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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추얼 아이돌의 눈물

공중파 1위와 데뷔 1주년 기념일

by 은섬

지난밤 때문이었을까? 꿈을 꿨다. 꿈속에서 나는 최애와 팔짱을 끼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도착한 곳은 최애의 팬사인회였다. 공간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고급스러워 호텔을 연상시켰다. 그때 내 옆의 최애를 바라보니 그는 버추얼이 아닌 실제 사람이었다.


지난 토요일 ‘쇼! 음악중심’을 켜고 나의 아티스트가 언제 나오나 목 빼고 기다렸다. 지난 여름 컴백 때는 방송 시간을 맞추기 위해 밖에서 서둘러 귀가를 해야 했다. 그리고 자리에 앉기 무섭게 그들이 무대에 나왔다. 아직 마음의 준비도 안 된 상태였는데. 그야말로 얼떨결에 지나갔다.


그런데 이번엔 기다림의 시간이 길었다. 속이 타면서도 새삼 그사이 바뀐 A의 지위가 느껴졌다. 이번에 그들은 1위 후보였으니까! 화면 밑으로 연신 지나가는 1위 후보들의 생방송 앱투표와 문자 안내는 두 눈으로 보면서도 실감이 안 났다. 쟁쟁한 후보들과 함께 1위를 겨룬다니 웅장해진 이 가슴을 어쩐담?


얼마 만에 음악 순위 프로그램에 문자투표를 했는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인생 처음일지도 모르고. 생방송 앱투표도 했다. 이때를 위해 적립하고 아껴둔 하트비트(투표를 위한 재화)가 제 쓸모를 다 했다. 내가 버추얼 아이돌을 덕질하면서 1위 투표를 하게 될 줄은 몰랐네.


이번 컴백 무대가 조금 더 특별한 이유. 내 아티스트 첫 사전녹화가 있었다. 음악순위프로그램은 생방송이지만 아티스트들의 무대는 사전에 녹화해서 방송에 내보낸다. 그럼 버추얼 아이돌은 어떻게 사전 녹화를 하냐? X에서 본 바에 따르면 영상을 틀어주고 팬들의 리액션 소리를 따서 본방에 함께 내보낸다고 한다. 이날 그들은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메시지를 넣은 간식을 역조공했다..


대망의 1위 발표에서 나의 아티스트는 사전투표, 문자투표 만점을 받으며 1위를 했다. 공중파 첫 1위였다. 데뷔 1주년을 3일 앞둔 날이었다.


그리고 어제, 데뷔 1주년이 된 A는 5인 완전체로 유튜브에서 라이브 방송을 했다. 데뷔곡을 라이브로 부르며 방송이 시작됐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1년 전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는 콘텐츠 진행.


한 명, 두 명 자신이 쓴 글을 덤덤히 읽었고 세 번째 멤버가 편지를 읽다 감정이 벅차오르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뒤로는 한 마디로 아수라장이었다. 멤버들도 울었고 이를 지켜보던 팬들도 울었다. 멤버들이 우느라 한동안 진행이 중지될 정도였다. 나는 이런 분위기를 안다. 과거 에세이 수업에서 누군가 자신의 글을 읽다 눈물이 터지면 그 뒤론 줄줄이 울게 된다.


평소 이름과 금쪽이를 합친 별명으로 불릴 만큼 개구쟁이 캐릭터였던 그였기에 소리 내 우는 모습에 놀랐다. 입덕 후 줄곧 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모르는 곳에서 그리고 내가 모르는 때에 힘들어하면서도 티 하나 안 냈다는 게 마음 아파 T인 나까지 눈물을 찍어내야 했다.


최애의 눈물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쏟아지는 울음이었다. 그의 '사실 우리 조금 포기했었잖아'라는 말 그리고 리더인 멤버가 흐느낌 속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을 때가 있잖아'라는 말은 눈물 버튼이었다. 그간 버추얼 아이돌의 리더로서 얼마나 어깨가 무거웠을까? 그간 있어왔던 그의 한숨은 나의 한숨이 되고 그의 뒤척임은 나의 밤을 길게 만들 것이다.


평소 멤버들은 팬들에게 기존쎄(기가 매우 세다) 그 자체였다. 라디오 '친한 친구'에서 악플을 보냐는 DJ의 질문에 리더는 '악플 오히려 좋아요. 공짜 바이럴 마케팅이라고 하죠'라고 대답했다. 또한 이번 미니 앨범에 있는 '버추얼 아이돌'이란 곡은 hater들을 멕이는 맛이 아주 일품이었고. 그래서 내게 이들의 눈물은 내게 의외였고 조금 충격이었다.


버추얼 아이돌이라고 하면 뭔가 최신의 기술로 무장해 인간적인 면모가 덜할 것 같다. 그러나 보이는 이미지 안에 담긴 건 너무 인간적인 모습이다. 오히려 버추얼이란 껍데기 때문에 내면이 더욱 잘 보이는 느낌이랄까? 버추얼 아이돌이 나를 울린다. 의외의 습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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