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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Oct 22. 2020

첫 책의 원고를 넘겼다


바라던 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순간, 기다리던 사람을 우연히 만나게 되는 순간, 머릿속으로만 그려봤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질 때, 그러니까 살다 보면 운명이나 타이밍이라는 단어를 가져다 쓰고 싶은 순간들을 만나는 때가 있다. 대부분은 아주 드물게, 혹 운이 좋으면 종종.


그러나 운이 좋아서, 혹은 타이밍이 맞아서라고만 말하자니 영 석연치 않다. 알게 모르게 이곳을 향해 계속 걸어온 내 두발의 발자국이 그 순간의 직전까지 남아있으니까. 그러니 매일 써왔던 모습을 떠올리면 예상하지 못할 장면도 아니지만 그럼에'첫 책'이란 특별해서 곱씹을수록 신기하기만 하다.


매일 출근하고, 그림을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며 살았다. 수업을 마치고 고요해진 아틀리에에 앉아서, 단골 카페에서 라테 한잔을 느리게 마시며, 흔들리는 버스와 지하철에서, 노곤해진 몸으로 엎드린 침대 위에서 썼다. 그날 만난 사람들, 그리고 있는 그림, 곧 떠나게 될 여행, 읽던 책, 오늘을 사는 나, 쓸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없었고 결국엔 모든 것을 쓰고 싶어 졌다.



쓰는 것은 나를 나답게 하기에 좋았다.



그럴싸해 보이기 위해 꾸며댈 필요 없이, 민낯으로 세상을 마주하는 것이 두렵지 않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림보다도 더 솔직하고 깊은 나를 드러내기에 글을 쓰는 것보다 효과적인 게 없었다. 쓰면 쓸수록 나다워졌고, 그렇게 나다운 나로 살아가는 것은 적잖이 기분 좋은 일이었으니까.



첫 책의 원고를 마무리하며 이렇게 글을 적고 있자니 이다음은 어떨까, 하는 기대가 슬그머니 내 안을 채운다. 첫 책의 에필로그를 적으며 두 번째 책은 뭐가 좋을까 상상하다니, 점심 먹으면서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 것만큼이나 성급한 게 아닐까 싶지만. 덕분에, 살아가는 내내 설레어할 것이 하나 더 생겼다.


어제 썼듯이 오늘도 쓰고, 내일도 모레도 계속 쓸 테니, 이렇게 쌓아간 글들이 모여 두 번째 책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을 테니까. 두 번째, 세 번째 책을 기대하며, 매일매일을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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