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첫 인턴십과 럭셔리 경영학 대학원 입학
파리에 정착하여 프랑스어 실력을 최고치로 올린 후, 나는 명품 브랜드 본사에서 일하고자 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여기저기 지원서를 보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프랑스어 실력을 갈고닦았고, 인턴십과 경력을 쌓기 위해 노력했다.
내 생애 처음 인턴직을 구했을 땐, 너무 신이 났다. 프랑스에서 내 전공을 살려 패션 쪽에서 일해보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여기저기 지원해 보았는데, 샤넬과 지방시 등의 명품 패션 브랜드에 납품하는 직물을 제조하는 공방에 인턴으로 합격한 것이다! 나의 타이틀은 Assistante de Création (아시스텅뜨 드 크레아시옹)으로 직물을 만드는 굉장히 크리에이티브한 일이었다. 매일 아침 출근해서 우리는 (패션을 전공한 또래 여러 명의 인턴들과 함께) 어떤 컬러 / 어떤 느낌으로 고객사에 보낼 샘플을 만들지에 대해 의논하고, 그에 필요한 원사들을 찾아 (원사롤이 엄청 무거워서 두세 명이 함께 들어 움직여야 했다.) 직조기를 사용하여 샘플을 만들어냈다.
최고급 원사를 가지고 직접 아름다운 패턴을 디자인해서 직물을 짜고, Made in France 를 고수하는 프랑스 정통 텍스타일 제조업체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으로 행복할 즈음, 갑자기 기관지가 붓기 시작하며 너무 따가웠다. 병원에가서 진단받은 병명은, 먼지 알레르기. 난 여름인턴이었는데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이 아틀리에에서 마스크를 쓰고 일하는게 여간 곤욕이 아니었다. (이때는 자고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10년도 더 전이기 때문에 프랑스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일하는 나를 정말 이상하게 쳐다봤다는...) 3개월 동안의 인턴십을 마치고 느낀 점은 :
1. 나는 크리에이티브하고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아름답게 만든 디자인이 채택되어 고객사에 보내지거나, 내가 귀엽게 만든 모델을 회사 프레젠테이션에 쓰겠다고 매니저가 말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2. 몸을 쓰면서 다시말해 나의 손재주를 쓰면서 일하는 아틀리에 직종은 굉장히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몸집도 작아서 커다란 원단롤을 나르는 일도 너무 힘들었고, 먼지가 가득한 곳에서 햇볕도 못보면서 하루종일 손으로 작업하는 일은 22살의 나에게 너무 힘들게 느껴졌다.
3. 다른 문화의 친구들과 교류하고 협동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과는 또 다른 부류의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고, 특히 디자인 쪽 전공한 친구들이 많아서 그런지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재밌게 떠들고 회사 밖에서 따로 만나 서로가 좋아하는 레스토랑도 공유하고 와인도 마시며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에 대해 찬양하고 논쟁하다보면, '아 내가 정말 파리에서 일하는 여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4. 브랜드가 갑이었다. 내가 일했던 아틀리에도 럭셔리 상품을 만들긴 했지만 실제적으로 지방시, 샤넬에 영업을 해야했다. 고객이 맘에 들어하면 성공적인 프로젝트가 되었고, 고객이 좋아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피드백을 받았어도 다시 만들어야 했다. 갑인 회사에서 일하면서 조금 더 편하게 일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한국에서 했던 공부만으로는 좁은 럭셔리 브랜드의 문턱을 넘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럭셔리 쪽에서 일하는 사람을 다이렉트로 알지 못한다면, 아무리 이력서를 보내도 다른 이력서들에 묻혀 나에게 올 수 있는 기회들이 희박해진다. 그러므로 럭셔리 비지니스를 전공하고 그 세계로 입문하는 것이 최대한 빠른 방법으로 나의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결론은! 더 공부를 해서 네임밸류가 큰 회사로 들어가 크리에이티브하지만 좀 더 전략적인 발상을 하는 매니저 자리로 올라가야겠다는 것이었다.
첫번째 인턴십에서 느낀 바와 나의 실행력을 더해 프랑스 국공립 대학의 경영전문대학원인 IAE de Rennes, IAE de Gustave-Eiffel에서 각각 전략 마케팅 & 럭셔리 경영학 석사 학위에 입학하게 되었다. 프랑스는 아직도 굉장히 보수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명문 대학의 졸업여부나 어떤 전공을 했는지가 졸업 후 커리어를 결정짓는데 굉장히 중요하다. 이 학위들은 나의 꿈에 다가설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다. 또한 같은 학교 출신 선배들이 끌어주고 도와주는 부분도 많기 때문에, 프랑스에서 취직하고 싶다면 석사 학위를 취득하면서 인맥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꼭 짚고 넘어가고 싶다.
나의 전공은 Management Innovation, Design & Luxe. (첨단, 디자인, 명품 경영학)
말 그대로 엔지니어 + 디자이너 + 경영학 전공 등의 다양한 백그라운드의 학생들이 모여 소수정예로 선발된 20명 내외의 클래스였다. 모든 과정은 프랑스어로 이루어졌고, (아 네덜란드 선생님이 강의하시는 마케팅 영어 과목 하나 빼고) 프랑스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인은 나 하나, 그리고 다른 모로코 출신 엔지니어 학생이었다. (헌데 따지고 보면 모로코 사람들은 제 2공용어가 프랑스어라 잘 교육받은 모로코 인들은 그냥 프랑스인이 모국어 쓰는 것처럼 쓴다.)
이 럭셔리 경영학 석사 학위를 준비하며 도대체 얼마나 많은 밤을 공부하며 지새우고, 얼마나 많은 날을 울면서 학교에 갔는지 !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이 석사 학위는 우리 엄마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취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회사 다니랴, 학교 과제 챙겨서 하랴, (프랑스 애들은 2시간이면 할 과제를 나는 4-5시간이 걸려야했다. 프랑스어로 된 논문을 읽고 자료를 검색하고, 에세이를 쓰기가 제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땐 챗GPT도 없었다.) 혼자 자취하면서 집안일 하랴, 끼니 챙기랴, 스물넷의 나에겐 다 버거웠다. 하루는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돌아오는데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는거다. 그래서 엄마한테 울면서 전화해서 힘들다고 했더니, 엄마가 한달 반 동안 파리에 와서 밥도 챙겨주시고 집안일도 해주시면서 공부와 회사일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셨다. 기말고사 기간이었는데 정말이지 구세주가 갑자기 나타나 도와주신 것 같이 기뻤다.
왜 회사를 석사공부랑 같이 다녔냐고?
그건 다음 회차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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