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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Mar 27. 2024

욕심을 만들어주고 싶은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이사람이다 싶어서 3개월만에 결혼하자고 했다

※ 본 내용은 시리즈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이전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프롤로그부터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프롤로그' 글자를 누르면 이동합니다 :)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 우리는 생각보다 다른 점이 많았다. 누가 봐도 외향인인 나와 누가 봐도 내향인인 그는 당연히 말하고 행동하는 것부터 달랐다. 또 욕심의 크기도 달랐다. 나는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았는데, 신기하게도 그는 바라는 것이 거의 없었다. 하루하루가 평화롭게 흘러가면 그 이상은 없다는 사람. 내게는 희한한 생물이었다. 이렇게 다른 우리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 같은 건 분명했다. 함께 있으면 좋고, 함께 있으면 편하다는 것.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와 만나는 날이 늘어가면서 알게 된 사실. 그는 생각보다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로 인한 내면의 두려움이 큰 사람이었다. 무언가를 도전한다는 개념 자체가 잘 없는 사람이었는데, 나와 만나고자 했던 모든 연락과 행동은 인생에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고. 정작 데면데면한 연락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조금 의아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납득했다.



이 남자가 욕심이 없는 건
아무것도 얻어본 적 없어서라는 걸



나는 어릴 때부터 욕심도 많고 갖고 싶은 것도 많았다. 욕심 하나로 살아온 내게 또다른 욕심이 생겼다. 바로 그에게 욕심을 만들어주는 것. 가볍게 원하는 것도 차마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그를 엄청난 욕심쟁이로 만들어주고 싶었다. 세상에 좋은 것도 많고 맛있는 것도 많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갑자기 큰 욕심을 내는 건 어려울 수 있으니 좋아하는 것 먼저 늘려주기로 했다. 성향은 달라도 좋아하고 싫어하는 건 비슷하니까. 내가 좋았던 것을 경험시켜주면 좋아하지 않을까 하고.



이때부터 그는 생전처음 접하는 것들이 많았다고 했다. 그가 살면서 늘 이해하지 못했다던, 분명 돈 아까우리라 지레 짐작하고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들을 나와 함께 했다. 서울의 유명한 호텔에서 호캉스를 했고, 냄새나지 않을까 걱정했던 양고기와 있는지조차 몰랐던 음식인 보리굴비도 먹었다. 그는 매번 눈이 동그래지며 즐거워했고, 또 즐거워하는 스스로에게 놀라기도 했다.



이렇게 비싼 호텔에 고작 하루 묵으려 가는 게 이해되지 않았는데, 이제 알 것 같아요(당시의 우리는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썼다). 깨끗하고 푹신하고 너무 자유로운 느낌. 걱정거리도 안 떠오르고 너무 편안하고. 뭐라고 더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진짜 좋네요. 양고기도 처음 먹어봤는데 너무 맛있었어요.



점차 그에게 스스로 원해서 해보고 싶은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좋은 경험이 반복되자 그것이 기준이 되었다. 처음 먹은 보리굴비의 맛을 잊지 못해서 또다른 보리굴비 맛집들을 찾았고, 놀러가보고 싶은 지역도 생겨났다. 내가 제안하면 무엇이든 그는 믿을 수 있다고 했고 감탄하며 먹었다. 미식에 눈을 뜨더니 맛집들을 비교하며 자신만의 맛 논리를 설파하기도 했다(귀여웠다). 그저 내가 가보고 좋았던 곳들을 함께 가는 것이라 수고로울 것도 없는데, 너무 고마워하고 행복해해줘서 내가 더 행복했다. 내가 무얼 주어도, 무얼 말해도, 모든 것을 값지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니. 정말이지 귀했다.








행복해하는 그를 보며 점점 더 함께 하고 싶은 것들이 늘어났다. 역마살이 있나 싶을 정도로 여행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나인데, 코로나가 한창이라 당장 갈 수 없는 곳도 많았다. 혼자 다녀왔던 치앙마이가 자꾸만 아른거렸다. 코로나가 지나면 함께 가자는 말에 그는 망설임없이 좋다고 했다. 이 사람은 대체 무엇을 믿고 이렇게 다 좋다고 하는 걸까. 미래의 어떤 것도 보장된 게 없는 관계임에도 그는 나에게 맹목적인 관심과 사랑을 주었다. 그의 마음은 내게 차곡차곡 쌓였다.



당시의 나는 이직을 준비함과 동시에 유학도 고민 중이었다. 유학을 가고 싶은 이유는 너무도 복합적이어서 되려 명확하게 하나의 이유만을 찾기에는 어려웠다. 순수한 공부, 외국에서 살아보기, 커리어 만들기, 이중 언어 등등 확실한 목적이 없기에 가고 싶다는 말조차 꺼내기 어려운 욕심. 너무 늦은 게 아닐까, 결혼도 하고 싶은데 지금 유학을 가고 싶다고 하는 건 정말 욕심이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한켠에 계속 남아있던 생각이었다. 평화로웠던 주말 오후, 바닥에 널브러져 책을 보다가 그에게 넌지시 말을 꺼내보았다.



나 유학도 가보고 싶어요.  
어디로요?
독일 쪽으로 생각해 봤는데, 사실 아직 몰라요. 구체적이지도 않고...
독일 좋은데요? 안 그래도 전에 출장으로 다녀오면서 독일에서도 일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쪽에 아는 사람들도 몇몇 있어서 간다고 하면 나도 이직을 도전해보죠, 뭐.



지금 다시 회상하면서도 미소가 지어진다. 당시의 나는 병원을 퇴사한 이후부터 끝을 모르는 방황을 지속하는 기분이었다. 비슷한 상황의 친구들도 없을 뿐더러 전공을 살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크니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는 상태. 무작정 자기계발서들이 말하는대로 하고 싶은 것만 찾아내면서도 혼란스러워하는 내게, 그의 말은 너무나도 따뜻했다. 그의 말을 듣고 알았다. 나는 나의 생각을 온전히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사람이 필요했구나. 나를 힘들게 하는 건 나였구나. 이 사람과 있으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제한받지 않고 오히려 더 큰 꿈을 꿀 수 있겠구나.



크게 욕심내는 것도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얽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순수하고 깨끗한 사람. 해본 게 없는 사람이라서 무얼 해도 순수하게 받아들였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들도 많았다. 동시에 나의 생각도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라서 내가 큰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덕분에 나는 무엇이든 도전해보면 된다는 용기도 갖게 되었고, 새로운 시작을 꿈꿀 수 있었다.








우리는 거의 매일같이 만났다. 다른 직장인들과 달리 나는 이직을 반복하며 쉬는 기간이 많았고, 그의 회사 업무는 딱 이 시기에 적은 편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함께 많은 곳을 다니고 또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결심을 했다. 이 사람하고 결혼해야겠다고. 그 말을 입밖으로 꺼낸 게 정식으로 만난지 고작 3개월 남짓했을 때였다.



수많은 연애 프로그램에서 말하듯 '이 사람이다' 싶은 느낌이 왔다. 그것은 어떤 계시처럼 오는 것은 아니었다. 내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의 감정과 미래의 나를 생각했을 때 드는 확신 같은 것이었다. 이 사람이랑 함께 살면 나는 더 잘 살 수 있겠다. 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노력하면서 나는 발전할 것이고, 또 이 사람이 행복한 걸 보면서 나도 행복할 것 같다. 결국 이 사람과 함께 하면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었다.



하지만 3개월만에 결혼하자고하자 신랑은 망설였다(ㅎ). 생각도 말도 행동도 느린 사람에게 3개월만에 결혼하자는 여자는 너무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천천히 하자는 말만 수없이 들었고, 결국 나는 결혼을 하기까지 무려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을 더 커플로 지내야했다.



결혼을 마음 먹고 커플로 지내는 건 그냥 연애와는 조금 달랐다. 결혼에 대한 확신을 더해가는 과정이었고 더 끈끈해지는 시간이었다고 해야 할까. 3개월 만에 결혼을 결정한 내 자신이 성급했던 것일까, 생각하게 될까봐 무서웠는데. 오히려 과거의 내가 내린 결정을 더욱 믿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알고보니 신랑은 내가 후회할까봐 더욱 결혼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했다. 스스로가 단점이 너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 혹시나 나중에 내가 결혼을 철회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아주 치열하게 생각하고 결정한 것이었는데 말이다.



우리는 끝내 결혼을 했다. 그리고 얼마 전 치앙마이에도 다녀왔다. 연애를 시작할 때부터 이야기하던 치앙마이를 정말로 함께 가는 것에 대해 신랑은 신기해했고 나는 괜히 뿌듯했다. 이제는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 행복한 남자와 함께 나는 여전히 자유롭게 살고 있다. 앞으로도 어떤 길이든 둘이서라면 행복하게 살 자신이 있다. 이 남자와 함께라면, 난 언제든지 원하는 만큼 행복할 것 같다.




 본 브런치북에서는 신랑과의 만남을 적었습니다. 저희에게는 잊지 못할 기억을 글로 펼쳐내는 게 괜히 설레기도 하네요. 부디 즐겁게 읽어주시길 바랄게요. 본 브런치북은 다음주 수요일, 마지막 화가 연재됩니다 :)



 신랑과 함께 다녀온 치앙마이에서의 시간은 아래 브런치북에 담겨 있습니다. 저희 부부의 치앙마이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아래 브런치북을 참고해 주세요 :)



 저희의 이야기를 브이로그 영상으로도 만들고 있습니다. 영상은 조금 낯설어서 브런치에 좀더 자세하고 솔직하나 마음이 담기는 느낌인데요. 글을 보시고 괜찮으셨다면 영상으로도 놀러와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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