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나?
노동요 또는 운동요를 듣는 걸 좋아 하지만, 노래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아이 키우면서 드라마를 본방사수 하는 것이 요원해 자연스레 TV와 내외하게 되었고, 이젠 뭘 봐도 재미가 없다. 봐버릇하면 재미난 걸 알면서도 굳이 친해지려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행위가 아깝게 느껴진다. 그런 나를 TV 앞으로 불러들인 프로그램이 있다. 무명가수들의 오디션인 JTBC의 ‘싱 어게인’ 이다. 화제성이 좋았던 시즌1 덕분에 얼마전 시즌2가 시작되었다.
이 프로그램의 좋은 점 중 하나는 바로 참가 가수들 누구도 실력면에서 구멍이 없다는 것이다. 참가자 중에는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무명가수도 있지만, 찐무명, 즉 아직 스스로를 가수라 부르기 애매한 이들도 있다. 그들조차 유명세와 무관하게 누구 하나 가수로서 완성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나에게 그들의 노래를 듣는 것은 그들의 인생을 훔쳐보는 것도 비슷하다. 천 번도 넘게 불렀다는 노래를 다시 부르며 가수는 어떤 마음을 가질까? 시청자는 자신도 모르게 그 마음을 상상하게 된다.
또 다른 좋은 점은 판정단이 참가자에게 다정하고 따뜻한 응원을 보낸다는 것이다. 과거 독설로 상대를 상처 입히고 자존감을 짓밟는 비판을 했던 판정단이 자연스레 비교되는데, 돌이켜보면 그들의 꿈은 안중에도 없는 불쾌한 무책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싱 어게인’엔 참가자들에게 진심인 판정단이 있고 거기에 잘 생기고 센스 넘치는 진행자, 이승기가 프로그램의 재미를 더한다.
제각각의 참가자들을 보며 나는 가수의 다양한 형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가수로 데뷔하는 것이 어렵지만, 가수가 대중에게 제 이름과 노래를 알릴 만큼 유명세를 타는 일은 더더욱 어렵다. 이 프로그램은 제 이름조차 알리지 못한 가수, 자신의 이름보단 노래로 기억되는 가수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에게 기억되지 못한 노래가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화려해 보이는 연예계 역시 밝은 빛 뒤에 어두운 그림자 또한 가지고 있다는 것을 쓸쓸히 상기시켜 준다. 하지만 아름다운 초원도 그 안을 육식동물로만 채울 수는 없다. 육식동물보다 더 많은 초식동물이 있어야만 초원, 밀림, 자연은 무너지지 않고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가요’라는 생태계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인디 가수 중에서도 제법 알려진 가수의 보컬이 나와 담담하고 깨끗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모습에 초식동물이 떠올라 한 생각이다. 리스너(listener)들이 그걸 잊지 않을 때 초식동물 같은 가수들도 마음껏 노래를 부를 수 있겠다고 나는 작은 결심을 하게 됐다.
방송이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내게 큰 인상을 남긴 가수가 있다. 나는 그동안 TV를 즐기지도 않고 또 음악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내가 왜 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기꺼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왔을까 궁금했었다. 그리고 이 가수가 그 대답을 들려주었다. 그는 당대 흉내낼 수 없는 고음의 노래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러나 계속된 살인적인 스케쥴로 성대결절을 얻고 지금은 가수가 아닌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의 오디션 참가 이유는 ‘좋아했던 노래를 실패로 마무리하고 싶지 않아서’ 이다.
그의 노래는 긁는 듯 불편한 불협화음을 내며 아슬아슬한 끝을 맺었다. 판정단에게는 8표 중 3표만 얻어 그는 다음 도전에 나아갈 수 없다. 비록 많은 표를 받진 못했지만 나에게 그의 노래는 그의 삶 자체로 큰 감동을 주었다. 녹음한 듯 완벽한 그 어떤 라이브보다 그의 노래에 마음이 움직였다. 성대결절을 앓았던 판정단 1인은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보였고 무대 위의 가수는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지나온 시간 속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으면 자신 때문에 우는 사람 앞에서 그런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건지 난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걸 보며 ‘그의 상처는 흉터를 남기기는 했지만, 아주 많이 나았구나!’ 느낄 수 있어서 마음이 조금 놓였다.
음식에 숙성이 있듯 성숙된 누군가의 시간은 그 사람의 노래에 어떤 화학적 변화를 일으킨 게 분명하다. 노래가 노래로 들리지 않는다. 그는 노래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두려움 없이, 기꺼이 내던지고 있었고, 나는 그의 노래 인생이 절대 실패하지 않았다는 뜻을 간절히 전하고 싶었다. 더불어 마음에 들지 않는 지금의 내 삶도 실패는 아니란 위로가 내 마음에 온기를 더했다.
자유를 신봉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우리는 피할 수 없는 경쟁의 구도에 놓여있다. 경쟁이 괴로우면서도 나만 아니면 되는 건지, 우리 사회는 여러 형태로 타인의 경쟁을 게임처럼 즐긴다. 아마도 다른 나라보다 뒤늦게 시작한 산업화 때문에 조금이라도 빨리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이 존재했을까? 강박, 의무감, 책임감 등에 사로잡힌 우리에게 경쟁은 효율성 좋은 도구가 되었을 것이다. 경쟁은 나만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우리에게 심어주며 스스로를 더 채찍질하게 했다.
그래서 우리는 공정성에 대해 집착한다. 부를 가지고 권력을 쥔 사회지도층의 자녀들이 개차반으로 사는 것에 분노한다. 이런 부분들은 공정한 게임이라 생각했던 경쟁의 출발선이 애초에 달랐음을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고, 게임 자체는 과연 공정했는지 의심하게 한다. 공정하지 않다면 내가 최선을 다해 경쟁에 임한 이유가 사라지고 지금까지 달려온 우리의 삶은 허무해진다. 부족한 결과에 스스로를 향했던 회초리는 불필요한 자기학대는 아닐지. 그야말로 눈감아 피하고 싶은 씁쓸한 현실이다. 최소한 공개 오디션은 공정성을 전면에 내걸고 있기에 얕은 수작을 부릴 수 없고 덕분에 우리는 맘편히 그들의 경쟁을 즐기고 응원하게 된다는 나름의 결론을 얻었다.
최근 방송분에서 20살의 가수가 나와 청아한 목소리로 7080 감성의 노래를 완벽해 소화해내 만점을 받았다. 그 감성에 놀라면서도 다음 무대에 대한 우려를 비친 판정단 앞에서 그녀는 방탄소년단의 춤을 멋지게 췄다. 난 또 내 나이의 절반도 되지 않는 그 가수의 삶이 궁금해졌고 그에게 엄마 같은 응원을 보내고 싶어졌다. 앞으로 더 많은 가수들이 자신의 인생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감, 누가 1등이 되든 모두 실패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은 마음이 나를 ‘싱어게인2’ 의 무대 앞으로 불러들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