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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추첨으로 일주일에 10만명씩 사라지는 미래시대

For the Majority

by 은섬

[D-7]

이제 나의 죽음까지 남겨진 시간은 7일!

토요일 밤 TV 안에서 흥겨운 BGM과 함께 아나운서 둘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기만 해도 신뢰감이 가득한 그들의 얼굴엔 다가올 추첨에 대한 옅은 흥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일주일마다 진행되는 방송이지만, 그 사안의 중요성 때문에 국민들의 가장 열렬한 관심을 받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지난주 추첨 소식부터 전해드리겠습니다. 지난주 한국에서는 107,962명의 인구가, 전 지구에서는 1,640,618명의 인구가 사라지면서 지구의 온도가 0.002도 내려왔습니다. 10년의 기간을 두고 진행될 인구감소 로또는 지구 인구의 50%를 줄여 지구의 온도를 1도 낮추기 위한 거대 프로젝트입니다. 기후위기는 이제 우리 모두에게 생존의 문제입니다. 당신의 희생은 위대하고, 우리는 당신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정부는 1년 전부터 일확천금을 꿈꾸는 국민들의 로또 생방송을 인구감소 로또로 대체했다. ’로또‘라는 말이 무색하게 이 추첨에서 당첨된 사람은 1주일 후 정부에 의해 처리 되었다. 그 소멸의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고통없이 이뤄진다는 것, 이 로또는 그 어떤 것보다 투명하게 진행된다는 것이 수차례 이뤄진 홍보방송에 의해 알려진 바다.



지구의 온도가 2도 오르자 세계 곳곳에서 기후위기가 현실이 되었다. 더위를 상상할 수 없는 곳에선 고온이 지속되면서 사람들이 열사병으로 죽어나갔다. 고온은 당연하게 가뭄이 되어 식량 부족 문제를 일으켰고 때론 화마가 되어 인간의 생활 터전을 빼앗아 갔다. 유레없이 강한 지진, 갑작스레 불어닥친 추위, 그야말로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쏟아지는 비로 수많은 인간들이 매일, 매순간 생존을 시험받았다.


마치 지구는 엉망이 된 제 자신을 곤죽이 되도록 뒤섞어 처음으로 돌아가려는 것처럼 보였다. ’기후변화‘라는 말을 ’기후위기‘로 바꾸고 과거의 지구를 되찾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도 이어졌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양치질 컵을 사용하고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했다. 자연은 후손에게 물려줄 소중한 자원이라 외치고, 북극곰이 살 곳을 위협받고 있다고 크게 외쳐댔다.


그러나 이런 작은 노력은 이미 온도가 2도가 높아져 버린 지구에게 간지러운 수준이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그런 기후위기의 징후들이 자신의 생존을 결정짓는 골든타임임을 깨닫지 못했고 수십년째 같은 소리만 반복했다. 지구 온난화는 인간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그 정도가 심해짐에 따라 지구 스스로 온난화를 가속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지엄한 온난화의 수레바퀴가 스스로 돌기 시작하면서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인간의 뇌는 변화된 상황에 살아남기 위해 발전해왔다. 이 위기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수많은 전문가들이 과거의 사례를 살피고, 나은 미래를 위한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했다. 그런 노력 중 짧은 기간 안에 확실한 효과를 볼 수 있는 해결책이 바로 인구감소였다. 그간의 사정으로 인간들은 지구에게 그들의 존재가 바퀴벌레 같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최상위 포식자로 생태계를 뒤흔들고 수많은 유독물질을 내뿜으면서 부지런히 번식하는 지긋지긋한 존재.


지구의 온난화는 오롯이 인간이 만든 재앙이었다. 몸 안에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고열이 나고 높아진 체온은 몸안의 세균을 태워버린다. 간단한 논리였다.


전문가들은 결국 지구 위에 존재하는 인간의 수를 줄이는 것에서 합의점을 찾았다. 과거 징기스칸이 지구의 인구를 1/4 수준으로 줄이면서 이산화탄소가 7억톤 감소했다. 이로 인해 지구 온난화가 200년 늦춰졌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과거 조선시대 소빙하기가 도래했던 때는 여지없이 전염병으로 인간이 급격히 줄어든 때였는데, 이런 경우는 유럽에서도 여러 차례 존재한 기록이 남아있다.


그렇다고 하루 아침에 지구 상의 인구를 반토막 낼 수는 없는 탓에 세계의 정상들이 모였다. 무려 3주간 진행된 회의의 결론은 앞으로 10년간 각 나라의 인구를 절반으로 줄이자는 것이었다. 이후 상황을 지켜보고 더 줄여나갈지를 추가 결정하기로 했다. 한국 정부는 가장 무리없이 받아들여질 방법으로 인구감소 로또를 선택했다. 그렇게 일주일에 10만명씩 무작위로 추첨된 인구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엄밀히 말해 인구감소 프로젝트가 100% 무작위는 아니었다. 한국의 미래를 위해 남겨져야 할 사람은 분명 존재했다. 사실 로또에서 처분되어야 할 가장 시급한 연령층은 노년층이었지만 사회 유지에 필요한 전문적 지식이나 기술 또는 지혜를 가진 인구 일부는 로또에서 제외되었다. 일명 ’현자‘ 계급이었다. 어린이들도 제외였다. 20세 이상의 성인은 의무적으로 검사를 받게 되었다. 이걸로 남녀는 모두 등급을 받았는데, 1~3등급까지만 생식이 허용되었다. 그들은 지구를 유지시켜나갈 구성원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들로 ’생산‘ 계급이었다. 4등급부터 추첨의 대상이 되었다.


추첨 전엔 그러니까 인구 감소의 시작은 재소자들부터였다. 어차피 인구수를 줄여야 한다면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은 사람들부터 사라지는 게 이치에 맞다는 것이 공론이었다. 전국 수 곳에 수감되어 있던 재소자 6만명이 일시에 처분되었다. 혼란한 사회였지만 사회의 질서가 유지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다음은 자살자들이었다. 한 해 자살자 수는 1년에 14천명 가량이었는데, 자살을 원하는 사람들의 지원을 받았고 가장 빠르고 고통 없는 방법으로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다음이 본격적인 것으로 바로 인구감소 로또가 시행되었다. 어차피 계속 이런 식으로 지구가 몸살을 한다면 먼저 사라질 계층들에게선 한탕주의로 당첨자에 한해 1주일간 누릴 수 있는 무한에 가까운 혜택을 이유로 로또가 제법 환영을 받았다. 지구 온난화의 재앙으로 죽거나 수명이 다해서 죽거나 어차피 죽는 거 죽기 전에 맘껏 누려보자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검사에서 4등급을 받아 추첨의 대상이 되었지만 낙담하지 않았다. 약 1년전 교통사고로 부모님과 여동생을 잃었기에 삶에 대한 큰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살자로 지원해서 죽고 싶을 정도로 죽음을 간절히 원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선택하지 않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인구감소 로또에서 정신없이 올라가는 등록번호들의 나열 속에서 나의 번호를 발견했을 때, 나의 추첨 소식을 알리는 문자 알림음을 들었을 때 쭈뼛 소름이 돋았다. 기다리던 죽음이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던가 보다. 그것은 상상 속에서 수차례 그려보았던 죽음과는 달랐다. 턱 아래 여린 살을 향한 날카로운 칼날에서 쇠 비린내가 났다.


(2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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