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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추첨으로 1주일에 10만명이 사라지는 미래사회

For the Majority

by 은섬

[D-6]

어젯밤은 어떻게 잠이 든 줄 모르고 잠이 들었고 무기력한 기분에 내리 잠만 잤다. 마치 무언가 나를 땅속 깊은 곳으로 끌어당기듯한 깊은 잠이었다. 잠을 죽음에 비유하고든 하던데 죽음이 이런 느낌일까?


꿈속의 나는 어느 순간 쫓기고 있었다. 뒤를 돌려 바라본 곳엔 무시무시한 동물 하나가 날 쫓고 있었다. 그것은 곰인 것도 같았고, 상어인 것도 같았고, 멧돼지인 것도 같았다. 결국 난 그 동물에게 잡혀 먹혔는데. 다음 순간 나는 인간이 아닌 그 동물이 되어 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쫓겨 뒤돌아보면 내 뒤엔 좀 전보다 작은 동물, 고라니 또는 소 또는 말이 날 쫓아왔다. 다시 잡아 먹히고 쫓기고를 반복하더니 결국 난 눈에도 제대로 보이지 않은 미생물이 되어 있었다. 어떤 사고도 불가능했고 내가 살아있다는 것만이 유일한 감각이었다.


방광은 터질 것 같고, 허리가 아팠지만 끊임없이 울려대는 초인종 소리가 아니었다면 깨지 않았을 것이다. 비틀거리며 연 현관문 너머에는 자선단체 명함을 내미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아직 이뤄지지 않은 내 희생의 숭고함에 이야기한 후 노골적으로 내 재산을 요구했다. 요긴하게 쓰겠다며 제법 진실한 눈빛으로 보내는데, 잡힌 손에 벌레가 기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쫓듯 사내를 보내려는데, 닫히는 문에 손을 밀어 넣으며 사내는 다시 오겠다며 다음을 기약했다.


[D-5]

더이상 잘 수 없는 수준까지 자고 났더니 이렇게 잠만 자다 남은 1주일을 모두 흘려버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식을 원해오던 때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사람이 잠으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제한적이었다. 가족의 상실 후 아득할 정도로 막막하기만 했던 삶에 유통기한이 생기자 삶에 약간의 생기가 도는 것이 느껴졌다. 남은 시간을 잘 보내면 혼몽처럼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차를 몰고 교외로 나갔다. 초여름의 들은 잔잔한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나 또한 들판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았다. 멀리서 새의 저저귐, 풀벌레들의 울음이 층을 이루며 귓속을 채웠다. 코 끝엔 살짝 마른 풀잎들이 뱉어내는 초록의 숨결이 느껴졌다. 죽음을 코 앞에 두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다채로운 감각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태양이 그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하늘이 온통 분홍색이 되었고 서쪽 하늘은 파란 하늘엔 주홍색 빛의 입자들이 가득했다. 기후위기가 닥쳐오고 이상하게 하늘은 더 아름다워졌다. 일출도 일몰도 더 아름답고 지금껏 보지 못한 거대 무지개가 뜨는 일도 잦았다. 왠지 그 하늘이 어떤 자연재해의 징후가 아닐까 두려운 마음과 별개로 그것은 지독히 아름다웠다. 그런 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신의 존재를 믿게 되었다.


[D-4]

오랫동안 발을 들이지 않았던 성당에 가보기로 했다. 가족을 잃고 더이상 신을 믿을 수 없었다. 인구감소 로또 후에도 종교의 위상은 과거와 비슷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이 상황에 신을 탓하는 이들도 늘어났지만 그만큼 신에게 매달리는 일들도 그만큼 존재했다. 미사가 없는 성당 안은 고요함 속에서 더없이 평화로웠다. 순간 억울해서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이렇게 사라질 꺼라면 나는 왜 이 세상에 존재했던 걸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전광판에 낯익은 문구가 흐르고 있었다.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우리 모두를 위한 필요악입니다. 우리는 희생하는 소수를 언제까지나 기억할 것입니다.”

지난 3년간 눈을 감아도 보일 것처럼, 귀를 닫아도 들릴 것처럼 들어온 말들이었다. 나는 3일전까지 다수였다 이제 소수가 되었다.


도심 속 공원에 가족들이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을 보는 순간 자연스럽게 먼저 떠난 가족이 떠올랐다. 나에겐 도달할 수 없는 행복이었다. 잃어버린 퍼즐 조각은 영원히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생각에 빠져있던 나는 새로운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여유롭고 평화로운 풍경이었으나, 공원 어디에도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공원 이곳 저곳을 둘러 보았지만 어디에도 노인은 없었고, 더불어 장애를 가진 이들도 없었다. 부랑자들의 흔적 역시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완벽한 행복의 전형이었던 그 모습이 괴이쩍게 보이기 시작했다.


[D-3]

나는 내일 당장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한 스피노자를 이해하게 되었다. 죽음이 코앞에 닥쳐 왔다고 해서 평소보다 딱히 더 할 일이 많진 않았다. 그래서 평소라면 가지 않았을 뒷골목에 있는 술집을 찾았다. 삶엔 미련이 없다고 생각해왔지만 그럼에도 다가오는 죽음 앞에 마냥 태연할 수는 없었다. 차라리 정해진 순간 확 죽어버렸다면 마음의 준비고 뭐고 그냥 끝나버릴텐데, 하루하루 죽음을 기다리는 마음이 초조함에 자꾸만 안으로 곱아 들었다.


알콜에 취하고 약간의 약물에 취한 그날 밤, 나는 골목에서 어떤 여자와 부딪혔다. 공원에서도 볼 수 없는 노숙자와 비슷한 행색이었다.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못할 것 같은 그녀는 한 마리의 초식동물 같았다. 움푹 파인 눈 때문에 마치 눈알이 없는 것처럼 소름끼치는 그녀였지만 안광은 묘하게 강렬했다.

“혹시 로또 되셨어요?”

어떤 대답도 하지 않는 날 긍정의 대답으로 받아들인 그녀가 급하게 말을 이었다.


“제가! 제가 대신 죽을게요. 당신 대신 내가 죽을 테니까 제발... 제발 나에게 돈을 주세요.”

까만 때가 덕지덕지 묻고 뼈마디가 도드라진 그녀의 손이 날 움켜쥐었다. 믿을 수 없이 강한 악력이었지만 그녀의 다음 말들은 무너지는 울음에 가려졌다. 그때 덩치가 큰 남자 하나가 나오더니 그녀를 사정없이 차버렸다. 그녀가 형편없이 날아갔다. 숨을 쉬는지조차 분명치 않은 과격한 대응이었다. 빠르게 다가온 남자가 명함 한 장을 건넸다.

“당첨자신가? 이제 3일 남았는데, 빨리 결정하는 게 좋아요. 말만 잘하면 디스카운트 시원하게 해드릴게.”

집에 오자마자 검색창을 열었다. 인터넷 검색 한 번에 많은 브로커들이 조회되었다. 인구감소 로또에 당첨되어 목숨이 아쉬운 개인과 돈이 필요하지만 스스로의 목숨은 아깝지 않은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브로커들이었다. 돈만 내면 얼마든지 죽음을 유예할 수 있었다. 아마 내가 죽음을 유예한 대가로 건넨 돈은 누군가의 생활자금이 되거나 남겨진 가족의 목숨을 살릴 밑천이 될 것이다. 지금껏 인구감소 로또가 투명하다는 선전을 믿어 온 순진한 나 자신이 어이없었다.

이런 거래는 국가 간에서도 버젓이 이뤄지고 있었다. 과거 탄소 배출양을 줄이기위해 국가별 할당량을 정한 적이 있었지만 실패했다. 그때와 동일하게 선진국에선 저개발국에 돈을 퍼주고 자신들의 인구 감소 할당량을 팔아 치웠다. 덕분에 저개발국의 인구만이 티나게 줄어 들고 있었다. 그들이 많은 자국민을 처리할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골목의 그녀가 잡았던 손목이 시큰거렸다.


(3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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