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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Apr 20. 2020

4킬로그램을 비우는 너무 쉬운 방법

깊은 잠, 개운한 아침, 붓거나 저리지 않은 손과 발, 가벼운 몸, 상쾌한 기분, 납작한 배, 여유 있게 감싸지는 바지허리, 매끈해진 피부까지, 2달 정도 어떤 것을 매일 한 이후에 얻을 수 있었던 변화. 말 그대로 쾌적한 몸과 마음의 상태가 유지되자 일상의 모든 순간이 이전보다 훨씬 기분 좋게 다가왔어요.

2019년 11월 말쯤부터 2020년 일월까지, 저는 무엇을 했을까요? 궁금하시다면,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세요.

요즘은 남녀, 노소를 불문하고 아름다움과 건강에 관심이 많죠. 나이가 들어도 나이 들어 보이지 않는 것, 맛있는 걸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을 것,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요구되는 불가능한 주문들이에요.

작년 11월에 무슨 이유였는지는 잊어버렸지만 (사실 이유랄게 없이 늘 잊을만하면 한 번씩 하는 생각이네요) 다이어트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죠. 스스로 뚱뚱하지도 마르지도 않은 매우 보통의 몸을 가진 사람이라고 여기면서도 자연스럽게 다이어트에 대해서 생각해요. 물론 예전과는 조금 다른 관점의 다이어트를 생각하는 30대지만요.

20대에는 지금보다 훨씬 말랐으면서도, 항상 더 마르고 싶었어요. 그땐 몸무게의 숫자가 4로 시작하는 게 '옳다'고 여겼으니까요. 55 사이즈의 옷을 넉넉하게 입으면서도 아직 통통한 볼살과 너무 두껍다고 느껴지는 허벅지를 싫어했죠. 내 생김새에 만족스러워하는 나와 더 아름답고 마르고 싶어 하는 내가 반반씩 존재했어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독한 마음을 먹고 다이어트를 해본 적은 없었지만요. 20대에는 늘 바쁘게 움직이고 넘치는 에너지로 삶에 부딪히며 살아가느라 살이 찔 틈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해요.

매일 학교 다니고 친구들 만나고 하루에도 여기저기 걸어 다니는 시간이 많았던 학생 시절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니 평일의 대부분은 컴퓨터 앞에 앉아있게 되더라고요. 회식은 왜 그리 잦은 건지, 간식은 왜 이렇게 틈틈이 먹게 되는 건지. 회사에 있는 점심때 말고는 아침과 저녁은 챙기기도 어려워지고 큰 맘먹고 운동이라도 등록하면 꼭 일이 바빠져요. 야근, 회식, 스트레스, 불규칙한 식사와 잦은 간식,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월급과 함께 얻게 되었던 것들이죠. 그래도 20대는 젊음이라는 지원군이 든든히 버텨주어서 크게 힘든 줄 모르고 지냈어요. 그렇게 서른의 문턱을 넘어 한껏 정신없이 지내다가 서른셋, 당장 달라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더 이상 밤새고 무언가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노는 것도, 일하는 것도, 하루를 불규칙하게 보내고 나면 하루를 쉬어서는 회복되기 힘들었고 이삼일은 컨디션이 좋지 않았어요. 뭔가 손해 보는 기분에 자연스럽게 일상의 규칙을 만들기 시작했죠. 같은 시간에 잠들고 같은 시간에 일어나기, 웬만하면 같은 시간에 식사를 하는 것, 술과 간식을 줄이는 것, 하루에 30분 정도는 걷기, 가능다면 일주일에 서너 번 운동하기와 같은 아주 기초적인 룰을 내 삶에 적용시키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귀찮음 보다도 기분이 울적했어요. 나이와 타협한 느낌, 머리로는 아닌 것을 알면서도 순식간에 너무나 나이 들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그런 기분이 오래가지 않았던 이유는 일상을 규칙적으로 관리하면서 모든 것이 훨씬 더 나아졌기 때문이었어요. 몸이 가벼워지고 안색이 맑아지는, 눈에 보이는 긍정적인 반응은 기분을 좋게 하고 결과적으로 자존감에도 영향을 주니까, 한 번씩 일탈을 하더라도 자연스럽게 원래의 규칙적인 생활로 돌아왔어요. 그게 나를 더 행복하게 하고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요.

조직생활에서 벗어나 혼자 일하기 시작한 후로는 훨씬 더 세밀하게 나를 챙겨야 했어요. 관리 감독하는 사람이 없으니 스스로 조심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흐트러지기 쉬우니까요. 그렇게 어느 정도 삶과 나를 관리하는 것에 요령을 붙여왔지만 딱 하나 잘 되지 않는 것이 있었어요.

아름다운 음식을 멀리하는 것. '아름다운 음식'들은 대체로 밀가루와 설탕, 버터가 많이 들어간 디저트 류예요. 저는 태생이 빵순이에 케이크라면 사족을 못쓰는 십 대와 이십 대를 거쳐왔죠. 지금도 솔직히 말하자면 1일 1 빵 안 하는 날은 없어요. 유럽여행 가면 2주 정도는 기본이고 한 달도 거뜬히 지내고 올 수 있죠. 매일매일 다른 빵을 먹으면 되니까! 게다가 빵과 찰떡궁합인 커피도 사랑하기 때문에 늘 밥보다는 디저트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왔어요. 그런데 이런 식습관의 안 좋은 점은 속이 편하지 않다는 거예요. 많은 양을 먹지 않아도 밀가루와 설탕, 버터, 그리고 커피를 매일 자주 먹다 보면 속이 좀 더부룩하다고 할까, 그런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일이 년 전부터는 식습관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죠.

작년 11월, 우연히 발견한 책 한 권을 읽었어요. 그 책에서는 자연식을 주장했는데 간단히 요약하자면 '과일'과 '야채'를 먹었을 때 사람의 몸은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럽다는 이야기였어요. 왜냐면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니까, 과일과 야채처럼 같은 성향의 음식을 섭취했을 때 완전하다는 거였죠. 어떤 동물과 식물도 자신의 본질을 거스르는 식사를 하지 않는데 오직 사람만이 잡식을 한다는 이야기가 굉장히 새로웠어요. 그리고 또 하나, 음식물마다 소화되는 순서와 소화에 소요되는 시간이 다르므로 섭취하는 순서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었는데 이것도 인상적이었어요.

그래서 그 책을 읽은 저는 식생활을 당장 변화시키기로 마음먹었어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걸 알고 싶거나 여행을 준비할 때도 맨 처음 그 분야의 책을 사죠, 이렇게 어떤 책에 꽂히면 따라 해 보고요. 저만 그런 거 아니죠?) 물론 매일 야채와 과일만을 먹을 수는 없으니 아주 단순화시켜서 실현 가능한 만큼만 시도해보기로 했어요.

하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과일을 먹는다. 과일을 먹고 30분 후에 아침식사를 한다.
둘, 저녁은 샐러드로 먹는다. 웬만하면 비슷한 시간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셋, 고기와 생선을 먹는 빈도를 줄인다.
넷, 빵과 커피는 하루에 한 번만 먹는다.

적어놓고 보니 정말 별거 아니네요, 하지만 나름의 성과를 거두고 적는 글이니 부디 끝까지 읽어주세요.

이렇게 두 달,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얻은 결과는 맨 처음에 적어두었어요. 수치로 말하자면 4킬로그램이 줄어들었고 숙면과 개운한 아침, (오랜만에 만나는) 납작한 배와 맑아진 피부를 얻었죠. 스스로도 굉장히 놀라웠어요. 그다지 힘들지 않았거든요. 중간중간 약속이 있는 날들도 메뉴 선택을 할 때 야채가 많은 것으로 고르는 정도로만 주의했을 뿐 와인 한두 잔 곁들이는 것도 그대로였고 크게 힘든 운동을 하지도 않았으니까요.

규칙적인 식사와 과일과 야채가 주를 이루는 하루를 보내며 느꼈던 것은 생각보다 육식에 대한 욕구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식탐이 줄어들고 일상을 보내는 내내 좀 더 느긋하고 여유로운 기분이 든다는 것. 퇴근이 늦어서 저녁식사를 밤 10시쯤 샐러드를 배부르게 먹고 잠들어도 다음날 아침 속이 불편하지 않고 손이나 발, 얼굴이 붓지 않는다는 것. 계속 나를 위해서 무언가를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식 자체가 스스로에게 더 '좋은'음식을 선택하도록 유도한다는 것.

그 이후로도 여전히 다른 것보다 야채와 과일을 많이 먹으려고 노력해요. 물론 매일같이 저녁에 샐러드를 먹을 수는 없죠, 가족들과 고기를 구워 먹는 날도 있고 친구들과 치맥 하는 날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어떤 시도를 통해 긍정적인 변화를 체험하고 나면 오래도록 기억하게 되고 기분 좋은 경험을 다시 시도해보고 싶어져요. 이 경험을 하기 전과 하고 난 후의 저를 비교해보면 '몸에 좋지 않은 음식에 대한 식탐'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이제는 잠시 혀만 즐거운 음식들이 남기는 기분 나쁜 여운을 최대한 비우고 싶어요. 단호하게 밀가루를 끊겠다거나 채식을 하겠다고 다짐할 수는 없지만, 만약 어떤 순간에 자연스럽게 그런 욕구가 생긴다면 시도해볼 수 있겠죠. 조급해하지 않고 내 마음의 속도에 맞춰서요. 누구보다 나를 위해서, 내 몸과 마음이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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