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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진 Dec 28. 2022

관제탑 출근길은 멀기도 하여라

공항 그리고 출입증 이야기


누군가 터미널 1층에서 놓친 풍선이 2층 천장에.



공항 면세구역에 있다 보면 이 안에 있는 직원들은 도대체 어떤 길로 출근하는지, 그런 의문이 들지 않으시던가요? 여행객이 면세구역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여권 심사를 받고 출국 절차를 완료해야만 하니까요. 그럼 직원들은 출퇴근 시 여권을 항상 들고 가는 걸까요? 아닙니다. 저희는 여권 대신에 신분을 증명하는 '출입증'을 사용해서 출퇴근하고 있어요. 일반적인 회사원들은 각 회사별로 만들어 제공하는 사원증이라는 걸 목에 걸고 다니죠? 공항 상주직원들, 특히 그중에서도 면세구역이나 계류장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각 회사별 사원증이 아니라 공항에서 교부하는 출입증이라는 걸 항상 패용하고 다녀야 합니다.



인천국제공항 보호구역 출입증 규정에서 발췌


오른쪽에 출입증 종류가 보이시죠? 저렇게 생긴 '정규출입증'을 소지하고 있어야 공항을 혼자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어요. 직원이 공항 내부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상주직원 전용 출입구는 생각보다 많은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특히 1터미널은 3층과 2층 바로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죠. 이 출입증을 갖고 들어가서, 어떤 기계에 출입증을 스캔하고, 소지품 스캔을 포함해서 보안검색을 받은 후에야 면세구역 쪽으로 입장할 수 있습니다. 매번 출근할 때마다 보안검색을 받아야 하니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이제 꽤 익숙해져서, 출입구에 들어가기도 전에 벌써 겉옷을 벗고 가방을 내려놓으면서 소지품 스캔할 준비를 마칩니다.


이제 위의 사진에서 왼쪽 페이지를 봐주세요. 직원 출입구로 들어갈 때에는 카테고리 B에 해당하는 항공기 탑승지역과 카테고리 E인 항공기 이동지역(계류장 등)의 두 군데 중 하나로 입장할 수 있는데요. 탑승동 근처에 위치한 타워로 출근할 때에는 B구역으로 입장해서 탑승동으로 향하는 셔틀트레인을 타러 가고, 2터미널 타워로 출근할 때에는 곧장 E구역으로 입장해서 관제탑까지 걸어가요. 다행히도 저희 관제탑 두 개는 터미널과 탑승동에 가까이 붙어있어 도보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죠. 계류장에 해당하는 E구역에 들어선 후에, 부대건물에 해당하는 계류장관제탑은 D구역 소지자만 입장할 수 있기 때문에 출입문에서 한 번 더 출입증을 태그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고요. 계류장관제탑에서 관제업무가 이루어지는 관제실은 또 A구역에 해당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관제실에 들어가기 위해 태그기에 A구역 진출입이 가능한 출입증을 태그해야만 출근이 마무리된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팀 관제사는 A구역(관제탑 관제실), B구역(승객이 이동하는 면세구역), D구역(계류장관제탑 등 부대시설), E구역(계류장 등 항공기 이동지역)의 총 네 가지 카테고리를 소지하고 있어야 출퇴근이 가능한 셈이죠.


오늘은 깜박하고 출입증을 집에 두고 출근하는 바람에 관제탑으로 출근할 수가 없게 되었지 뭐예요. 비공식적으로 타워에 8시 45분까지 도착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집에 있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제 출입증을 택시에 태워 보내달라고 말씀드렸죠. 출입증이 없으면 면세구역 쪽으로 진입조차 할 수 없거든요. 그렇다고 터미널에서 손가락이나 빨고 있을 순 없잖아요. 다행히 '출입증만' 택시를 타고 공항에 제시간에 도착해서 딱 맞춰 출근할 수 있었답니다. 예전에 동기오빠가 이런 실수를 했을 때에는 ㅋㅋㅋ 바보 아냐!라고 했지만 오늘은 제가 바보가 되었네요. 이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출근을 위해 집을 나가는 길에 눈에 잘 띄는 곳에 출입증을 걸어두어야겠습니다.



식당 걸어가는 길에 청사초롱을 봤어요.



열심히 관제를 하다 보면 점심시간이 찾아오죠. 타워에 갇혀있는 신세지만 관제사도 밥은 먹어야 하잖아요? 탑승동 면세구역 쪽에 위치한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공항이다 보니, 꽤 많은 직원식당이 터미널에 위치하고 있어요. 보통은 식사를 하지 않고 간편식을 타다 먹지만 오늘은 아침에 정신도 없었고 하니 밥을 든든히 먹어야겠어요. 인천공항은 크기가 아주 크죠. 그래서 직원식당도 보통은 동편, 그리고 서편에 각각 위치하고 있답니다. 밥을 먹으러 가기 전, 오늘의 식단표를 확인한 후 조금 더 끌리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식당에 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관제탑을 나서야 해요. 바깥에 있는 시간이 짧긴 하지만 요즘엔 날씨가 워낙 추우니 겉옷을 단단히 해야겠죠.


탑승동에 입성한 후 식당으로 가는 길에 저와 똑같이 생긴 출입증을 목에 걸고 있는 직원 무리를 만났어요. 잘 모르는 분이지만 목례를 하고 지나가 보도록 합시다. 그건 예의니까요. '출입증' 자체는 다 똑같이 생겼기 때문에,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저기 저 직원이 어느 소속인지 파악하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공항의 다양한 회사들은 각 회사별로 출입증을 끼울 수 있는 카드목걸이를 배부해서 같은 회사 사람끼리는 서로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하고 있습니다. 저희 회사도 눈에 무지 잘 띄는 특정 색을 사용한 카드목걸이를 사용하고 있어요. 지나다니면서 각 회사의 목걸이 디자인을 구경하는 것도 꽤나 재미있답니다. 굳이 회사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면 아예 눈에 띄지 않도록 개인의 카드목걸이를 사용하기도 하지만요.



비행기 보면서 마시면 을매나 맛있게요.



오늘은 밥 먹고 카페에서 입사동기를 만나기로 했거든요. 빠르게 식사를 흡입한 후 카페 쪽으로 후다닥 걸어가 봅니다. 입사하기 전에, 저는 당연히 면세구역에 있는 카페는 직원들이 이용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면세구역에 위치한 카페에서도 저희는 커피 같은 걸 주문해서 마실 수 있어요. 대신 면세품은 구매할 수 없지만요. 밥 먹고 디저트를 먹을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멀리서 걸어오는 동기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고, 밥을 먹은 참이니 달달한 음료를 주문해 봅니다. 오랜만에 동기의 출입증에 눈이 가네요. 우리 동기는 출입증 카테고리를 무려 6개나 보유하고 있었어요. A, B, C, D, E, F까지! '와, 카테고리 다 있어서 좋겠다.'라고 칭찬을 날렸더니, '야, 이거 좋은 게 아니야. 일 많이 하라는 뜻이라고.' 하며 시니컬하게 대답하는 걸 들을 수 있었습니다.


출입증은 반드시 내 몸의 일부인 것처럼 갖고 다녀야 해요. 이게 없이는 아무 지역에나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거든요. 퇴근길에도 출입증을 태그하고 나와야 하기 때문에, 완전히 면세구역을 빠져나오기 전까지 목걸이는 꼭 몸통에 붙어있도록 해줍니다. 탑승동에서 셔틀트레인을 타는데, 이제 막 인천공항에 도착한 여객들과 함께 이동하게 됐어요. 최근에는 여객이 많이 회복되어서, 트레인이 복작복작한 게 아주 만족스럽네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서는 여객들과 이동동선이 분리되어요. 여객들이 입국수속을 받는 방향은 직원의 퇴근 동선과 정 반대 방향이죠. 그런데... 제 뒤에 오는 여객이 절 따라오는 것 같은데요. 이쪽이 아니라 반대쪽으로 가셔야 해요! 나름 친절히 가르쳐드리고는 다시 신나게 퇴근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출입증을 태그하고 B구역에서 탈출하면 이제는 목걸이를 벗어도 괜찮아요.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된 기분이네요. 이제 아무도 제가 직원인지 알 수 없거든요.


그래도 내일의 출근을 위해 출입증은 품에 소중히 품고 가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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