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할지도 몰라!
요즘에는 1터미널과 탑승동을 관할하는 제1관제탑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한가한 시간과 바쁜 시간이 너무 명확히 구분되어서 재밌다. 한가할 땐 제발 어떤 비행기라도 날 불러줬으면... 했다가도 곧이어 바로 터지는 비정상 상황 여러 건에 역시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며 혼이 쏙 빠진다.
최근에는 인접게이트에 대여섯 대가 출발도 하고 도착도 하겠다고 너도나도 요청해 계류장관제사를 꽤나 난도가 높은 시험에 빠트린다. 예를 들자면 1터미널을 한참 관제 중인데 6, 7, 9, 11, 12, 14번 탑승구에서는 출발하겠다고 1분 간격으로 후방견인을 요청하고, 저기 멀리서는 3, 8, 10번을 받은 도착 항공기가 들어오는 게 보인다. 이럴 땐 두뇌를 풀가동해서 어떻게든 최대한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지상 이동을 도우려고 하는데 마음처럼 쉽지는 않다.
첫째로, 출발항공기에게 후방견인 허가를 주면 평균적으로 그 항공기가 7분 정도 유도로를 점유한다. 쉽게 말하면 ‘길막’하는 셈이다. 비행기가 워낙 크다 보니 만약 12번에서 후방견인을 시작하면 방향에 따라 11, 10, 9, 8번까지도 후방견인이 불가능하게 되니 머리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서 공간을 쥐어짜내야 한다. 둘째로, 방금 나열한 주기장끼리의 이동 동선이 매우 협소하다. 출발항공기가 ‘길막’하면 그보다 탑승구가 더 안쪽인 도착항공기는 들어갈 수 “없다.” 물론 우리의 관할 유도로가 아닌 기동지역 유도로(A, M)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애초에 사용 전 협의가 필요한 데다 기동지역이 붐비지 않을 때에 눈치껏 요청해야 해서 쉽지가 않다.
출도착 항공기의 주기장을 다닥다닥 붙여 배정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나는 여객 쪽의 일은 잘 모르지만, 터미널 실내의 조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인 거라고 추측해 본다. 계류장이 해당하는 실외에서의 안전을 지키려면 너무 인접한 주기장에서의 동시다발적인 출도착은 지양하는 게 좋지만.... 어딜 가도 사람이 모자라 아우성이라고 하니 실내 사정을 이해해 보기로 한다.
여객은 너무 주기장을 몰아 배정해서 문제인데, 화물은 그냥 계류장을 일부 폐쇄한 채로 운영해서 문제다. 공사판인 화물계류장에서는 항공기가 길게는 15분씩 옴짝달싹 못하고 기다리는 경우가 생기니 참 난감하다. 그렇다고 쩍쩍 갈라져 너덜너덜해진 계류장의 포장 공사를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더 나은 운항을 위한 공사 때문에 유도로가 막혀있는 거지만, 마이크를 잡고 조종사에게 예상 지연 시간을 알려 줄 때마다 죄인이 된 느낌이 든다.
미안함을 떨어 버리기 위해 요즘엔 이런 방법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바로 ‘감사 인사’하기! 나는 관제할 때 말을 짧게 하는 걸 선호하기 때문에, via나 of, to와 같이 의미 없는(?) 전치사는 모조리 생략하는 편이다. 대신 이렇게 야금야금 아낀 소중한 시간을 조종사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하는데 쓴다.
Thank you for waiting.(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Thank you for cooperation.(협조 감사합니다.)
하고 감사 인사를 전하면,
You're welcome.(별말씀을요.)
Have a nice day.(좋은 하루 보내세요.)
하는 기분 좋은 반응이 돌아온다.
이래서 내가 감사 인사를 끊을 수 없는지도?
가끔은 비가 왕창 쏟아지면서 꼭 번개를 같이 데려온다. 번개가 치면 지상조업하는 인원의 안전 문제 때문에 공항 계류장에서의 조업이 중단된다. 그 말인즉슨, 터미널에서의 항공기 운항도 중단된다는 이야기다. 출발항공기는 후방견인 할 수 없고, 도착항공기는 주기장 앞에서 번개가 그치길 기다려야 한다. 계류장관제사도 번개가 그치고 조업이 다시 시작되길 간절히 바란다. 며칠 전에는 막 계류장으로 들어온 도착 비행기를 맞을 조업 인원이 나오지 않아, 잠시 유도로에서 대기시켰다가 들여보냈는데 이런 이야길 들었다.
“Thank you for cooperation.(협조 감사합니다.)”
조종사와 관제사는 서로 협조하고 있는데,
번개는 협조할 생각이 없는가보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