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추얼 아이돌에 대하여
버추얼 아이돌을 아시나요?
나의 아티스트는 버추얼이 아니라 아이돌이다. 이 말이 뭔 말인고 하니 버추얼은 그저 외피일 뿐이라는 말씀. 그렇기 때문에 팬들은 앨범을 사고 스트리밍을 한다. 영어 단어 ‘virtual’은 ‘가상의, 실제의’라는 뜻을 가졌다. 그들은 발전한 과학 기술 덕분에 현실이 아닌 가상세계에 존재한다.
가상의 인간은 두 가지로 나뉜다. 바로 AI와 버추얼인데 실제 사람의 존재 여부로 구분된다. 그리고 우리 팬들은 이 구분에 매우 민감한 편이다. 초창기 자료 조사도 없이 기사에서 우리 아티스트를 'AI'로 소개해 우리는 기자에게 정정 메일을 보냈다.
여자 아이돌인 <메이브>처럼 컴퓨터가 100% 만든 가상 인간은 AI고, 뒤에 사람(시연자)이 있으면 버추얼로 구분한다. 왁타버스 소속의 '이세계 아이돌(이세돌)'도 버추얼이다. 특이하게 실제 사람과 버추얼이 결합한 남돌도 있다.
버추얼 기술을 우리에게 익숙한 K-pop에 접목한 것, 웹툰 스타일로 만든 것이 나는 매우 전략적이라고 생각한다. 버추얼 대부분이 왜색이 짙은 페이스를 가지고 있다. 여자 캐릭터는 지나치게 육감적이다. 한편 AI는 사람과 더 닮게 만들면서 사용자들에겐 유쾌하지 않은 감정을 준다. (불쾌한 골짜기 이론)
이들을 만든 소속사는 어떤 곳?
A의 기획사는 엔터가 아닌 IT 회사다. VFX, 언리얼 엔진, 모션 캡처, 실시간 그래픽 기술 등을 다루는 인력들이 모였다. 대표는 과거 MBC에서 <기황후>, <W>, <너를 만났다>의 VFX를 담당했고 이후 사내 벤처 1기로 독립 분사해 현 회사를 차렸다. 이런 이력 덕분에 내 아티스트는 음악 순위 프로인 <음악 중심>에서 데뷔와 컴백 무대를 했고 MBC 라디오에서 고정 게스트가 됐다.
과거 소속사는 IPX(구 라인프렌즈)로부터 24억 규모의 시드 투자 유치를 받았다. 일반인(뜻 : 일반인, 출처 : 해리포터)들에겐 편견의 대상이지만, 수많은 버추얼 중에서 A가 대기업 취급을 받는 이유다.
왜 2D를 좋아하냐? 알빠노?
많은 사람이 진짜 사람도 아니고 직접 만날 수도 없는데 왜 버추얼 아이돌을 좋아하냐고 묻는다. 그러면 다른 아이돌은 만날 수 있고? K-POP 팬들의 절대다수가 모니터로만 최애를 만나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냥 가수와 버추얼이 뭐가 다른가?
이렇듯 무심하게 좋아하는 이유를 묻는 머글들 때문에 상처받는 팬들의 이야기를 종종 접한다. 나에게도 낯익은 모습이다. 누군가에게 최애를 소개하려면 버추얼에 관한 개념 설명부터 해야 한다. 영상을 보여주면 상대의 낯은 더 경악으로 물든다.
안 그래도 아줌마가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하면 철없는 사람 취급하는데 그것도 모자라 뭐 버추얼 아이도올? 그래서 나는 남들 앞에서 A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기를 다짐하기도 한다. 왜 내 애정의 이유를 타인에게 설명해야 할까? 이해받고 싶은 마음도 없는데.
버추얼 아이돌과 빨간약
버추얼 판에선 '빨간약'이란 용어가 있다. 버추얼 이미지 뒤에 있는 본체(시연자)의 모습이 기대 이하일 때 사용된다. 내 아이돌에 관해 이야기할 때 흔히 볼 수 있는 반응 중에 ‘그럼 언제 얼굴을 공개하냐?’가 있다. 아니, 그 자체가 버추얼이라고!
회사에서는 아티스트의 본체를 밝히지 않는다. 무단으로 본체를 밝히는 행위도 금한다. 재밌는 건 팬들조차 본체를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것. 누구여도 상관없다.
나도 사람인 탓에 본체가 누굴까 궁금했고 그걸로 마음고생을 꽤나 했었다. 그런 시간 끝에 내린 결론은 이거였다. 이들의 본질은 무엇인가? 가수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니 노래가 좋고 노래를 잘 부르기만 하면 된다. 게다가 자체 제작돌이다? (멤버들이 작사, 작곡, 안무를 함) 덕질 안 할 이유가 없음. ‘복면가왕’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K-POP 역사를 새로 쓴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누군가는 이 시대의 구원자를 과학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런 시대에 아이돌의 영역에서만 가수가 과거의 방식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이 더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나? 나는 감히 A를 시대에 걸맞은 아이돌이라고 생각한다. 확실히 이런 ‘새롭다’ 하는 부분이 내겐 입덕의 큰 계기였다.
초동 56만 장(1주일), 멜론 하프 밀리언 (스밍) 달성(24시간), 첫 단독 콘서트, 음악 순위 프로그램 <쇼! 챔피언> 1위 등 이들의 행보가 매일 역사를 쓰고 있다. 팬으로서 이런 성과들이 얼떨하고 실감이 나지 않지만, A와 팬들이 이뤄낸 결과인 만큼 우리 애들은 맘껏 느끼고 온전히 이 기쁨 속에 존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