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 Confrontation] 거울을 닦는 엄마

아이의 빛이 내 그림자에 가려지지 않도록

by 아타마리에

무엇이든 일단 덤비고 보는 내 성격 때문에, 때때로 나는 빌런 엄마가 되곤 한다.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는 아이들에게 위로랍시고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라는 말을 내뱉는 순간,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어릴 적 아빠에게 들었던 바로 그 말이었음을 기억해 냈기 때문이다.


내가 준비되기 전에 일단 시작부터 하라던 아빠의 굳은 얼굴. 그토록 거부하고 싶던 그 말이 내 입을 통해 흐르고 있었다. 의식적으로 나는 다른 부모가 되고 싶었다. 내가 가졌던 결핍이나 부모님의 양육 방식에서 느꼈던 한계들을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자부한다. 그런데도 왜 나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부모의 양육을 그대로 답습하고 마는 걸까.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보통 부모의 언행을 주의해야 한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평면적이고 반짝이는 거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거울이 작동하는 방식은 세 가지임을 알 수 있다. 무의식적인 반사(Reflection)와 투영(Projection), 그리고 의식적인 성찰(Reflective Awareness)이다. 아이라는 거울 앞에 선 나는, 과거의 답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거울을 보아야 하는지 고민해야 했다.


무의식적인 반사는 과거 부모에게 배운 것들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이다. ‘Reflection'의 어원은 'reflectere'인데, 본래 되돌리다는 뜻으로, 자극을 곱씹기보다 그대로 튕겨 내는, 자동적인 반응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 부모님이 그랬으니까" 라며 내면화된 습관들은 무척이나 끈질기다. 훈육 방식, 감정 표현, 말투 같은 것들이 나도 모르는 순간에 재연되고 만다.


성차별적 관념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아이들에게 주의하려 노력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남자가 울면 안 되지"라거나 딸에게 "이불 좀 예쁘게 개라"는 말을 던질 때가 있다. 어릴 적 부모님이나 할머니에게 무심코 들었던 그 말들이 내 입을 빌려 되살아나는 것이다. 아이는 독립된 인격체인 부모가 아닌 조부모의 가치관을 메아리처럼 들으며, 어쩌면 내가 그랬듯이 억눌린 감정을 쌓아갈지도 모른다. 거울에 비친 그 빛은 과연 아이 자신의 빛일까, 아니면 과거가 남긴 희미한 잔상일까.


반사가 과거의 반복이라면, 투영(Projection)은 현재 나의 결핍, 욕망, 불안, 상처를 아이에게 덧씌우는 것이다. 아이의 욕구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내 관점으로 재해석하거나, 내 안에 해결되지 않은 숙제들을 아이를 통해 해결하려는 무의식적인 욕망이다


때때로 나는 장녀로 자라며 입었던 상처를 큰 아이에게 투영해 아이의 감정을 불완전하게 해석하곤 한다. 혹은 어릴 적 여자라는 이유로 운동이나 위험한 활동을 제약받았던 불만 때문인지, 셋째 딸만큼은 꼭 운동 하나를 제대로 했으면 하는 보상 심리를 갖기도 한다. 투영된 거울 속에서 아이의 자아는 작아지고, 결국 과거의 내 모습만 덩그러니 남게 될까 봐 문득 무서웠다.


이에 반해 성찰은 거울을 깨끗이 닦는 행위와 같다. 앞선 두 행위가 무의식의 영역이라면, 성찰은 의식의 영역이다. 아이와 나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서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성찰적인 육아(Reflective Parenting)란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부모가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한 걸음 물러나 숨을 고르며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지금 이 말은 누구의 것인가? 내 부모의 말인가, 나의 말인가, 아니면 정말 아이를 위한 말인가?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아이의 모습인가, 아니면 내 과거의 투영인가?

밤이 되면 남편에게 그날의 육아를 고백하며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오늘 아이에게 화를 냈던 그 순간에, 사실 나는 무엇 때문에 화가 났던 걸까. 아이가 넘어져 울 때 달래는 대신 조심성을 책망했던 건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막내가 떨어뜨린 아이스크림에 기분이 상했던 건 아이의 속상함 때문이었나, 아니면 내 지갑에서 나간 돈이 아까웠던 것은 아닐까.


건강한 미러링(Mirroring)은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비춰주는 것이다. 성찰을 통해 거울의 얼룩을 깨끗이 닦아낼 때, 아이는 부모의 과거가 아닌 맑게 투영된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아이를 가르치기에 앞서 거울 앞에 선 부모가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일이다. 반사가 과거의 자동 재생이고 투영이 현재의 욕망을 전이하는 것이라면, 성찰은 이 둘 사이에 의식의 빛을 비추는 행위이다.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아이가 내 그림자에서 벗어나 오직 자신만의 빛을 발하기를. 그래서 오늘도 나는 거울을 닦는다. 부모가 완벽한 거울이 될 수 없을지언정 거울을 닦으려는 노력 자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내 선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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