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겐 맥주의 이름, 누군가에겐 푸른 동굴을 보기 위해 잠시 들르는 곳, 그곳의 이름은 카프리!
나는 발걸음을 재촉해 일몰을 조금 더 잘 보이는 장소로 이동했다. 농담처럼 길을 잃으면 국제 미아가 된다고 말하는 유럽 땅. 그곳에서도 이탈리아의 작은 섬, 카프리에서 나는 온전히 혼자였다. 호텔 데스크에서 소개해준 관광 스팟은 일몰을 볼 수 있는 언덕이었는데, 그 아래론 지중해가 넘실거렸다. 그러나 그곳은 동네 아이들이 농구나 하는 곳이어서 버스에서 내린 나는 잠시 망연자실했다.
나뭇잎을 밟는 발소리와 내 숨소리만 들려오는 숲속이었다. 오랜 기다림을 희롱하듯 카프리의 해는 순식간에 수평선 너머로 넘어갔고 어둠은 빠르게 땅 위의 시간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더럭 겁이 났다. 관광객조차 드문 이곳에서 나는 언제든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 두려움이 피부로 스며들었다. 누군가의 악의로 내가 살해되고 내 몸뚱이가 이곳에 버려진다면 과연 내 죽음은 한국의 가족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을까?
두려움과 고독이 공존했던 그 시간은 왜 그토록 오래 기억에 남아 있을까? 배낭여행을 돌이켜볼 때 언제고 기억의 수면에 먼저 떠오르는 건 혼자 보낸 시간이었다. 유럽에 도착하자마자 겁도 없이 떠났던 코츠월드 그리고 밤이 내려앉은 창가에 어른거리던 안개, 아말피의 야경을 담기 위해 수차례 누르던 카메라의 셔터음. 마음이 빠듯할 정도로 행복한 시간이었지만 두려움 역시 선명했다.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를 반대한 아버지와의 심리적 거리는 한국과 이탈리아만큼이나 멀었다. 한 공간에 있으면서도 말 한마디 섞지 않은 게 벌써 몇 달째였다. 배낭여행은 적절한 인사도 없이 어느 새벽 돌돌 구르는 캐리어 소리로 시작되었다.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취업했던 직장도 그만두고 떠나온 여행이었기에 서른 살, 나의 미래는 여러 가지로 불투명했다. 고민은 일부러 한쪽으로 치워둔 채 떠났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 안에선 고민의 답들이 분명해졌다. 모든 게 단순해지자 보지 않으려야 볼 수 없는 답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연인과 결별을 했고 재취업을 해 숨 가쁘게 다시 살기 시작했다. 돌이켜 보건대, 그 여행은 내 삶의 한 페이지가 끝이 나고 새로운 페이지가 시작되기 위한 막간의 시간이었다. 동시에 내게 남겨진 시간에 대한 하나의 예고편이기도 했다. 앞으로 너의 삶은 여전히 고독할 것이라고, 그 시간을 통해 스스로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될 거라고.
떠들썩한 일상을 살면서 나는 때로 지치고 무기력해졌다. 외향적이고 사회성이 발달한 사람인 줄 알았던 나는 MBTI로 따지면 확신의 I형에 가까웠다.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채운 혼자만의 시간이 보약 같은 사람이었다. 알밤처럼 영혼에 살이 올랐다.
나를 키우는 혼자만의 시간이 반드시 특정한 시간이나 특정한 공간 안에서만 가능한 건 아니었다. 그것은 일상 속에서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순간이었다. 철저히 혼자인 시간, 스스로와 대면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모든 장소와 시간은 언제나 나에게 아름다운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