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와 항공기 운항
대학교에서 항공기상학 강의를 들을 때의 기억이다. 우리 교수님은 모 항공사에서 운항관리사로 김포 지점장을 지냈던 분이었는데, 항공에 오래 종사한 만큼 열정도 실력도 대단하셔서 모든 학생이 우러러보는 그런 분이었다. 어느 날엔가에 이런 얘길 하셨는데...
“나는 아침 출근길마다 기상을 확인했어요. 요즘 핸드폰 어플로도 다 나오고 좋잖아요? 항공기상청 어플로 들어가면 공항별 *METAR랑 TAF를 확인할 수 있어요. 이거 안 보고 출근하면 항공업 종사자 아니야~”
*METAR : 정시관측보고. 각 공항의 현재 기상정보를 서술하는 정보. 1시간을 기준으로 매 정각 발표한다. 인천공항의 경우에는 30분마다 업데이트된다.
TAF : 공항예보. 각 공항의 기상을 예측하여 서술하는 정보. 일 4회 발표한다.
그리고 나는 기상정보를 확인하는 대신 출근할 때 하늘을 보고 오늘의 날씨를 때려 맞추는 야매 항공종사자가 되었다(?)
날씨는 항공기 운항과 떼어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우리 팀 관제사의 입장에서만 서술해보자면, 가장 최악의 날씨는 ‘눈이 많이 올 때!’이다. 눈이 오는 순간 비행기는 동체 위에 쌓인 눈을 녹이고, 다시 얼지 않도록 용액 처리도 해야 한다. 전에 폭설 때문에 연장근무도 해 본 경험이 있듯이 눈만 오면 일단 우리는 엄청나게 바빠진다. 내 관할구역 위 공항에 내려앉은 눈을 치우는 제설팀을 통제하는 것도, 눈 녹이러 제방빙장으로 이동하는 항공기를 통제하는 것도 우리니까. 그리고 대설 상황이 끝난 후 와르르 몰려나오는 출발 항공기를 내보내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사람들은 보통 이런 날씨보다는, 우르르 쾅쾅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쏟아지는 날을 더 걱정하는 것 같다. 아마 눈만큼 항공기 운항을 지연시키는 날씨는 없겠지만, 천둥번개나 비보다는 ‘강한 바람’이 더 좋지 않은 기상이다. 비가 내리긴 내리는데 얌전히, 바람도 안 불고 조용히 내린다면 걱정이 무색하게도 비행기는 아주 편안히 이착륙한다. 하지만 며칠 전처럼 바람이 탭댄스를 추면 이륙이 아주 어려워진다.
그래도 교통량이 좀 늘었다고 코로나 전처럼 저녁 시간대가 살짝 바쁘다. 얼마 전 내가 맡은 시간에 풍수해 주의 단계, 천둥번개 경보, 강풍 경보, 그리고 급변풍 경보까지 4콤보로 악기상이 예보되었다. 에이 뭐 비 오는 것쯤이야, 오히려 비가 오면 공항 유도로에서 등화나 토목 작업이 없기 때문에 오롯이 항공기에만 집중할 수 있어 좋을 때도 있다.
다만 좀 걸리는 건 천둥번개 경보와 강풍/급변풍 경보였다.
천둥번개 경보는 도착 항공기 흐름에 영향을 준다. 일단 천둥번개가 치면 계류장에서 항공기를 핸들링하는 지상조업이 일시적으로 중단되어, 항공기를 주기장 안쪽 정확한 위치까지 안내하는 윙 가드(Wing guard) 요원이 계류장으로 나와있지 않는다. 그럼 착륙한 항공기가 주기장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유도로 위에서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강풍/급변풍 경보는 이착륙 모두에 영향을 준다. 급변풍(Wind shear)이란 갑작스럽게 수직 또는 수평방향으로 작용하는 바람을 일컫는다. 양력의 힘으로 하늘을 나는 비행기는 운항 중에 바람의 영향을 아주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계획된 푸시백 허가 시각(TSAT)에 맞추어 비행기를 열심히 활주로까지 내보내다가, 잠시 숨 돌릴 틈이 생겨서 도착 항공기가 착륙하는 걸 모니터하게 되었다. 어찌나 바람이 심한지 내려야 하는 항공기가 연속적으로 네-다섯 대 정도 착륙하지 못하고 복행(go around)해야 했다. 출발하려고 줄 서 있는 항공기 행렬도 보였다. 대략 열 대 정도가 바람 때문에 뜨지 못하고 활주로에서 길에 줄을 서 있었다. 아주 타이트하게 2분에 한 대씩 이륙한다고 해도 20분이 걸릴 일이다. 마침 계류장에서 기동지역으로 나가겠다고 하는 항공기를 잠시 잡았다.
“ABC123, Apron?"
"Go ahead, ABC123"
“지금 바람이 너무 세서요, 비행기들이 이륙을 못하고 대기하고 있습니다. Expect some delay(지연이 예상됩니다.)”
"아, Roger(알겠습니다)“
TMI를 남발해서 주파수를 복잡하게 하는 건 좋지 않지만, 지금처럼 계류장에 교통을 잡아두는 경우에는 사유를 알려주는 게 조종사 입장에서도 빠르게 이해가 된다.
승객 입장에서도 착륙 복행은 아찔한 경험이다. 고도를 낮추며 당연히 땅에 닿을 거라고 예상했던 비행기가 위아래 왼쪽오른쪽으로 흔들리며 부웅-하고 다시 뜨는데, 아마도 심장 철렁한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몇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인천은 제주만큼 바람이 강하거나 변화무쌍하지 않아서 적당히 바람이 가라앉았을 때 안전히 다시 착륙하면 되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또, 악기상에 대비해서 항공기상청에서 시시각각 <급변풍 경보> <강풍 경보> <천둥번개 경보> <풍수해 단계> <지진 단계> 등 기상 정보를 전파하고, 공항 현장 근무자들은 그에 맞춰 대비를 하고 있다.
날이 좋지 않으면 운항이 조금 지연될 수는 있지만, 아예 결항되어버리는 예는 좀 드문 건이니 오늘 비행기 뜰 수 있나~? 하는 걱정은 잠시 접어두어도 괜찮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