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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Oct 05. 2020

루틴을 만든다


매일이 비슷한 장면들로 채워지는 일상 속에서, '루틴'을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정해둔 시간에 잠들고, 일어나서, 침대 위의 이불을 나만의 규칙대로 정리하는 것. 바닥을 닦고 미지근한 물을 마시고 아침으로 사과 한 알을 꼭꼭 씹어먹는 것. 진한 커피는 하루에 한잔만 마시는 것, 저녁을 먹은 이후엔 음식을 먹지 않는 것, 매일 20분씩 운동을 하는 것, 일기를 쓰는 것, 만보를 채우자고 생각하면서 걷는 것처럼, 아주 소소하지만 하루를 완성하기 위해서 빠트릴 수 없는 것들. 의식하지 못한 채 자연스럽게 하기도 하지만, 꼭 지키기 위해서 의식하고 있기도 한 것들.


사람들은 늘 안정을 원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삶에는 안정이란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의 삶이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니까. 앞을 내다보는 것, 미래를 준비하는 것, 어쩌면 불가능한 것이니까. 당장 우리의 2020년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코로나 19라는 바이러스를 누가 예측할 수 있었을까? 누군가 알았다고 한들 완벽한 대비라는 것이 가능했을까? 이것은 사라질 수 있을까? 사라진 후에는 다시 발생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살아간다는 것에는 늘 불안이 따른다. 두려움이 존재한다. 미지와 무지만큼 사람들을 두렵게 만드는 것이 있던가, 우리는 영원히 자신의 끝을 모른 채 살아가야만 한다. 당장 내 삶이 한 달 혹은 십 년, 어쩌면 백 년쯤 남아 있을 텐데, 어떤 것이 나의 길이인지 알 수 없으니까. 닥쳐올 노화와 두려운 노후와 반드시 오고야 말 죽음 앞에서 평온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이들에게, 일상 안에 자리 잡은 각자의 루틴은, 두려움과 불안이라는 흔들 다리 위에서 꼭 잡아야 할 난간이 되어준다. 아무리 심하게 요동치는 다리 위에 서있어도 양 손으로 꼭 잡고 있는 난간을 놓치지 않으면 아래로 떨어질 일은 없다. 천천히 신중하게, 한 발자국씩 앞을 향해 걸으면 된다. 그렇게 균형을 잡는 것이 익숙해지면 걸어온 만큼, 그만큼 다시 앞을 향해 걸어갈 수 있다. 걸어온 길이 길어질수록 걸어갈 수 있는 길도 길어지는 것이다.


오늘 아침도 어제와 같이 해내고 나면, 하루를 무던히 보낼 수 있을 거라는 용기가 생긴다.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런 것뿐이니까. 어제의 내가 해낸 것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 오늘의 내가 보내는 하루가 내일의 나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


아침이면 사과를 먹고, 매일 20분씩 운동을 하고, 저녁식사 이후로 야식을 먹지 않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쾌적한 삶을 유지할 확률이 크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불가항력적인 사고와 변수들을 들먹일 거라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지만).


불안과 두려움으로 삶의 절반이 채워져 있기에, 나머지 절반을 그것의 반대되는 것으로 채우기 위해서 굳이 '루틴'을 만든다.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난 뒤 집으로 돌아올 12시간 후의 나를 위해, 매일 아침, 침대를 반듯하게 정돈한다. 코로나가 있든 없든, 삶이 흔들 다리 위에서 잘 굴러가게 하는 방법이라고는 결국 이런 것뿐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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