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 없이도 질서가 흐르는 곳

<관제탑 창 너머> 5회 기고문

by 소진

우리나라 도로에는 무슨 악당이 그렇게 많은지. 하루가 멀다고 주차 빌런, 속도위반 빌런, 그리고 음주 운전 빌런까지 등장해 운전자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건널목 앞에는 정지선이 있지만 언제나 자동차의 움직임이 우선이다. 보행자는 건너갈 권리를 보장하는 횡단보도 앞에서 한참을 주저하다가, 차가 없는 틈을 타 재빨리 도로를 건넌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자동차 행렬이 있으면 손을 들어 건너겠다는 의사를 표시해야 자동차가 속도를 줄이는 시늉이라도 한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국제교통포럼에서 발간한 <도로교통안전 연간 보고서 2024>에는 거리 안전에 취약한 우리나라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다. 총 22개국 중, 주행거리를 기준으로 한 사망자 수 통계에서 우리나라는 두 번째로 높은 사망률을 보였다. 개선된 점도 있었다. 2013년과 비교했을 때 2023년에는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가 절반이나 감소했다고 한다. 괄목할 만한 성과이지만 10년 전 그야말로 최악이었던 교통안전이 이제야 최하위권이라는 오명을 벗어난 것이 전부다.


거리는 본래 사람의 영역이다. 그러나 자동차가 보행자의 길을 점령하며 ‘사람의 거리’는 끊임없이 좁아졌다. 도로는 공공의 공간이기에 인간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줄 수 있어야 한다. 더 큰 위험을 통제할 수 있는 기계가 약자인 사람에게 길을 양보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도로 위 현실은 다르다. ‘늦게 가면 손해’라는 생각은 자동차와 다른 자동차 사이에도 빈번하게 발동한다. 꼬리물기로 반대쪽의 차량 흐름을 막아버리거나, 급하게 끼어들고 속도 경쟁을 하는 모습은 우리나라의 빨리빨리 문화를 그대로 답습해 온 결과다. 초보 딱지를 붙이고 운전하는 차량에 클락션을 울리고, 심지어는 욕설을 날리는 경우가 더 잦다는 것은 모두가 경험으로 인정하고 있다.


일반적인 도로와 다르게, 신호등 하나 없이도 평화로운 교통 상황을 유지하는 곳이 있다. 바로 인천공항의 에어사이드(airside)다. 인천공항의 활주로와 계류장을 포함하는 에어사이드에는 신호등이 없다. GSE 도로라 불리는 차량 도로가 얽히고설켜 있지만 정지선과 제한 속도만 있을 뿐, 자동차끼리의 순서를 정해주는 수단은 전무하다. 혹자는 신호등이 아닌 관제사가 자동차와 조업 장비의 이동과 정지에 관여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관제사가 지상 차량과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지상조업 장비는 자발적으로 움직이며, 안전을 위해 도로 교차 지점의 정지선 앞에 멈추어 좌우와 전방의 교통 상황을 확인한 후 재출발한다.




특이하게도, 교차로에서는 차량과 장비들이 서로 순서를 양보하려고 눈치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누구든지 먼저 양보하려는 것을 기다리다가 몇십 초가 지나버린 적도 있다. 일반적으로 자동차보다는 비교적 속도가 느린 지상조업 장비가 수신호로 양보 의사를 전달한다. 교통수단과 보행자 사이에서도 눈치 싸움이 벌어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건널목이 없더라도 사람이 도로를 건너는 것 같으면 바퀴 달린 것들은 자연스레 속도를 줄인다. 언뜻 무질서해 보이는 이 공간은 모두의 양보와 배려로서 돌아가고 있다. 면허를 따고 에어사이드에서만 운전하다가, 집 앞 도로에라도 나가게 되면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신호등과 교통경찰 없는 공항 안의 도로에서 운전하는 것이 일반 도로의 운전보다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교통문화가 성숙한 나라들은 오래전부터 ‘자동차보다는 사람이 먼저’라는 원칙을 당연하게 여겨왔다. 우리나라도 2022년부터 곳곳에 보행자 우선도로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이곳은 차도와 인도가 분리되지 않은 곳에서 보행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설정된 도로이다. 자동차의 제한 속도는 시속 30km이며, 보행자 보호 의무에 따라 사람의 통행을 방해하면 안 된다.


자동차 수가 훨씬 많은 일반 도로에서도 양보하고 배려하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 지금처럼 교통 빌런을 찾는 게 어려워질지 모른다. 곧 질서라는 것은 규제나 장치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가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보행자 우선도로에서뿐만 아니라, 어떤 길에서도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사람이 차도 앞에서 주저하지 않고 눈빛만으로도 양보를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 공항 에어사이드에서의 운전처럼, 내가 조금 늦더라도 먼저 멈춰 기다릴 줄 아는 여유가 쌓일 때 비로소 거리가 다시 사람의 품으로 돌아올 것이다.


•국민일보 오피니언란에서도 해당 기고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월 1회 연재)

<신호등 없이도 질서가 흐르는 곳>
[관제탑 창 너머] 신호등 없이도 질서가 흐르는 곳-국민일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감사 인사를 남발하는 관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