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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빈 Jan 04. 2024

일보다 사람

감사 인사는 누구에게 전하나

지난 연말부터 새해까지 연달아 5일 정도의 연휴를 보내게 되었다.


지난 2023년은 개인적으로 많은 시도와 시행착오, 그리고 보람을 느꼈던 한 해이니만큼 돌아보고 기념할 것들이 많아 분주한 휴일을 보내고 있었다.


우연히 열고 들여다본 스마트폰에서 빨간 알림 표시가 달린 메신저를 보게 되었다. 광고일까 싶어 들어가 보니 새해 첫날부터 께름칙한 메시지를 마주했다. 클라이언트 몇 분과 함께 대화를 나누던 단체 메신저 방에 일본 지진 소식과 함께 일본 현지의 공장 가동 등 이상유무와 물류 상황을 확인해 달라는 연락이었다.


진도 7.6이라면, 꽤나 큰 지진이다. 바로 TV를 틀어 케이블 채널 275번을 누르고 NHK뉴스를 통해 현지의 소식을 보고 들었다. 


북쪽으로는 홋카이도부터 남쪽 규슈까지. 그야말로 일본 전 열도의 북쪽을 따라 쓰나미 주의보/경보가 벨트처럼 그려져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와지마 시에서는 7층짜리 건물이 옆으로 쓰러지고, 일부 블록이 화재로 전소하는 등 피해가 막심했다. 이 글을 통해 명을 달리 한 고인들께도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






나는 클라이언트의 요청에 바로 답하지 않고, 하루 정도 추이를 지켜보기로 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정말 회사가 운영하는 공장에 문제가 났다면 지금쯤 난리가 났거나 누군가 사내 채널을 통해 연락을 돌렸을 것이라는 가정. 그리고 또 하나는 아직 본 지진이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진 등을 포함하여 향후의 피해규모를 가늠하는 시점에서야 제대로 된 피해분석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금 더 넘겨짚어서 북쪽 해변을 따라 피해지역이 특정되고 있는데 반해, 공장은 대부분 열도에서도 내륙에 위치해 있었고 이시카와현에서는 꽤나 거리가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설마..' 하는 마음도 있었다.



다음날 아침, 클라이언트 구매 담당자(메시지를 남겼던 장본인)가 전화를 걸어왔다.




"과장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네, 담당자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뉴스 보셨죠? 지금 난리잖아요. 사내에서도 현황 확인하라고 계속 보채네요"


"네, 저도 아침부터 뉴스를 보고 있는데 아직 본사 담당자들과는 연락을 못했습니다. 직접적은 피해지역과는 거리가 있어서 아직 문제는 없어 보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한 번 확인 좀 부탁드립니다. 다른 공급사는 일주일정도 생산을 멈추고 추이를 지켜본다는 곳도 있어서요"


"네 확인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단체 메신저 방에 좀 남겨주세요. 감사합니다."






'어떻게 물어봐야 할까'


전화를 걸기에 앞서 망설임이 일었다. 새 해 인사를 건네면서 피해현황을 묻는다? 정말 피해가 있다면 인사는 거꾸로 실례가 아닌가? 아니 그전에 큰 문제가 없을 거라는 전제로 연락을 하는 거니까. 연휴기간에 서로 연락 주고받는 건 귀찮은데..(여기서 최근 내 직업의식이 조금 민낯을 보였다)


우선, 두 명 정도 일본의 담당자들에게 LINE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 해도 잘 부탁드린다고. 20여 분 후에 한 분이 답장을 보내왔다. 자연스레 '안부'를 물었다. 




'어제저녁에 이시카와 현에 큰 지진이 났다던데, 별 탈 없으신가요? 듣자 하니 도쿄에서도 작게나마 지진을 느꼈다는 제보도 있어 걱정되더라고요'


'전혀,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꽤 거리가 떨어져 있는데도 흔들림은 느껴지기는 했어요. 새해 첫날부터 마음이 불편하네요' 




이 흐름이다. 여기서 슬쩍 공장은 무사한지 물어보면 된다. 일로 만난 사이에 무엇을 주저하나. 온갖 생각이 다 나는 중에도 손가락은 움직이지 못하고 몇 분을 머뭇거렸다.



'새해 시작부터 엄청 놀라셨겠어요. 클라이언트 담당자분께서도 도쿄에 계신 여러분과, 공장 관계자분들 안부를 여쭤보시더라고요'


'(도쿄도 그렇지만) 공장들도 진원에서는 거리가 있는 편이라,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전해두기는 했는데 혹시 들으신 이야기 있으신가요?'




상대의 나이가 50대 초반인걸 의식해서였을까? 돌아보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사람의 안부를 먼저 묻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고 답장을 받았다.



'공장이 위치한 지역도 진도 2에서 3 정도로 제가 있는 도쿄와 비슷하게 흔들리지 않았을까 해요. 연초 출근하고 나서는 공급망에 이상이 있는지 확인부터 해야겠네요'






몇 분 뒤에는 다른 담당자와도 통화를 하였는데 '클라이언트 담당자분이 지진에 큰 피해 없이 잘 계시는가, 궁금해하더라'라고 전하자 이야기 나눌 일이 있으면 걱정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해 달라는 말을 들었다.


안부를 물었던 건 나인데, 감사인사는 누구에게 전해야 하나.


나도 금세 이 마음을 잊고 살아갈지도 모른다. 그래도 새해니까. 작년보다 조금은 더 따뜻한 나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을 소중히 하기로 했다. 매우 주관적이지만 그래서 나다운 기준을 만들고 사람들을 대하자. 그리고 그 과정에서 덜 상처받고 멋대로 오해하고 원망하는 일을 줄여나가자.


시간이 지날수록 피부에 와닿는 감각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서로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 더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행동해도 괜찮다고. 그 안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역시 일보다 사람. 말로 또 글로 마음을 전하고 쌓여있거나 높이를 키우려는 오해를 줄어나가는 일이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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