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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최애 자랑대회

내 최애를 소개합니다

by 은섬

외출 전 청각을 에어팟으로 채우고 최애의 최신 커버 곡을 켠다. 노이즈 캔슬링 덕분에 주변의 소음이 성큼 뒤로 물러나고 대신 익숙한 목소리가 머리를 채운다. Charlie Puth의 Dangerously. 죽어도 좋을 만큼의 위험한 사랑을 노래했다. 너무 좋아 한숨이 나온다.


내가 덕질하는 버추얼 아이돌 그룹 A는 5명의 멤버로 구성되어 있다. 공식적으로 2명의 보컬과 1명의 래퍼, 2명의 댄스 멤버가 그들이다. 그리고 여느 아이돌처럼 나름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카엘룸에서 태어난 이들은(대충 외계인이란 소리) 개발자에 의해 중간계인 아스테룸에서 테라(지구)와 소통할 수 있다는 세계관이다. 쓰고 보니 나도 이게 무슨 소린가 싶다.


특정 아이돌에 입덕하는데 최애만큼 효과적인 수단은 없지만, 멤버들 케미가 좋을수록 최애가 큰 의미가 없어진다. 그래도 한국인이라면 응당 최애와 차애를 줄 세우기를 해야 하는 법. 맘에 쏙 드는 곡을 만났을 때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는 것으로 나의 덕질은 물꼬를 튼다.


그렇게 선정된 최애의 매력을 소개하고자 한다. 다른 이를 그에게 입덕시키겠다는 의도는 없지만, 입덕하는데 일조한다면 좋겠다. 그냥 뭐 내 새끼 자랑하는 수준이 될 확률이 높지만.


첫 번째, 단연코 출중한 노래 실력.(이것은 가수의 본분!) 특별히 어떤 목소리를 좋아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선호하는 스타일은 있는 것 같다. 좋아한다는 건 확고하게 취향의 영역이므로 옳고 그른 것은 없지만 좋고 싫음은 언제나 분명하더라.

기교가 많은 창법을 좋아하지 않는다. 굳이 기성 가수를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박정현보다는 김연우 같은, 나로서는 ‘정직하다’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스타일을 좋아한다. 그런 면에서 a는 사실 박정현에 가까운 창법을 가진 가수고.

유튜브에서 1주일 2회 2시간의 라이브를 할 때 노래를 부르는 콘텐츠가 많다. 평소 팬들은 그의 창법을 치즈 70%, 공기 30%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라이브에서 그가 노래를 부를 때 최애임에도 나의 손가락과 발가락이 오그라들 때가 있다. 기교 섞이고 조금은 과한 호흡이 원인일 것이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나의 최애가 되었나? 그는 멤버들 중에서 완벽주의적 기질이 가장 강하다. 녹음된 그의 결과물을 보며 나는 매번 감탄한다. 사람을 오그라들게 하는 과한 호흡과 치즈력을 넘치지 않게, 아주 기가 막히게 조절한다. 그가 전달하는 감정과 풍성한 호흡을 듣고 있노라면 목소리가 만져지는 무엇이라면 그 결이 만지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두 번째, 노력하는 가수. 그룹 내 리드보컬인 그는 라이브 콘텐츠로 알파카 노래교실을 열었다. 여느 아이돌처럼 A도 멤버들을 상징하는 각각의 색과 동물이 있다. a를 상징하는 색은 보라색, 동물은 알파카이다. 그 시간에 당연하게도 a는 노래를 많이 불렀고 채팅창에 많은 팬이 그의 목 상태를 걱정했다. 성대에 무리가 될까 걱정하는 팬들에게 그가 던진 말.

"여러분 성대는 혹사시켜야 해요. 그래야 단단해져요."

이런 말은 노래 부르느라 성대를 혹사하고 나아지길 반복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이미 400만 뷰가 넘은 그의 '베텔기우스' 커버 곡에 달린 인기 댓글 중 하나.

- 세상에 알려질 수밖에 없는 목소리를 가지셨네요.

그의 목소리는 그저 운 좋게 태어날 때 얻은 목소리가 아니었다. 노력으로 단단히 다져진 목소리고 실력이다.

그가 '베텔기우스'(그는 이 노래를 알지 못했고, 팬들의 추천으로 연습 후 올리게 됐다)나 다른 곡들에 대한 커버 썰을 풀 때 알게 되었다. 그의 곡 분석력이 얼마나 치밀한지. 그는 평소 장르마다 어떻게 부를지 별도의 노력을 한다고 했다.

그런 그를 보며 가수가 저렇게 어떤 노래든 척척 불러낸다면 작가는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소재를 만나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글을 써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내 수련의 부족함을 반성하고 앞으로 더 노력해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이유를 두 가지만 얘기했을 뿐인데 이미 분량이 A4 한 장을 훌쩍 지났구나. 이 외에도 그가 잘 생겼다는 점(버추얼이니깐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런 성격에 저 얼굴이 a가 아니라는 게 말이 되나? 싶은 순간이 여러 번이었다), 잘 웃고 성격이 말랑콩떡인 점, 그가 가수이기만 한 게 아니라 제작자이기도 하다는 점, 살랑살랑 추는 춤이 사람을 미치게 한다는 점, 팬들의 사랑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 이상을 돌려준다는 점(헉헉 <-숨참) 등이 있지만, 길게 얘기해 봐야 주접밖에 되지 않으니 이쯤에서 줄이겠다.


그와 나는 그저 가수와 팬의 사이로 앞으로도 계속 소맷자락 한 번 부딪치지 않겠지. 누군가는 그 허망함을 비웃겠지. 그러나 발터 벤야민의 '일방통행로'라는 책엔 이런 구절이 나온다.

- 누군가를 아무 희망 없이 사랑하는 사람만이 그 사람을 제대로 안다.

이 구절을 처음 봤을 때 난 a가 딱 떠오르더라. 욕심을 낼 수 없고 그래서 희망도 없는 사랑이지만, 타인에 대해 앎과 이해의 아름다움을 떠올리면 내 덕질의 고고함에 대해 미소 짓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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