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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axis Mar 16. 2020

정우성은 왜 학교를 뛰쳐나왔을까?

: 한국 교육 유감 1


 
  

 지난주 도올 선생과 이승철의 토크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정우성을 보았고,  

 관심 있게 그가 하는 이야기를 지켜보았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가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고,  

 큰 상처를 안고 고등학교를 자퇴했다는 고백이었다.   

 몇 가지 궁금증이 풀렸다.  

 
  

 정우성은 학교가 “정글” 같았고,   

 교사들로부터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았다고 회상했다.  

 학생들 간에도 폭력으로 서열화 계급화된 정글이었다고 했다.  

 
  

 당시의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서슴없이 “쓰레기 걸레”라는 표현을 입에 담고 내뱉었다며 분노했다.  

 그는 교사들이 학생들의 ‘사는 환경’에 따라, 학생들을 다르게 취급했고,   

 부당한 대우와 언행은 일상이었다는 식으로 표현했다.  


 함께 진행하던, 도올 선생과 이승철은 거북해하는 듯했다.  

 아마도 더 수위 높은 표현들도 있었을 터이지만, 

 편집 과정에서 걸러졌으리라 추정한다.  

 ...  

 
  

 비슷한 시기에 학창시절을 경험한 상당수는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교사들로부터 이유 없이 맞기도 했던 시기였다.  

 
  

 “니 아부지 뭐하시노?”라는 대사가 달리 유명세를 탔을까?  

 
  



 


새삼스러울 것도 없으니 툭 터놓고 얘기해보자.  

 
  

 ‘군사부일체’라는 ‘유교적 이데올로기’를 학생과 학부모에게 강요하며,   

 실제는 ‘자본주의적 탐욕’과, 하나의 직업집단일 뿐인 ‘교사들’의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선생님들’이 다수였다.  

 
  

 ‘스승’이라는 표현을 욕되게 할 뿐인 그저 ‘교직 직장인들’이, ‘제자들(?)’을 모욕하고 학대하는 일상이 정당화된 사회였다.  

 아이를 인질로 잡혀놓은 학부모의 비굴함과 상납은 관행이었다.  

 촌지와 상납은 최근까지도 남아있다.  

 
  

 더 나쁜 것은, 식민지 교육의 잔재가 남아,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까지 장착한 꼰대 교사들은 

그들의 학생 노예들을 쉽게도 폭행했다.  

 

일본도 대신에 잘 다듬은 몽둥이와 수타(따귀와 주먹) 

그리고 닥치는 대로 손에 잡히는 무기들(슬리퍼 신발 걸레자루 등)을 휘둘렀다.  

 별 특별한 이유도 없이 얻어맞거나, 운 좋으면 그렇게 얻어맞는 바로 옆자리 친구들을 숨죽이며 지켜봐야만 했다.  

 

.........

 

 그렇게 폭력을 조기교육 의무교육 받았으니, 

 이 사회가 이성적이고 성숙한 사회가 될 수 있었겠는가?  

 가정폭력,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들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은 아니리라.  

 정글 같았던 학교교육이 적어도 상당 부분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  

 
  

 거기에 어떤 인격교육 인권교육이 존재하겠는가?  

 그 시절엔 다 그랬었다고 합리화하지 말기 바란다.  

 당신들은 처벌받지 않은 범법자들일 뿐이다!  

 
  

 아이들의 사는 환경에 따른 경제적 환경적 차별도 부족해, 

성적에 따라오는 차별도 아이들을 짓밟았다.  

 우열반, 특별 자습실 이용 권한 등 ... .  

 

 ‘극소수 운 좋은 강자들’은 예외였지만, 

다수의 아이들은 ‘계급차별’을 일찌감치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환경을 원망했을 것이다!  

 열등감은 필수 부산물로 주어졌을 것이고.  

 

 정우성도 그러했으리라!  

  

 (※ 운 좋게 강자 그룹에 속했던, 나도 결국은 피해자이지만, ... .)  

 
  

 물론 상당수의 좋은 선생님들이 계셨던 것은 부인할 수 없고, 그분들이 그나마 학교를 지켜내신 고마운 분들이다! 그분들께는 늘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  

 
 하지만 스승은 적었고, 법 위에 서 있는 독재적 ‘직업교사꾼들’과 

‘부당이득’을 취하는 협잡꾼들과 이를 방조하는 이들이 많았다.  

 

 허울뿐인 ‘인성교육’ ‘전인교육’이었고, 

 착취와 방관 그리고 폭력이 난무하는 ‘정글 같은 학교’ 였다.  

 정우성 그가 경험한 학교였으리라!  

 

 ...  

 



 폭력과 차별과 억압이 지배하는 학교에서 어떤 교육이 가능하겠는가?  

 거기에 학생들을 ‘무한경쟁’으로 내모는 뒤틀린 산업자본 이데올로기

즉, ‘소수 특정지배 그룹의 이익을 공고히 하기 위해 강요된 이데올로기’까지

 더해진다면 ... ?  

 
  

이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글 ‘교육 혁명을 꿈꾸며’ 에서 이어가려 한다.  


- 오늘은 여기까지 -

 
  

 
  

 참고

이 글은 완성된 글이 아니며, 개인의 경험과 생각을 펼쳐놓은 것이니, 

태클이나 댓글은 정중하게 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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