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인연 2.
마지막 수업날이었다.
맨 처음 우리를 맞이해 주었던 낭독봉사 담당자님을 다시금 새롭게 만난 날이었다.
수료식 전 그녀는 낭독봉사자로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을 안내해 주었다.
녹음 부스 이용 시간, 녹음 부스 이용 방법, 저작권 관련 사항, 낭독 녹음 시 주의사항.
놀라운 건 그다음이었다.
낭독의 기본자세에 대해 말하며 시범을 보여주던 때.
문학 작품에서 대화를 하는 서로 다른 인물들의 목소리에 어떻게 변주를 주어야 하는지,
문단과 문단 사이를 또는 시에서 연과 행을 시각장애인 분들이 구분할 수 있도록 pause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청각이 발달한 시각장애인 분들이 듣기 적합한 속도가 어느 정도 인지 등.
안정적인 발성, 정확한 발음, 악센트, 장단음, 거기다 시각장애인 분들이 선호하는 상냥하고 친절한 목소리까지 갖춘 진짜 고수였다.
'세상에는 그야말로 고수가 참 많구나!'
나는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산다.
그 사실을 이렇게 숨어있는 재야의 고수를 만날 때 새삼 깨닫는다.
내가 알고 있고, 내가 보고 있고, 내가 이해하고 있는 세상에 대해서만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보이지 않았던, 내가 모르고 있는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렌즈조차 내겐 없었다는 것을.
그러한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더 넓은 세상, 더 깊은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다짐한다.
내 입장에서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닐 테니.
내가 아는 상식에서 이해되지 않는다고 틀린 것이 아닐 테니.
그러므로 나는 한쪽의 관점만을 견지하는 것을 스스로 경계한다.
모든 것에는 명과 암이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한다.
그녀의 청아한 낭독을 들으며 나는 이 속담이 떠올랐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
일부분만을 알고 있으면서 스스로는 전체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한 말.
눈을 가린 여러 명이 저마다 코끼리를 만진다.
누구는 긴 코를, 누구는 두꺼운 다리를, 누구는 꼬리를.
그러고는 자신이 만져본 코끼리의 모양이 전체 코끼리의 모습인 양 착각한다.
그리고는 무섭게 그것이 코끼리라고 주장한다.
눈을 뜨고 산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어려운 일이다.
계속해서 다양한 관점을 적용해 보려고 시도해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만을 믿는 것은 세상을 왜곡되게 이해하고 인식하는 것일 수 있음을 의식해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뜬 눈으로 세상을 제대로 보며 살 수 있다.
나이가 들며 어린 날의 패기가 없어진다는 것,
경험이 늘수록 겸손해진다는 것.
그것은 점점 내가 모르는 세상이 더 넓게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 아닐까.
의사에게 가장 어려운 환자는 겉핥기식의 약간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환자라고 한다.
자신이 아는 지식이 있기에 어떤 생각에 확신을 갖기 때문에 설득이 안 되는 것이다.
수많은 정보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
그러나 알고리즘에 의해 더더욱 편향된 시각을 갖게 될 수 있는 시대.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맑은 눈으로 세상을 바로 보는 사람이어야 한다.
편협해지지 말자.
내가 모르는 세상이 많다는 것을 언제나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