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추웠으면 펑펑 내리는 눈이 되었을 테지만 어제는 봄비가 세차게 내리더군요. 산불이 이리 번지고 저리 번져 사람들의 속을 새까맣게 태워먹었는데 이제야 내리는 비를 보며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비가 오니 에어사이드를 산책하는 참새를 볼 수 있었어요.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뿐인 에어사이드에서 생물을 만나는 건 쉽지 않은데, 비 피할 데가 없어 터미널 건물 아래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이 신기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출근하기 싫은 건 모든 직장인이 마찬가지 아닐까요? 집을 나서기도 전에 우산이라는 장비를 하나 더 대동해야 하고,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최대한 몸에 물기가 묻지 않게 우산을 잘 털어내야 하니까요. 여간 귀찮은 게 아니잖아요. 요즘에는 재택근무가 보편화되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현장에서 일하는 공항 관제사는 재택근무를 할 수 없습니다. 첫째는 비행기를 직접 봐야 관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며, 둘째는 관제에 필요한 여러 종류의 장비가 집이 아닌 관제실에만 있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관제할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어떨까요? 우리 팀은 AI를 활용한 디지털관제플랫폼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원격관제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겠죠. 인천공항이 지금보다 더 확장되어 5활주로가 생기고, 제3터미널이 생긴다면 분명 어딘가에 다른 계류장관제탑을 건설해야 할 텐데요. 기존에 있던 건물에 제3터미널을 관제할 수 있는 원격타워시설을 배치한다면 그렇게 큰 공사비를 들이지 않아도 공항의 전 구역을 커버할 수 있을 거예요.
사진의 왼쪽에 보이는 큰 화면이 우리가 보는 스마트관제시스템입니다. 실제로 2터미널 관제석에서 책상 등의 시야 차폐로 잘 보이지 않는 RA, RB, RC 등 유도로가 어라운드뷰로 깔끔하게 표출되어요. 후방견인 허가를 주면 항공기가 잘 움직이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CCTV를 해당 주기장에 맞춰놓고 살펴야 하는데, 마우스를 움직일 필요도 없이 큰 스크린으로 보이는 주기장 영상을 확인할 수도 있죠. 시야 차폐구역의 교통상황을 체크하는 데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디지털트윈 계류장뷰에 출도착 항공기의 예상 이동경로가 표시되기도 해요.
한 가지 더 신기한 것은, 조종사와 관제사의 교신 내용을 들은 후 텍스트형식으로 표출해 준다는 점이에요. 영어이긴 하지만 한국인 관제사의 억양이 묻어나기 때문에 초기 정확도는 별로 좋지 않았지만 확실히 교신이 거듭되고 업데이트를 반복할수록 더 잘 알아듣더라고요. 예를 들면 진에어를 JIN AIR로 표시하기보다는, GINA나 GIANT로 표기하는 일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인식률이 좋은 편입니다. CCTV 보느라 마우스도 움직여야 하고, 교신한다고 마이크도 쥐어야 하고, 다른 관제사와 협의하기 위해 전화받고, 견인항공기를 관제할 때에는 무전기를 사용하니까 이게 한 번에 몰리면 얼마나 바쁜지는 아시겠죠? 디지털관제플랫폼을 활용하면서 CCTV 맞추는 빈도가 줄었고, 교신 내용을 재확인하기 위해 조종사나 견인운전자에게 confirm 하는 경우도 줄었어요. 만족스럽게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 플랫폼이 계속 발전한다면 정말 인천공항도 원격관제가 가능할까요? 아직은 예측하기 어렵지만, 소규모로 지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5터미널 계류장관제에는 충분히 시도해 볼 수 있겠어요. 혼잡한 인천공한 전 구역에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어도, 도서지역의 작은 공항에 원격관제를 적용하는 것도 좋겠죠. 그런 공항은 본토와 너무 떨어져 있는 데다가 관제사 근무시간도 너무 길어 비선호 근무지일 테니까요.
해외에선 이미 원격관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런던 시티 공항(London City Airport)은 지난 2021년 4월을 시작으로 원격 디지털 타워를 운영해오고 있어요. 하루 약 1만 명이 넘는 승객과 200편 가까이 되는 운항편이 다니는 곳이니, 그렇게 작은 숫자는 아니죠? 공항 이동지역을 비추는 카메라와 센서로 공항 전경을 360도로 비추고 있습니다. 관제사는 실제 공항과 약 108마일 떨어진 Swanwick 센터에서 관제를 하고 있는데요. 스완윅에 해가 쨍쨍하더라도 런던 시티 공항에 비가 오면 으슬으슬하고 추운 것만 같아 겉옷을 껴입기도 한다네요. 신기하지 않나요?
집에 관제 장비와 온갖 모니터를 갖다 놓고 관제하는 건 좀 힘들겠지만, 공항 관제탑이 아닌 다른 곳으로 출근해서 관제하는 건 조금 기대해 봐도 되겠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