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에로플로트 821, 승무원에게 무슨 문제 있습니까?
<해당 교신은 아에로플로트 821편 사고 조사보고서와 실제 CVR 기록을 바탕으로 직접 작성하였습니다.>
조종실 내부에서의 기장(PIC)과 부기장(F/O)간 대화는 초록 글씨로, 관제기관(ATC)과 조종사(Pilot)의 교신은 파란 글씨로 표시합니다.
사고 조사보고서 : B-737 VP-BKO Final Report, Interstate Aviation Committee
CVR(Cockpit Voice Recorder) : 조종실 음성기록장치
PIC : "Do what you fu*ing have to do. Come on. 240, set?"
- 기장 : 니가 해야 되는 그 엿같은 걸 하라고. 제발. 124.0 주파수 세팅했어?
F/O : "Set."
- 부기장 : 세팅했습니다.
PIC : "Just do it all yourself. OK?"
- 기장 : 다 니가 하라고. 알겠어?
F/O : "OK."
- 부기장 : 예.
이 대화는 살인적인 스케줄로 비행하는 데다가 술에 취하신 기장님이 아직은 비행이 어려운 부기장에게 모든 걸 떠넘겼던 2008년 9월의 어느 날, 하늘에서의 급박한 기록을 재구성한 글의 시작입니다.
Pilot : "Perm approach, Aeroflot 821, we're descending *4500. Approching **4th marker."
- 조종사 : 페름 접근관제, 아에로플로트 821, 4500m로 하강하면서 네 번째 마커로 접근 중입니다.
ATC : "Aeroflot 821, Perm Approach, Good morning. Cleared to approach Mendeleyevo 4 Bravo, Descend to 2700. "
- 관제사 : 아에로플로트 821, 페름 접근관제, 좋은 아침입니다. 멘델레예프 4B(MN 4B) 접근을 허가합니다. 고도 2700m로 하강하십시오.
Pilot : "Descend to 2700... and, confirm with Mendeleyevo 4 Alfa?"
- 조종사 : 2700m로 하강... 그리고, 멘델레예프 4A 접근이 맞나요?
ATC : "Negative, Aeroflot 821, MN 4 Bravo."
- 관제사 : 아뇨, 아에로플로트 821, 멘델레예프 4B 접근입니다.
*항공에서는 고도 ft와 거리 mile이 기본 단위이나, 중국과 러시아는 단위로서 고도 m와 거리 km를 사용한다.
** 내가 모르는 네 번째 마커가 있나 싶어 찾아봤다.(???) 그런 거 없다. 술 취한 기장님은 final marker도 만들었다.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을 출발하여 페름 공항으로 접근 중이던 아에로플로트 821편은 주파수 124.0의 접근 관제사와 교신하여 MN 4B 접근을 받는다. 그간 사용해왔던 절차가 MN 4A 접근이었기 때문에, 조종사는 관제사에게 절차를 확인했고, 다시 정확히 MN 4B접근이라는 답을 받는다. 당시 공항에는 9kt 정도의 강한 배풍이 불고 있었고, 막 이륙하려던 루프트한자 항공기가 이륙 코스를 급히 변경 중이었다. 두 항공기의 분리를 위해 관제사는 접근 중인 아에로플로트에게 평소와는 다른 Bravo 접근절차를 주었다고 한다. 급작스럽게 바뀐 이 접근절차는 실제로 조종사에게 혼란을 주었다.
F/O : "Hey, how is Bravo.. Bravo different...?"
- 부기장 : 그래서 Bravo가 뭐야. Bravo는 다르...?
익숙하지 않은 접근절차를 발부받은 항공기에게 관제사는 디테일한 정보를 알려준다.
ATC : "Aeroflot 821, expect approach via outer marker, for your information : aircraft lining up for departure, wind not suitable for it, heading 213... 212."
- 관제사 : 아에로플로트 821, 외측 마커를 통한 접근을 하십시오. 이륙 항공기가 활주로로 들어서고 있는데, 바람이 적합하지 않아서요. 기수는 213.. 212도를 유지하십시오."
정보를 받은 후에도 조종사들은 혼란스럽다. 게다가 기수 지시는 213이라는 건지 212라는 건지. 관제사 스스로도 익숙하지 않은 절차를 적용하기가 힘들었던 듯싶다. 실제로 당시 관제실 내부에서도 비표준적인 접근 절차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는 사람이 있었다.
F/O : "So what are we going to do? Present course?"
- 부기장 : 그래서 어떡하라는 거죠? 지금 코스를 유지하나요?
PIC : "We join with course to outer marker, and what speed do we need for fu*'s sake?"
- 기장 : 외측 마커로 진행한다. 그래서 속도는 몇으로 해야 한다고? 아주 그지 같군.
F/O : "Why don't we enter marker with the landing course of 032?"
- 부기장 : 032도 방향으로 착륙하면서 마커에 진입하는 건 어떻습니까?
PIC : "I don't know, he'll tell everything."
- 기장 : 몰라. 관제사가 말해주겠지.
외측 마커로 접근하는 익숙하지 않은 절차의 사용 때문에 기장은 매우 짜증이 나 있었다. 이런 말을 하면서도 비행기는 계속 MN 4A 절차를 따르며 기수 085도로 비행하고 있었다. 브라보라고요, 기장님.
관제사는 비행기가 정확히 마커로 진행하고 있지 않다는 걸 확인했지만, 이륙하는 루프트한자와 이미 충분히 고도 및 거리 분리가 된 걸 알았기 때문에 굳이 방향을 고쳐주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 조종실 내부에서는 기장과 부기장이 우회전할 것이냐 좌회전할 것이냐를 두고 의견이 불일치한다. 불난 집에 기름 붓듯이 관제사는 더더욱 조종사의 혼란을 가중시킨다.
ATC : "Aeroflot 821, cancel MN 4 Bravo approach, descend to 2100m, turn right heading 130."
- 관제사 : 아에로플로트 821, MN 4B 접근 허가를 취소합니다. 2100m로 하강하고, 우회전하여 기수는 130도를 유지하십시오.
왜 갑자기 접근 허가를 취소했는지는 불분명하나, 조종사의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고, 익숙하지 않은 절차를 따르는 것이 위험하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토록 짜증 나던 접근 절차가 취소되고 ***레이더 벡터를 통해 아에로플로트는 공항으로 가게 되는데, 정확히 어떻게 착륙하는지 모르는 상태로 조종사는 계속 비행한다.
***Radar Vector : 레이더 유도. 이미 수립된 접근 절차를 따르는 것이 아니고, 관제사가 구두로 지시하는 방향과 고도, 속도를 따르며 항공기를 공항까지 접근시키는 것. 인천공항에도 STAR라는 접근 절차가 있으나 99.9% 레이더 벡터링으로 접근한다.
ATC : "Aeroflot 821, descend to 600m, cleared to base turn."
- 관제사 : 아에로플로트 821, 600m로 하강하십시오. base 턴을 허가합니다."(활주로로 가까이 가도록 허가)
(잠시 후)
ATC : "Aeroflot 821, accoarding to my data, you're climbing... now altitude 900m, can you confirm?"
- 관제사 : 아에로플로트 821, 레이더상에 현재 고도 900m로 상승 중인 것으로 표시가 되는데요. 확인 가능하십니까?"
PIC : "How low must we descent? How low must we descent?"
- 기장 : 얼마나 내려가야 한다고? 얼마나??
F/O : "We must descend to 600."
- 부기장 : 600m로 하강해야 합니다.
Pilot : "We can confirm and we're descending now."
- 조종사 : 네 확인했고요.. 지금 하강하고 있습니다.
ATC : "Aeroflot 821, complete right turn for heading 360, descend to 600."
- 관제사 : 아에로플로트 821, 우회전해서 기수는 360도를 향하십시오. 600m로 하강하십시오."
Pilot : "Course 360, descending to 600. Aeroflot 821."
- 조종사 : 360도, 600m로 하강하겠습니다, 아에로플로트 821.
관제사는 항공기가 base turn 하기 전 접근 중인 고도가 정해진 고도보다 한참 높다는 것을 알았지만 고도를 재 지시하지 않고 base로의 진입을 준비시킨다. 이미 MN 4B라는 절차 때문에 머리가 아픈 조종사를 더 힘들게 하는 부정확한 관제지시다. 항공기가 상승한다는 것을 알아채고 나서야 관제사는 공항으로의 접근을 취소하고 기수를 다시 지시한다.
F/O : "Why doesn’t it descend? I’ve pressed heading select."
- 부기장 : 왜 안 내려가지지? '기수 선택' 버튼을 눌렀는데..?
PIC : "Should press LEVEL CHANGE BUTTON, you idiot."
- 기장 : 그게 아니고 '고도 바꿈' 버튼을 눌러야 한다고, 멍청아.
수동 조작이 미숙한 부기장에게 모든 걸 맡긴 기장은 관제기관과 교신하느라 부기장의 행동에 신경을 쓰지 못한다. 이미 level change 버튼은 정상 작동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체가 하강하지 않은 이유는 속도 조작과 고도 조작을 동시에 했기 때문이다. 속도를 줄이면서 고도를 하강시켰다면 autopilot mode에서는 속도를 먼저 줄이고 그다음에 고도를 천천히 하강시킨다. 모든 워크 로드가 부기장에게 집중된 불균형의 조종실에 있던 기장님은 ****복행보다는 착륙하고 싶었기 때문에 다시 관제기관과의 교신을 시도한다.
****복행(Go around) : 활주로로 접근하던 착륙을 포기하고 고도를 다시 높이는 것. 다시 돌아와서 착륙을 시도해야 한다.
Pilot : "Approach, if you don't mind, can we continue our approach?"
- 조종사 : 접근관제, 괜찮으면 계속 접근할까요?
ATC : "821, course 360, descend to 600."
- 관제사 : 821, 기수 360도, 600m로 하강하십시오.
ATC : "821, is everything OK with the crew?"
- 관제사 : 821, 승무원들에게 무슨 문제 있습니까?
Pilot : "Aeroflot 821, affirmative."
- 조종사 : 아에로플로트 821, 문제없습니다.
ATC : "Aeroflot 821, Roger, then follow my instructions strictly. Vectors to final, right turn to heading 360, descend to 600."
- 관제사 : 아에로플로트 821, 알겠습니다. 제 지시를 정확히 따르십시오. 파이널까지 벡터링합니다. 우회전하여 기수는 360도, 600m로 하강하십시오.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느낀 관제사는 승무원의 상태가 어떤지 묻는다. 누구는 이 질문이 '도대체 술을 얼마나 마신 거예요?'와 같은 말이라고 하던데, 내가 아빠의 목소리를 들으면 술에 취했는지 아닌지 대번에 알 수 있는 것처럼 러시아인 관제사도 러시아인 조종사와 러시아어로 교신하며 술에 취했다는 걸 느꼈을 테다. 실제로 CVR 영상 댓글에는 '나도 러시아 사람이지만 조종사가 대체 뭐라고 말하는지 모르겠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알코올과 함께 비행 중이었지만 전혀 문제없다는 기장님의 거짓말을 확인받은 후, 관제사는 지시에 확실히 따를 것을 요청했다. 기장은 ATC의 지시를 복창은 했으나 끝까지 복행하고 싶지 않았다. 굳이 착륙하기 위해서 기체를 조작한 그 순간, 기체는 우측으로 50도 정도 기울어지며 경고 음성이 재생된다.
(BANK ANGLE)
F/O : "Ah! What are you... What are you doing?"
- 부기장 : 어! 기장님, 뭐 하시는 겁니까?
간신히 기울어진 기체를 원래로 돌리는 데 성공한 부기장의 다급한 말을 뒤로하고, 야속한 기체는 이번에는 좌측으로 심하게 기울어지며 조종불능 상태가 된다.
F/O : "Take it. Take it. Take...!"
- 부기장 : 조종해 주십시오. 조종이요..!
PIC : "What do you mean fu*ing take what? I can't either..."
- 기장 : 뭐라는 거야, 내가 하라고? 난 못한다고...
F/O : "In the opposite direction! Damn. What the fu* are we doing?"
- 부기장 : 반대 방향으로! 젠장. 우리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이미 배면이 하늘로 향하도록 기체가 뒤집어지고, 비행기는 속도를 잃으며 추락하기 시작한다. 위급한 상황에서도 조종사는 끝까지 관제사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고, 관제사는 조종사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니, 결국 관제사의 이 마지막 교신에는 아무도 대답하지 못한다.
ATC : "Aerofloat 821, contact tower 127.1"
- 관제사 : 아에로플로트 821, 관제탑 주파수 127.1으로 교신하십시오.
F/O : "Shit."
PIC : "Fu*!"
(SINK RATE)
소름 돋게 슬픈 기내 알람을 마지막으로 아에로플로트 821편은 지면과 충돌한다. 하늘은 당시 기내에 타고 있던 승객 82명과 승무원 6명을 모두 데려갔다. 안타까운 혹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아에로플로트 821편에는 한 여자아이를 입양하러 가는 프랑스인 아빠가 타고 있었는데, 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 아빠에겐 이미 입양한 아들이 있었다는 것. 어느 죽음이 슬프지 않을 수 있겠냐마는, 한 순간에 아빠를 잃은 두 아이와 아내에게 감히 위로도 못 건넬 만큼 아픈 사고다.
이 사고는 유튜브에 올라온, 조각조각 편집된 영상만 보면 '술에 취한 조종사가 일으킨 사고'라고 으레 단정 짓기 쉽지만 깊게 들어가 보면 딱히 그것만이 원인이 된 것은 아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1) 기장은 3일 동안 무려 일곱 번(!!)이나 비행했고, 이 비행이 바로 그 일곱 번째 비행이었다. ICAO에서 규정하는 워라밸은 멍멍이에게 갖다 줘 버리는 끔찍한 스케줄에 피로는 말도 못 하게 누적되어 있었을 것이다. 굳이 스트레스를 풀자면 술이 조금 도움이 되었을지도. 술을 먹고 조종간을 잡은 기장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얼마나 피로도가 심했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2) 항공사에서 실시하는 부기장과 기장의 교육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었다. 운항 스케줄도 조절을 못 해주는 마당에 CRM 교육이 참도 잘 되었겠다.
(3) 마지막으로, 조종사 상태에 문제가 있어 비행기가 제 멋대로 돌아다니는 것을 알면서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관제사도 책임에서 아주 벗어나기는 어렵다. 지시와 어긋나는 움직임을 보일 때에는 어떻게 착륙하게 되는지 더 정확하고 명확히 설명했어야 한다.
항공종사자에게 술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술에 의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은 케이스를 찾아보다가 이번 사고를 알게 되었는데, 역시나 항공사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인적요인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더 확고히 하게 되었다. 그런데 술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 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