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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Oct 03. 2023

사고 싶은 마음은 어디에서 올까?

모든 것이 너무 많다


6월은 묘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새로 산 다이어리에 새해의 계획을 적어 넣었던 1월에서 어느새 이만큼이나 멀어지다니. 그 아득함이, 찰나에 놓쳐버린 유리잔에서 왈칵 쏟아진 물처럼 밀어닥친다. '아아, 이제 올해도 절반밖에 남지 않았구나-'하는 실감.


서둘러 '아직 절반이나 남아있잖아-'하며 철렁한 가슴을 토닥여본다.



각자에게 주어진 생의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일까. 유독 일 년, 그 절반을 넘어서는 6월이면 다시금 기분을 여미게 된다.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바로잡고 등을 반듯하게 세우듯이, 남아있는 절반의 한 해도 제대로 살아보겠다고 다짐하는 여름날.


돌아보니 지나온 올해에는 비우는 것에 골몰했다. '모든 것이 너무 많다'라는 한 문장이 머릿속에 떠오른 후로, 차근차근 덜어내기 위해 애썼던 날들.


필요해서라기보다는 그저 갖고 싶어서 샀던 물건들을 내보내는 일은 생각보다 번거로웠다. 숨겨둔 보물을 찾기라도 하듯, 잊고 있었던 공간의 귀퉁이에 쌓아놓은 것들을 꺼내어 '이게 다 얼마야'하는 탄식과 함께 버리고, 되파는 것은, 손가락 몇 번 까딱거려 사들이는 일과는 차원이 다른 에너지가 필요했다.



누가 떠밀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삶의 조각들을 떼어내 이토록 많은 물건들과 바꾸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후회란 어찌나 입맛이 쓰던지. 쉽게 삼켜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 모른 척 훅 뱉어버릴 수도 없었다. 사람은 무언가 알아버린 후에는, 모르던 그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 지금 이 순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오늘에 '모든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색색별로 사들였던 옷들. 한번 신고 그대로 신발장에 잠들어버렸던 신발들. 읽는 속도를 사는 속도가 앞지른 지 이미 오래인 쌓여가는 책. 1+1이라는 유혹에 넘어가 미리 사둔 화장품들...



어떤 물건이든, '지금 당장 필요해서' 샀던 적이 언제였을까? 세어보니 손에 꼽히는 것이 놀랍다. 왜 그리 서둘러 사들인 걸까.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원할 때 사러 갈 수 있는 도시 한복판에서. 아침에 주문하면 오후에 배송되는 나라에서. 스마트폰 안의 온라인숍을 나만의 창고처럼 누릴 수 있는 자본주의 현대사회의 장점을 모른척했을까?



'필요해서'가 아니라, '갖고 싶다'라는 마음으로 사들인 너무 많은 모든 것.


'나는 왜 그것을 샀을까?'


'모든 것이 너무 많다'에서 시작된 질문이 자연스럽게 '사고 싶은 마음'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진다.


모든 것이 너무 많다.



다행히 지나온 6개월간, 모든 것이 너무 많았던 삶에서 조금은 멀어졌다. 홀가분해졌다. 이제는 익숙한 공간을 매일같이 둘러보아도 처음처럼 비워야 할 것들이 쉽게 눈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이대로 새것을 더하는 일을 멈추고 군더더기를 비워내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모든 것이 너무 많다'라는 문장이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생겼다.



그러나 비우는 일에는 익숙해져도, 새로운 것을 더하기를 멈추는 일은 종종 위기에 처한다. 온갖 미디어와 sns, 메신저, 사회관계 등등, 한 순간도 연결이 끊어지지 않는 이 세계의 너무 많은 것들이 '이것을 사야 해'라고 신호를 보낸다.



그럴 때, 머리로는 필요하지 않다고 알고 있으면서도 감정은 그 신호를 완벽히 무시하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을 기록해 보려고 한다. 당장 입을 옷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지금 화면 속의 저 원피스를 갖고 싶은 것인지.



'사고 싶은 마음'은 어디에서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



'모든 것이 너무 많다'에서 영영 멀어질 수 있도록, '사고 싶은 마음'을 알아채고 사지 않은 것들을 기록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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