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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진 May 17. 2021

인천공항 활주로 이탈사고의 재구성

UPS61, 인천 타워, 잘 들립니까?

비행기 사고는 끔찍하다. 교통수단 중에서는 사고 발생 빈도가 가장 낮을 정도로 안전한 교통수단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한 번 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수많은 인명피해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잔인하다. 구글에 당장 '항공기 사고'라고 입력하면 연관검색어에 '확률'이 따라붙는 것만 봐도 일반 탑승객들이 느끼기에 항공기 사고는 남일만은 아닌 것 같다. 2019년까지의 전 세계 항공기 운항 횟수를 기준으로 할 때, 운항 횟수 천 만 회당 사망사고 발생 건은 *약 5회로 확률로 따지자면 0.0005%가 된다. 1970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약 60회였으니 무려 12배나 사고 발생률이 줄어들었다. 사망사고를 겪지 않을 확률이 12배나 늘었으니 좋은 결과라고 볼 수 있으려나. 항공교통 안전성의 비약적인 향상의 뒤편에는 항공기 사고와 사고의 희생자들이 있었다는 걸 기억하면 좋겠다.

*항공 사고에 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정리하는 aviation safety network(링크)라는 웹사이트에서 조사한 결과


아무리 항공종사자라고 해도 **저먼윙스 9525편 추락사고나 테네리페 참사와 같이 많이 알려진 대형 사고가 아니라면 평소에 인명피해 없이 나도 모르게 발생하고 있는 항공기 사고와 준사고에는 관심을 가지기 어렵다. 나도 인천공항을 무사고 끝판왕 공항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인천공항에서도 화물기가 활주로를 이탈하는 항공기 사고가 발생했던 적이 있었다는 걸 입사 후에 알고 스스로 얼마나 창피했는지 모른다.

**두 사고 모두 탑승객과 탑승 승무원 전원이 사망한 사고로, 원인은 상이하나 아주 중요한 교훈들을 남겼다. 굳이 내가 따로 글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인터넷에 자료가 많다.





기장의 판단은 옳았던 걸까?


<해당 교신은 UPS 61편 '이륙 포기 중 활주로 초과 이탈' 항공기사고조사보고서를 바탕으로 직접 작성하였습니다.>

조종실 내부에서의 기장(CAP)과 부기장(F/O)간 대화는 초록 글씨로, 관제기관(ATC)과 조종사(Pilot)의 교신은 파란 글씨로 표시합니다.

사고 조사보고서 : 항공기 사고조사보고서 AAR1606,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항공안전법상 항공기 사고를 정의하는 항목 중 '나. 항공기의 파손 또는 구조적 손상'으로 분류

발생일시 2016년 6월 6일 22시 45분(KST)




ATC : UPS61, wind calm runway 33L, cleared for take off.

- 관제사 : UPS61, 바람은 잔잔합니다. 활주로 33L에서의 이륙을 허가합니다.

Pilot : Cleared for take off, UPS61.

- 조종사 : 이륙하겠습니다, UPS61.


CAP : Okay, cleared for take off.

- 기장 : 오케이, 이륙 허가.

F/O : Set take off thrust, please.

- 부기장 : 이륙 추력으로 세팅 부탁드립니다.

CAP : Trust set.

- 기장 : 세팅 완료.

F/O : Thank you.

- 부기장 : 감사합니다.


이 대화는 2016년 여름의 따뜻하고 조용한 그 어느 날 밤, 인천공항에 있는 그 어떤 사람도 예상치 못했던 항공기 사고 시작을 알리는 조각글입니다.


CAP : V, 1.

- 기장 : ***V1(이륙결심속도) 도달.

F/O : Roger.

- 부기장 : 알겠습니다.


***V1(이륙결심속도) : 항공기를 가속정지거리 내에서 세우기 위하여 조종사가 초동 조치(브레이크 작동, 추력 감소, 속도 감속기 전개)를 수행해야 하는 이륙 시의 최대 속도.(FAA)


화물기 수가 매우 많아진 요즘, 안 그래도 복잡했던 화물 터미널은 밤에서 새벽 사이 아주 붐빈다. 이 사고가 발생했던 약 5년 전에도 22시-24시의 화물 터미널은 들어가고 나오는 비행기로 아주 바빴을 것이다. 한국 시각으로 22시 40분, 미국 앵커리지로 향하던 UPS 화물항공의 MD-11 항공기는 관제탑의 이륙 지시를 받고 이륙 체크리스트를 하나하나 실행해가며 하늘로 떠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항공기는 곧 이륙결심속도에 도달하고, 이에 응답하는 부기장의 짧은 말 직후 '쿵'하는 소리와 함께 동체는 갑자기 흔들리며 좌편향되었고, 이어서 가속도가 감속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약 2초 후)

A/C : Tire fail, tire failure, tire failure, tire failure

- 기체 내부에서 타이어 경고음이 오버랩 되는 상황

Unknown : *** -기장의 조종간 이양 및 이륙 포기 선언으로 추측됨

- 기장 : (추측) 지금부터 내가 조종합니다, 이륙 포기.

F/O : You got it, abort.

- 부기장 : 알겠습니다, (이륙) 포기.


기장은 경고음을 들은 즉시 이륙 포기를 결심했다. 원래대로라면 이륙결심속도인 V1보다 높은 속도에 도달한 항공기는 이륙을 포기하면 안 된다. V1 이후에 이륙 정지를 위해 브레이크를 사용한다면 항공기가 활주로를 이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기체의 '쿵' 소리와 좌편향, 항공기 진동, 비정상적인 가속 등 항공기 반응을 고려한 기장의 선택은 이륙 포기였다. 기장은 활주로 내 정지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한 상태에서 이륙 포기 결정을 내렸다고 인터뷰에서 응답했다.


F/O : You need to stop the ###, man.

- 부기장 : ###을 멈춰야 합니다.

CAP : Max brakes.

- 기장 : 브레이크 최대 출력.

F/O : Max brakes, max brakes.

- 부기장 : 브레이크 최대 출력.

F/O : Stop!

- 부기장 : 그만!


A/C : Ding, landing gear! Ding, landing gear! Ding, landing gear!

- 기체의 랜딩기어 경고음

F/O : Stop!

- 부기장 : 멈춰!


기장의 기억에 동체의 흔들림은 순식간에 증가했는데, 이를 비롯한 모든 현상이 처음에는 전형적인 타이어 결함 시나리오와 비슷했다고 한다. 그런데 금속과 금속이 마찰하는 소리와 함께 가속이 소강되는 느낌은 비행기가 이륙하지 못할 것을 직감하게 했다. 바로 기장은 이륙 포기 절차를 수행했고 곧바로 비행기의 브레이크 페달이 작동을 시작했다. 그 이후 항공기는 지상 속도 90kts로 활주로중심선에서 약 7m를 벗어난 상태로 활주로 종단을 이탈했다. 정지로(stopway) 통과 이후 동체는 전방의 ILS 안테나 시설로 돌진하고 있었다. 아찔한 충돌을 피하기 위해 기장은 급히 기수를 좌측으로 틀었고 다행히도 정면충돌은 피했다. 동체는 ILS 안테나 시설의 좌측 콘크리트 구조물에 충돌 후 녹지대에 정지했다.


CAP : Hold on, hold on.

- 기장 : 잠깐, 잠깐..

CAP : Shut all engines down, shut all engines down.

- 기장 : 모든 엔진 정지, 모든 엔진 정지.

CAP : Emergency ground egress...

- 기장 : 비상 탈출 실시.


ATC : UPS61, Incheon Tower, radio check?

- 관제사 : UPS61, 인천 타워, 잘 들립니까?(괜찮습니까?)


UPS61편 활주로 이탈 사고 당시 사진, 아시아경제


안전히 엔진을 끄고 세 명의 승무원은 전원 탈출했으며 천만 다행히도 한 명의 운항승무원만이 타박상 등 경상을 입었다. 완전히 대파되었다고 묘사된 항공기와는 다르게 큰 부상이 없어 다행이었다. 기장의 이륙 포기 결정에 대해 부기장과 안전조종사(IRO : Inflight Relief Officer)는 완전히 동의한다고 진술했기 때문에, 당시 급박한 상황을 고려했을 때 기장의 결정은 합리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조사보고서는 항공기가 이륙했을 때 이륙 성능이 어땠을지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성능평가에 의하면 실제로 가속률이 감소하긴 했지만, 운항승무원이 이륙을 지속했다면 항공기는 이륙성능요건을 충족했을 것이라고 한다. 다만 공중으로 안전하게 진입했을 것이다라는 것을 가정할 뿐이고 착륙까지 안전했을 것이라고는 보장하지 못한다.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 내 생각에는, 일련의 비정상적인 항공기 시그널은 열 시간이 넘는 안전한 비행을 보장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에, 이륙 포기가 옳았다고 본다.


사고 조사 결과, UPS61의 항공기 사고 원인은 <V1이 지난 시점에서 중앙착륙장치의 9번 타이어 파열로, 중앙착륙장치가 손상되었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가속의 감소 등 현상으로 기장이 이륙 포기를 결정함>으로 정리되었다. 사고로 1활주로(33L-15R, 이륙 전용)가 폐쇄되었으며 사고기 이동 후 6월 11일 다시 개방되었다. 사고 발생 5일 만이다.


이제 막 입사 2년이 되었다고 자랑스레 얘기하고 다니던 참이니, 내가 들어오기 4년 전에 있었던 최근의 사고인데 학교에 다니면서도 전혀 이런 이야기를 들어볼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학교에서 교수님도, 같은 전공을 하는 친구들도 아무런 비슷한 얘기를 언급하지 않았다. 물론 관심을 갖고 찾아보지 않은 내 잘못도 있다. 관제기관이 깊게 개입하지도 않았고 관제기관 귀책사유로 발생한 사고도 아니지만, 그래도 인천공항에서 있었던 항공기 사고인데 관련 전공자들은 보고서라도 한 번씩 읽어봤어야지 않나 싶다. 나만 몰랐나?!


이 사고의 관제 교신에서 알 수 있듯이 조종사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관제 기관에 알리지 못한 상태로 탈출했다. 급박했다는 거겠지. 내가 해당 시각 근무자였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를 다시 그려보고 있다. 첫째로는 사고 상황을 관제 시설 근무자들에게 알리고 비상 전화가 전파되도록 해야겠지. 둘째로는 항공기와 교신을 시도해서 탑승 인원수나 현재 상황, 탑재 연료량과 조종사 의도 등을 물어야 한다. 다음으로는 맹목 방송으로 관할권 내 조종사들에게 사고 발생에 대해 알려야 한다. 사고 때문에 활주로가 사용 불가하게 되었으니. 소방차와 응급차를 빠르게 출동시키는 것까지 완료해야 내 임무가 끝난다. 지금에야 멀쩡한 정신에서 곱씹으니 물 흐르듯 대처가 흐르지만 막상 실제로 닥치면 당황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런 상황에 늘 대비하고 있어야 하기에 관제사의 책임은 무겁다.


최근에도 간간히 헬기 추락사고와 같은 안타까운 사고들이 뉴스에 보이는 것 같다. UPS61편처럼 어쩔 수 없이, 예상치 못하게 발생하는 사고들이 있기 때문에 모든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바랄 순 없다. 하지만 방지할 수 있거나 피해 규모를 축소시킬 수 있는 사고는 두세 번씩 더 안전함을 잘 체크해서 나쁜 일이 없도록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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