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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Oct 09. 2020

유명해지고 싶지만 나를 몰랐으면 좋겠어

처음 온라인에 글을 쓰겠다고 생각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단지 내가 하는 일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이 이것밖에 없었기 때문에 해야만 했다. 그전까지의 나라는 인간은 온라인에 내 흔적을 남기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컸다(지금도 없지는 않다). 온라인에 남긴 나의 글과 사진은, 어디로 어떻게 퍼져나갈지 알 수 없고, 누군가 왜곡하거나 훼손할 위험이 있으며,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기에 원치 않는 반응을 얻게 될 수 도 있으니까. 그러나 비용을 들이지 않고 이만큼 다수에게 나의 무언가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도 사실이니 위험을 감수한다.  그런 생각으로 아틀리에를 오픈하고 수업을 개설하고,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으로 일과 일상 그리고 나를 보여주기 위해서 글과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이전까지 노트에 써왔던 글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것은 의식하거나 의도하지 않은 느리고 자연스러운 변화여서 스스로가 그렇게 달라진 것도 뒤늦게 깨달았지만, 화자와 청자가 오직 나 하나뿐이던 노트 위의 펜글씨가 타인이 읽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은 화면 위의 글자들로 바뀌었다.


연휴의 시작을 앞둔 날, 오랜만에 연남동 친구들과 만났다. 첫 책의 계약을 축하한다는 핑계로 나를 불러낸 친구 덕분에, 새로운 곳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고, 자리를 옮겨 시원한 가을밤의 테라스에서 진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 모인 네명은 조직에 속하지 않은 각자의 업을 가진 사람들, 자신의 삶이 일과 맞닿은, 스스로가 브랜드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래서인지 결국 모여서 떠들다 보면 삶과 일, 그리고 나와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채워진다. 언제나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무언가 적어둘 것이 생기는 사람들, 글은 쓰지 않지만(대신 엄청 많이 말하고 맛있는 걸 먹는다), '글쓰기 모임'이라는 타이틀로 시작된 연남동 친구들과의 인연은 재미있다.

그날, 쉬지 않고 나눈 대화 속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나는 유명해지고 싶지만 아무도 나를 몰라봤으면 좋겠다, 고. 나는 사진을 찍는 것과 찍히는 것을 좋아하고, 내 모습과 일상, 그리고 생각을 노출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지만,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나와 내 삶을 몰랐으면 좋겠다. 내 글과 그림, 결국은 그것들로 이루어진 나의 삶이 다수의 타인으로부터 공감을 얻고 가능한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고 바라면서도, 어떤 소수의 이들에게는 블록 처리되기를 바란다. 생각해보면 전혀 말이 되지 않는,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었다는 식의 모순 그 자체인 말, 그러나 아주 솔직한 내 욕망이다.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스스로가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누구보다 자신을 알리는 것에 적극적이다. 결국 우리는 각자 자신을 브랜딩하고 마케팅하는 것을 목표로 할 수밖에 없는 시대를 향해가고 있기에. 그것은 창작자나 예술가에게만 한정되지 않은 공통된 욕망으로 자리하고, 가장 효과적인 도구로 다양한 SNS가 이용된다. 자신이 직접 만든 사진과 영상, 글과 메시지를 어떤 필터도 거칠 필요 없이 다수의 타인에게 노출한다.  

밀레니얼들은 탄생부터 자연스럽게 이런 시대의 방식을 받아들이고 이용하기에, 뛰어난 몇몇은 전 세계가 연결되어 있는 채널 안에서 새로운 형태의 부를 창조해내는 계급이 된다. 비단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수십, 수백만의 팔로워를 가진 인스타 그래머나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의 성공기는 이미 지겨울 만큼 많아졌다. 이런저런 사건과 사고, 부작용과 후유증이 발생하는 것에도 불구하고 그 다양성과 수가 늘어간다는 것은 이 흐름이 확실히 주류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게다가 코로나 19라는 변수가 이 모든 흐름에 가속도를 붙였다. 대면으로 이루어지던 일상의 많은 장면들을 사라지게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온라인 상에서 전 세계를 강력하게 연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제 우리는 재택근무를 하며 화상회의를 하고, 등교하는 대신 집에서 온라인 학습을 하고, 회식마저 모니터 속의 화면을 바라보며 각자의 집에서 치킨과 맥주를 먹고 마시는 것이 신기한 일이 아니다. 다양한 크고 작은 모임들이 화상시스템을 이용해 진행되고 있고,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당장의 일상에 불편을 겪게 되므로 개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결국 어떤 분야의 시장은 축소되다가 소멸하겠지만 또 다른 분야의 시장은 이제 국경이 무의미해지고 전 세계로 확대된다. 온라인 상에서의 다양한 형태의 연결이 강력해질수록,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와 다른 나라에 사는 친구와의 심리적 거리는 비슷해지다가 결국은 같아질 테니까.

지금을 위기라고 말하는 사람도, 기회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어정쩡한 모습으로 따라가고 있는 나는 어느 쪽일까, 여전히 고민하면서도 이렇게 글을 써서 올린다. 어딘가의 누군가로부터 읽히기를, 공감을 얻기를 기대하면서.


이제 새해다짐에는 '영어공부'와 '다이어트' 아래에 '유튜브 시작하기'가 적히는 시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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