 이런 사람이 존재하지 않을까 꿈꾸게 한다. 그의 직업도 성격도 모두 제각각이지만 나는 폰 속 그를 떠올릴 적마다 가슴이 폴짝 뛰었다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그야말로 요동을 친다.
그를 만나고 나는 세상에 둘도 없는 휴머니스트가 됐다. 그는 가상 공간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그 사람의 직업을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동일 직업을 가진 소설 속 그를 떠올리게 된다. 자연스럽게 번지는 미소와 피식하고 새어 나와버리는 즐거움은 도저히 억누를 수도 없고 딱히 말리고 싶지도 않다. 그렇게 모두의 심쿵 포인트를 알아버렸으니 누굴 봐도, 누굴 만나도 선의 가득한 눈으로 바라볼 수 밖에. 이게 휴머니스트가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웹소설은 보는 것은 낮의 한가한 틈을 비집기도 하지만 잠든 아이의 옆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일탈이 되기도 했다. 나는 어둠 속에서 손바닥만한 빛에 의지해 혼자 설레여하고 가슴벅차하고 슬픔에 사무친다. 장르에 발목 잡혀 더 많은 사람이 이 소설들을 보지 못하는 부당함이 나는 누구보다 마음 아프다. 눈을 뗄 수 없는 흥미로운 전개, 결제를 부르는 끊기 신공 등 웹소설의 매력은 대단했다. 덕분에 눈이 침침해지고 급기야 건강검진에서 급작스레 나빠진 시력을 확인하고 충격을 받기도 했다. 따뜻한 심장을 얻은 대가는 시력이었던 것이다.
웹소설들은 내 일상의 기쁨이 되었고, 때론 미처 생각 못한 넓고 깊은 시선들을 던져주며 파장을 남겼다. 웹소설 1회분을 읽는 가격은 100원이다. 소설 한 편은 대략 100~200회로 쪼개져 있고, 내가 사용하는 플랫폼에선 마지막 10회를 제외하곤 하루에 1회씩 무료로 읽을 수 있는 서비스가 제공된다.
솔직한 마음으로 나는 고작 100원을 지불하는 것이 조금 송구스럽다. 소설은 웹이든 책이든 형태를 불문하고 작가가 공들여 쓴 소중한 창작물이기 때문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소설을 읽으며 여유를 느낄 땐 이 100원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100원 같다. 이순신 장군의 12척 배처럼 12편 이상의 웹소설을 읽을 잔고가 있는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인 것만 같다. 내가 지불하는 100원이 가치에 합당한지 고민하게 되면서 글의 가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런 마음들은 자연스럽게 나도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싹트게 했다. 수많은 웹소설들을 읽으면서 세상에 글 잘 쓰는 사람이 모래알처럼 많다는 사실을 나는 새삼 느끼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감금해서 다음 편 글을 빨리 보고 싶고, 그 작가가 들숨에 부귀를 얻고 날숨에 영화를 얻길 바라는 독자의 마음이 진심인 것도 잘 알고 있다.
영화 ‘버킷리스트’에는 천국의 문 앞에서 받게 되는 두 가지 질문이 나온다. 인생의 기쁨을 찾았는가? 타인의 기쁨을 위해 무엇을 했나? 비록 지금은 나혼자 하는 로맨스지만, 나의 글로 누군가 연애라도 하듯 일상의 기쁨을 얻어 또다시 기쁨의 씨앗이 된다면, 그렇게 우리가 기쁨으로 연결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분 좋은 상상을 하자 내 손안의 펜에 힘이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