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숙비행 다녀왔습니다
운항승무원이 아닌 사람이 운항 중 조종실에 무단으로 들어가는 건 법으로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이전에 본인의 자녀를 운항 중인 비행기의 조종석에 앉혔다가 오토파일럿이 해제되면서 큰 사고가 났던 사건 이후로는 더더욱 모르는 사람의 출입을 금한다. 그런데 아주 가끔 관제사라는 신분을 이용해서 우리는 꽉 닫혀있는 조종실 내부 견학을 다녀올 수 있다. 10년 전의 나에게 ‘야~ 너 좀 더 나이 먹으면 비행기 조종실에도 타볼 수 있을걸~?’이라고 한다면 절대 믿지 않았을 텐데. 차라리 ‘야~~ 너 나중에는 관제탑에도 올라가 볼 수 있을걸~?’ 정도였으면 믿는 시늉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관숙비행이라는 건 나에게 상상의 동물과 같다. 코로나가 터진 이후로 해외 출장, 해외 교육, 관숙비행 같은 게 전부 중단됐기 때문이다. 팀 선배들도, 나보다는 경력이 된 동기들도 ‘해봤다’고는 하는데 대체 그거 뭐 어떻게 하는 건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관숙비행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칵핏이라고 부르는 조종석에 타 본 건 정석비행장에 쓸쓸히 전시돼있는 그 비행기 안에 들어간 경험이 전부다.
*관숙비행 : 조종실에 뒤쪽에 탑승해서 운항승무원의 업무를 배우는 것.
...라고 어제까지는 그랬겠지만 드디어 나도 관숙비행을 경험한 관제사가 되었다!
오늘은 교육받는 날이니 분명히 평소보다는 편한 마음이었어야 했는데, 숫자 14의 저주인가, 상황이 자꾸 타이트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관숙 스케줄이 조금 급하게 결정되어서 지난주에야 간신히 조종실 탑승 허가(Cockpit authorization)를 전달받았다. 교육 훈련 보고를 올리는데 여차 저차 해서 또 결재가 늦게 떨어졌다. 얼른 교육 근태를 상신해야 하는데 문서 결재가 나지 않으니 쉬는 날에도 계속 회사 인트라넷에 접속하는 등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엔, 탑승 허가증을 출력해서 오지 않은 죄로 비행기에 오르지도 않았는데 나는 무척이나 허둥대고 긴장해야 했다. 다행히도 면세구역 카페에 프린터가 구비되어 있었다. 여러모로 험난한 일정의 시작이었다.
연결편에 탑승했기 때문에 기내에서 기장님과 부기장님을 만났다. 교육 전부터 걱정했던 게 하나 있었는데, 운항승무원 입장에서 초면인 사람이 조종석 바로 뒤에 앉아 일하는 걸 구경하는 게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점이었다. 걱정이 무색하게도, 어색한 웃음을 띠며 조종실로 들어간 애송이를 기장님들은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근데 이게 말이 쉽지 반대로 말하자면 내가 일하는 동안 바로 뒤에 모르는 항공종사자가 붙어 관제 잘하고 있는지 쳐다보고 있다는 건데...? 항공종사자 신분을 떠나서 누구라도 본인이 업무를 보는 중에 뒤에서 누가 스산하게 구경하고 있다면 부담스럽고 예민해지지 않을까? 안 그래도 낯을 가리는 편인 나는 그곳에 있는 동안 더더욱 질문을 던져 대화를 시작하는 게 조심스러웠다.
어색한 첫 관숙이었지만 몇 가지 새로운 정보를 알 수 있었다. 관제기관에서 ’대기‘하라고 지시하는 경우에 지연이 얼마나 되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고 대신 예상 지연시간을 같이 알려주는 편이 더 도움이 된다는 것. 그리고 SQ CODE는 버튼을 눌러가며 수동으로 직접 세팅한다는 것. 관제 주파수는 항상 모니터하고 있다는 것. 지상이동을 하는 경우 어떤 유도로를 경유해서 활주로 또는 게이트까지 이동할지 미리 그려본다는 것. 목적 공항에 도착하기 전 게이트가 몇 번인지 접근 단계부터 미리 알 수 있다는 것.
작은 궁금증들이 깔끔하게 해소되어서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이런 것보다는 좀 더 근본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맡은 업무에 대해 내가 평소에 갖는 생각은 이랬다. 뭔가 관제사와 조종사는 근무 환경도 너무 다를 뿐더러 서로 다른 걸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조종사의 고민거리는 승객부터 시작해서 출도착 시간 준수, 관제교신, 객실 승무원, 무게중심 관리, 연료, 이착륙 퍼포먼스 관리, 날씨...와 같은 많은 요소들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관제사에게 업무상 고민거리는 딱 하나이다.
“관제”!
우리는 넓게 보자면 오로지 ‘항공기의 충돌 방지’를 위해 ‘운항승무원과 교신’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하루의 시작을 관제업무로 시작해서 하루의 끝 또한 관제업무로 마무리하는 사람들이다. 실 관제업무를 떠나더라도 유도로 위에서 진행되는 각종 등화, 토목 작업의 가능 여부를 판별하는 건 항공기와의 충분한 분리 간격이 유지되는가(=항공기 충돌 방지=관제)에 달려있다. 그래서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아주 오랫동안 숫자 3의 영어 발음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고, 관제 용어의 악센트 부분을 조절해보려고 노력도 많이 해왔고,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받으면 대체 어떻게 대답하는 게 좋을 지에 대해 상념에 빠지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뒤에서 조종 업무를 보시는 걸 구경하고 있다 보니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운항을 하는 중에는 관제사의 역할도 꽤 크구나.
바쁘게 체크리스트가 진행되는 중에도 헤드셋으로 우리 비행편을 찾는 관제사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운항승무원의 눈은 그 관제교신이 지시하는 계기판을 쫓았고, 손은 마이크 버튼으로 향했다. 심지어는 비슷한 편명을 가진 다른 항공편을 부를 때에도 순간적으로 그 관제사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실제로도 전체적인 운항 단계를 관제사가 옆에서 지켜보며 도와주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완전히 동업자 관계고만.
이런 걸 좀 느껴보라고, 관제실에 갇혀서 가만히 보지만 말고 같이 좀 움직이면서 다른 시각에서 항공을 바라보라고 관제사에게 관숙비행을 시키는 건가 보다. 운항승무원의 세계에 대해 이해할 수 있어서 좋은 날이었다.
입사 자기소개서에 쓴 것처럼 역시나 공항은 너무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살아내는 유기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안전하고 효율적인 항공기 운항이라는 큰 목표를 갖고 제 위치에서 몫을 다 해내는 느낌. 그렇다면 항공종사자 별로 전부 관숙을 시켜주면 안 되나? 일일 객실승무원 관숙, 관숙정비, 관숙운항관리,,,, 가능하면 관숙지상조업도. 안 될까? 역시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