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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Apr 27. 2020

가성비템 인생은 싫다



가성비, 그 단어가 우리 삶과 어울리는 것일까요?


언제부터인지 광고들은 가성비라는 말을 빼놓지 않아요. 지불하는 비용에 비해 소유하게 되는 물건이나 경험의 만족도가 훨씬 크다는 의미로. 싸게, 좋은 걸, 잘 샀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단어.


가성비는 삶의 모든 곳에 적용될 수 있어요. 옷이나 신발을 살 때, 여행을 떠날 때,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가성비 템이라는 진한 글씨체 아래에는 돈과 교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가져다 놓을 수 있죠.


문득 그런 의문이 들어요. '가성비 템'이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었을까? 눈앞에 놓인 선택지들 중 '가장 원하는 것'과 '가성비가 가장 좋은 것', 그 둘이 일치하지 않을 때는 어느 것을 선택하는 게 옳은 것일까?


단순하게 경제적인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가성비 템을 선택하는 게 옳아요. 선택할 수 있는 보기들 중 비용 대비 가장 큰 효율을 가져다줄 테니까요.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엑셀 시트처럼 딱 떨어지지 않고 완벽히 이성적이지 못하죠. 내가 어떤 물건과 경험을 원할 때는 비용보다는 감정에 이끌리는 경우가 더 많아요.


가성비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해봐요. 셔츠 한 벌을 산다면, 어떤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까. 아낀다는 생각으로 적당히 괜찮은 것을 저렴하게 구매하지만 몇 번 입으면서 애매한 기분에 사로잡히죠. 가장 가지고 싶었던 더 비싼 셔츠가 떠올라요, 내게 훨씬 잘 어울릴 것 같았던, 바로 그것. 몇만 원 아끼기는 했지만 어쩐지 옷장에 걸린 셔츠에게 자주 손이 가질 않아요. 그렇게 가장 갖고 싶었던 것에 대한 미련을 마음속에서 떨쳐버리지 못하고 이미 손에 들어온 것에는 온전히 애정을 쏟지 못하죠. 결국은 몇 번 입고 옷장 속에 잠들어요.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어요. 정확히 필요한 크림을 사러 화장품 가게에 들어갔는데 슬쩍 둘러보다 보니 훨씬 비싸게 팔고 있던 다른 크림이 오늘은 내가 사려던 것과 같은 금액이에요. 솔깃하는 마음에, 원래 사려던 저렴한 크림 대신 고가의, 오늘만 가성비 템인 그것을 구매해요. 훨씬 비싸게 팔리는 것을 저렴히 샀으니 기분이 좋아요. 기존에 사용하던 저렴한 제품보다 더 좋은 효과를 가져다줄 것 같은 기대감도 한몫하고요. 그러나 아무런 정보 없이 충동적으로 구매한 크림은 내게 잘 맞을 확률이 높지 않아요. 사실은 원래 쓰던 저렴한 크림이 익숙하고 편안하죠. 운이 좋다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겠지만, 글쎄요. 며칠 바르다 보니 익숙한 크림이 자꾸 생각나요. 이걸 다 쓸 때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요.


백 명의 타인이 인정하는 가성비 템이 내게는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어요. 가성비라는 단어에는 비용이 가장 큰 퍼센티지를 차지하지만 한 사람의 삶, 일상을 만족스럽게 만들어주는 것은 비용만으로 이야기할 수 없으니까요. 고가의 캐시미어 니트보다 저렴하지만 내 피부에 더 편안한 코튼 셔츠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기도 해요. 반대로 1+1으로 산 치약보다 조금 비싸지만 향과 기능이 뛰어난 천연 제품이 내 치아를 건강하게 지켜주기도 해요. 소비의 기준이 반드시 가성비여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가격이 높고 낮음과는 상관없이, 내 능력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 내게 잘 맞는 것을 구매하고 정성스러운 태도로 누리는 것, 모든 소비의 기준으로 삼으려고 해요.


여행을 떠날 땐, 저렴한 순서로 숙소를 고르지 않아요. 숙소에 머무르는 시간도 여행이니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조건들에 맞추어 능력 안의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려고 해요. 만족스러운 숙소에서의 휴식은 그 자체로도 오래 기억에 남는 여행의 즐거움이니까요. 음식을 고를 때도 가격이 아니라 지금 내 몸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선택해요. 가끔은 건강보다 마음이 바라는 것을 고를 수도 있겠죠.


요즘은 비단 무언가를 소비하는 순간만이 아니라 삶의 모든 순간에 '가성비'가 선택의 기준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진로를 정하거나 직업을 선택하는 순간에도, 내가 하고 싶은 분야에 관심 갖기보다는 얼마나 높은 급여를 받을 수 있는지, 안정적인지를 가장 먼저 생각하죠. 물론 이런 조건을 따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 이후의 삶을 지탱해 줄 '일'과 '직업'을 선택하면서, 내 마음을 바라보기보단 가성비만을 따진다면 어떤 결과를 얻게 될지 생각해봐야 해요.  아마도 적당히 타협해서 샀던 한 벌의 셔츠처럼, 가장 하고 싶었던 일에 대한 미련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애매한 기분으로 살아가게 될 위험이 크지 않을까요, 만약 삶의 목적으로 경제적 이득을 가장 우선순위에 놓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요.


누구보다 '가성비템'을 찾아내길 좋아하던 저는, 위에 적어놓은 모든 실수를 다 겪어본 후에야 이런 결론을 내렸어요. 앞으로는 옷과 신발, 음식과 직업, 어떤 사소한 것들이라도 내 삶과 나 자신을 이루는 모든 것들을 선택하는 순간에 가성비를 기준으로 삼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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