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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평의 세상

by 은섬

꿈속의 나는 여전히 대학생이다. 그 꿈속에서 졸업을 위해 남겨진 시간은 까마득하다. 스무 해가량이 지났어도 꿈속의 나는 언제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그 지점으로 돌아가고야 만다. 수능을 망치는 학생처럼, 군대로 다시 끌려가는 남자처럼.

마을버스가 학교에 면한 산동네를 가쁘게 올라간다. 그 버스의 종점에 바로 내 집, 아니 내 방이 있었다. 마을버스의 한숨과도 같던 엔진소리도 느긋한 기사님의 담배 연기도 지척이었다. 방의 크기는 대략 1.5평. 방의 모양조차 네모가 아니다. 그 옆에 달린 공간은 시멘트를 발라 만든 화장실. 그래봤자 변기와 수도꼭지 두 개가 전부. 물이 가득한 세숫대야를 변기 위에 올려두고 머리를 감으면 공간 전체가 물속에 잠기는 기분이었다. 항상 열려있는 대문에서 팔을 뻗으면 내 방문이 닿을 듯했고, 방문은 누군가 힘주어 잡아당기면 뜯어질 듯 아슬했다.

그 방 안에서 나는 잠을 자고, 가끔 가스버너로 밥을 해 먹고, 알바를 가고, 학교에 갔다. 가끔 친구도 놀러 왔다. 휴가 나온 친구 역시 숨을 헐떡이며 올라와 내 방에 궁둥이를 붙였고 학창 시절 친구가 서울 구경을 왔다 내 방에 머물기도 했다. 함께 알바를 하는 동생은 약속이나 한 듯, 한 달에 한 번 술을 사 들고 내 방을 찾았다. 알바가 끝난 밤 경사길을 오르다 발견한 우유 상자는 TV를 올려두기 맞춤이었다. 스스로 선물을 주고 싶을 땐 비디오 대여점에서 비디오 기계를 대여해 산동네를 올랐다.

그 방에서 나는 많이 울었다. 영화 <필라델피아>를 볼 때도 모든 인물이 이해되면서도 닿을 수 없는 그들이 불쌍해 아이처럼 소리 내 울었다. TV를 끈 적막 속에서 잠을 잘 수 없었다. 눈물로 베갯잇을 적시며 잠이 들었고, 부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슬픔의 원인은 친구와의 이별이었다. 헤어짐. 자체보다 지금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그 친구가 말 한마디가 내가 디디고 선 땅을 모두 무너뜨렸다. 꽤 괜찮다고 생각한 나 자신이 사실은 형편없는 인간이라서 숨을 쉬기도 무얼 먹기도 힘들었다.

혼자 울다 시간이 되면 학교에 가고 또 알바를 하러 갔다. 뱃속에 음식물이 들어간 지 오래되어지자 정신이 명징해졌다. 마음만은 정신 끝에 존재할 진실에 도달하는 철학자가 된 것 같았고 해탈을 목적에 둔 성인 같았다. 기이하게도 인생 그 어느 때보다도 내 영혼의 수면이 가장 잔잔한 때였다.

1.5평의 좁은 공간이었지만, 누웠을 때 바라보는 천장이 좋았다. 내 눈이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저만큼은 내 공간이란 느낌은 만족감 그 자체였다. 어릴 적부터 나는 나만의 공간을 열망하고 있었다. 집을 떠나기 전까지 나는 줄곧 언니들 사이에 껴서 자야 했다.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과 별개로 나는 동네를 샅샅이 뒤지며 어른들 몰래 숨어들 공간을 찾았고, 언니가 나무를 꺾어 얼기설기 만들어준 공간이 영원하길 바랐다. 훨씬 뒤의 일이지만 자동차는 나만의 공간, 거기에 이동까지 가능하다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반복되는 악몽 속에서 그 작은 방으로 여전히 돌아가는 데에는 어떤 의미가 있지 않을까? 뉴스의 사회면에서 청년들의 고독사 소식을 자주 접한다. 나는 국가장학금도 없던 그때 3년의 휴학과 학기 중 알바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나는 청년 고독사와 아주 가까이 있었다. 연고 없던 곳, 습기로 눅눅했던 그 작은 방에서 내가 시체로 발견되는 일을 얼마든지 가능했다. 나는 그저 운이 좋았다.

내가 살아낼 수 있었던 데에는 내 한 몸 누일 수 있는 그 1.5평의 방이 크게 이바지했다. 일종의 절박함이었다. 그 공간을 지키려면 매달 방세와 공과금을 내야 했다. 내가 나가서 벌지 않으면 이 공간조차 지킬 수 없다는 간절함. 그리고 학업을 끝내지 못하면 내 세상은 이 1.5평의 작은 세상에 갇혀버리고 이내 그 밖으로 내동댕이쳐질 것이라는 불안. 햇볕이 잘 들던 곳, 삶의 소란스러움이 있던 곳. 나는 기어이 몸을 일으켜 방을 벗어났었다.


앞으로도 나는 꿈속에서 다시 그 방으로 돌아갈 것이고, 그 꿈은 여전히 내게 막막한 악몽일 것이다. 그래도 다시 돌아간다면 그 방 안에 고였던 슬픔 뒤에 가려진 따스함도 떠올려야지. 그리고 1.5평보다 넓어진 지금의 세상으로 기쁘게 돌아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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