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진 Sep 21. 2021

MBTI 좋아하세요?


나는 ISFJ였다.

나는 mbti를 싫어했다.



'착한 사람' 이미지도 마음에 안 들어, 16 personalities



지금 끄적이는 글도 물론 습작이긴 하지만, 브런치 작가가 되기 전에는 핸드폰 메모장에 시나 가끔 떠오르는 생각을 적곤 했다.(이건 습작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네. 낙서 수준이었다.) 아직까지도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인 'mbti' 검사가 막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릴 때, 재미있는 물결에 편승해서 검사를 한 후 ISFJ 결과지를 받아본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뭐야. 기분 나빠.'

ISFJ 치고는 좀 공격적이었나. 그리고 메모장에 mbti가 싫은 이유를 조목조목 읊어뒀다.


mbti를 '믿지 않는'게 아니라 '싫어하는' 이유에는 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첫째로, 어떤 기능/성향에 대해 사람을 딱 두 가지 부류로 구분한다는 게 거슬렸다. 특히 알파벳 딱 한 글자로만 사람들을 반으로 갈라두는 그 형태가 굉장히 이분법적이라서 별로라고 생각했다. 나는 결과로만 보면 내향(I)적인 사람인데, 외향(E)과 내향(I)의 비율이 45:55 정도로 나왔기 때문에 단정지어진 그 알파벳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외향적으로 살아보겠다고 애쓰는 중에 감히 심리테스트 따위가 '넌 내향적인 인간이야!!!!'라고 나를 정의해버리는 느낌이 엄청나게 싫었다. 내향적인 성격에 대해서는 아직도 약간의 콤플렉스가 있는 편이기도 하고. 또 무언가를 판단하는 기능인 사고(T)와 감정(F)도 거의 비슷비슷한 비율로 나타났는데, 결과에서는 이런 비율을 무시한다는 게 기분 나빴다.

원래 불만이 많은 타입은 아닌데요...

라는 말에서 또 평화주의자인 ISFJ가 튀어나온 것 같아 웃기다


둘째로, 인간은 모두가 전부 다 달라서 똑같은 사람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데, 인간을 16가지 유형 안에 가두고 카테고리화했다는 자체가 또 싫었다. 나랑 가장 친한 친구는 나와 mbti가 거의 비슷한데,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성격은 비슷할지 몰라도 디테일한 성격은 완전히 다르다. 근데 mbti 결과창을 보여주면서 동일한 mbti를 가진 유명인들을 촤라락~ 하고 보여줄 때, 뭐 그래서 어쩌라고? 와 같은 생각을 했다. 나랑 결은 비슷해도 속을 파보면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다. 화장품에 비유해보자면, 하늘 아래 같은 '레드'가 없는데 저것도 빨강이고 이것도 빨강이니까 둘이 같은 색이야!라고 알려주는 느낌이었다. 아니, 미묘하게 다른 빨강이라니까? 어떻게 인간을 열여섯 가지 성격으로만 구분해? 어이가 없네?라고 생각했다. 더해서 누구누구 연예인하고 같은 유형이에요, 라는 말에는 코웃음이 나왔다. 푸핫.



이런 생각은 어캐 하는겨




나는 ISTJ가 됐다.

근데, 나는 mbti를 싫어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렇게 기분 나쁘니 거슬리니 하며 코웃음까지 쳐왔는데 지금은 안 싫어한다는 얘기다. 옛날엔 진짜 200% 진심으로 결과에 전투적이었는데 이제는 그냥 흥미로운 대화거리 정도로 받아들인다. 심지어는 내 앞에 있는 저 사람이 무슨 유형인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최근에는 다들 '너는 무슨 유형이야?' 하며 호구조사하듯이 상대의 유형을 캐보고 다니는 통에 이제 웬만하면 사람들은 본인의 유형에 대해 대강이라도 알고 있다. 유형 이름을 모르면 결과 캡처본이라도 간직해둔다. 그래서 나도 한결 mbti 물어보기가 편하다.


요 근래 호구조사하고 다닌 결과,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나와 비슷한 유형일 거라고(SJ형) 생각해왔는데 완전히 착각이었다. 지금은 ISTJ인 노잼 인간의 인생을 살고 있는데 재미있게도 나와 완전히 다른 유형(ENFP)이 10년 지기 친구였고, 대학 가서 만난 친구들은 INFJ, ENTP였다. 합리적인 의심과 추론에 따르면 가장 오래된 친구도 E*FP일 것 같다.. 그리고 신기하고 이상하게도 나와 많이 다른 mbti인 친구들과 있으면 텐션이 올라가면서 즐거워왔다. 다른 점이 있어 조금 피곤한 일도 생기지만. 반대로 ISFJ, ISTJ, INFJ 등 나랑 비슷한 친구들과 있으면 즐겁다기보다는 편했다. 그리고 비슷한 친구들과는 자주자주 만나도 에너지 소모가 크지 않았다.


나를 포함해서, 내가 본 SJ형은 그랬다.

사회적 불문율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준수함.

지키든 안 지키든 작든 크든 계획을 세움. 번개 극혐.

현생 사는 게 바빠서 공상할 시간이 없음.

현실에 너무나 충실한 나머지 상상력이라고는 ISTJ의 유머감각만큼이나 없는 S보다는 엉뚱하고 놀라운 세계에 사는 N형 인간이 부럽다. 거의 분단위로 여행 계획을 짜는 지극한 J보다는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P형 인간이 되어보고 싶기도 하다. 실제로 나는 S와 J가 진한 편인데, 정반대인 NP형이랑 어울리면 매일매일이 스펙터클하고 놀라워서 재미있다.


어쨌든, 상대의 mbti를 알면 성격의 숲을 파악하기가 좋다. 나무까지 알아가려면 오랜 시간이 들겠지만, 대강 쟤는 어떤 느낌이구나 하는 직감이 온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유형별 분석에도 큰 프레임 안에서는 들어맞는다. 다만  mbti가 나랑 너무 비슷해서 나랑 잘 맞을 거라고 단순히 생각해버리는 건 곤란하다. 그랬다가 가치관 차이에서 오는 엄청난 역풍을 맞아버린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ti는 아주 짧은 시간 내에 그 사람을 대강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래서 mbti를 좋아하냐 싫어하냐라는 질문만 두고 봤을 때 나는 mbti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누구에게는 쓸모없고 지겨운 주제일 수도 있지만 요즘에 나는 이 흥밋거리를 가지고 계속 생각이 깊어진다. 뒷북 둥둥둥.



ISTJ는 이런 풍경이 좋아요~* 꺄르륵



문득 궁금해져서 나는 과연 관제사에 적합한 유형인가 찾아봤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글에 의하면 관제사가 되기에 적합한 유형은 ISTP라고 했다. 누구야 이거 정한 사람 -______-?

동의하냐고? 어... 글쎄, 이건 좀 생각을 해봐야 되겠는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