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실행력이 좋다는 소리를 듣는다. 작년 봄 친한 지인과 담소를 나누던 중 성형수술 얘기가 나왔다. 딸이 대학 입학 기념으로 눈과 코 수술을 했는데 너무 예뻐 자신도 하고 싶단 얘기였다. 그 소리에 나는 바로 혹해 버렸다. 그건 아마도 지인이 내게 끼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을이 되자마자 부산 성형의 메카, 서면을 찾았다. 후보에 오른 3개의 성형외과를 투어했고 계중에 양심적인(그럼에도 공장형 성형외과라는 점에서는 독보적인) 병원으로 결정을 했다. 예약을 하려면 한 번 더 와야 한다는 소리에 쫓기듯 예약금을 걸었다.
성형외과는 평생 갈 일이 없을 줄 알았다. 누군가의 말에 귀가 팔랑거렸고, 떠밀리듯 수술 날짜를 잡은 모양새였다. 하지만 지금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낯섦 덕분에 나는 왠지 기분이 좋아서 얼굴에 홍조를 띠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모든 결정은 매끄러웠고 나의 정신은 명료했다.
피멍과 부기가 빠진 후에도 햇빛 아래서 제대로 눈을 뜨는 데에 제법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눈매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고 느끼는 데 6개월이 걸렸다. 눈 밑 지방을 정리할 필요도 없는 담백한 눈이었고, 염증이 날 확률이 적은 시원한 계절에 수술했음에도 그랬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노화로 쳐지기 시작한 눈꺼풀에 대뜸 칼질을 해두니 눈의 피로도가 확연히 나아졌다. 그로써 눈을 치켜뜨느라 이마에 주름이 생길 일도 조금 더 멀어졌다. 수술하지 않았다면 나는 얼마나 늙고 또 초췌해 보였을지, 볼 적마다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예뻐지고 싶어서 한 것만은 아니었다. 내 기준 인생의 절반을 산 40대의 나는 남은 절반을 유쌍으로 살아봐도 좋을 것 같았다. 무쌍과 유쌍이라는 두 가지 타입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본래 내 눈이 기특했다. 지인들이 염려하는 통증도 두려움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내가 제법 멋져 보이기도 했다.
쌍꺼풀이 점점 더 자연스러워지던 어느 날, 거울 속의 내 눈을 보며 참 재밌단 생각이 들었다. 쌍꺼풀이란 것은 결국 따지고 보면 흉터가 아닌가? 과연 동물 중에서 일부러 자신의 몸에 흉터를 남기는 동물이 있을까? 유일하게 인간만이 고통을 감수하며 제 몸에 흉터를 새긴다. 어쩌면 그 점이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꼬마였을 때 제법 잘 다치는 아이였다. 어디가 부러지거나 피를 철철 흘려 병원에 간 적은 없지만, 자주 넘어져 무릎은 성할 날이 없었고, 손끝도 자주 베였다. 어쩌면 성장하면서 얻을 수밖에 없는 상처고 흉터일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 상처와 흉터를 한 번도 선택하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의 내겐 조금의 여유가 생겼다. 과거엔 그저 동경의 대상이었던 여유가! 그것은 나의 취향을 발견하게 했고,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게 해주는 밑거름이 되었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 인생 처음으로 내 삶을 핸들링하고 있다는 느낌에 마음이 충만해졌다. 몇 해 전 시작한 러닝에 운명을 느낄 만큼 쉼 없이 빠져든 것도 따지고 보면 내 몸을 컨트롤 하는 데서 오는 매력 때문이었다. 지금껏 나는 내 삶의 조타수가 되는 꿈을 꾸고 있었던 게 아닐까?
올해 새긴 나의 첫 타투, Mors Sola는 ‘죽음만이’라는 뜻이 있다. 이 말의 유래와 상관없이 내게 이 타투는 ‘나로 있으라, 죽음만이 막을 수 있을 때까지’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로 존재하기 위해 스스로 원하는 것을 하는 것, 그것이 신체 훼손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런 실행이 매우 마음에 든다. 그래서 나는 다시 설레는 마음으로 더 훼손할 신체가 어디 있나 둘러보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