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친구가 던져준 마지막 동아줄
저는 두 번의 시험에서 낙제했습니다. 한 번은 덴마크식 구술시험 적응 실패였습니다. 두 번째는 수업을 너무 많이 빠진 탓이었습니다. '이대로는 학비만 날리고 졸업 못 하겠구나' 하는 불안감이 밀려왔습니다. 만약 덴마크에서 라스무스를 만나지 못했다면, 저는 그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짐을 쌌을 것입니다.
라스무스와의 인연은 두 번째 학기 조별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다들 아는 친구들끼리 조를 만들었습니다. 같은 반에 다른 한국 학생은 없었고 현재까지 우호적인 '형제의 나라' 관계를 유지하는 터키 친구 사둘라와 함께 조를 이루었습니다.
그때 앞쪽에 키 큰 덴마크 친구가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호기심에 앞자리로 조별 프로젝트를 같이 할 팀원이 없는지 물었습니다. 그 친구는 자신이 몸이 조금 불편해서 혼자 앉아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너만 괜찮으면 우리가 앞으로 갈 테니 같이 하자"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 친구는 멋쩍게 웃으며 제 손을 잡았고, 우리 셋은 그렇게 한 조가 되었습니다.
저는 둘을 보며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무렴, 둘보다는 셋이 균형 잡기 좋잖아. 앞으로 잘해보자"
한국에서는 나 홀로 경쟁에 익숙했던 저였지만, 이제는 생존율을 높이려 나도 모르게 함께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다음 학기에도 라스무스와 저는 늘 같은 수업을 들었습니다. 저는 수업을 종종 빠졌습니다. 과제를 혼자 할 수준이 안 되어 라스무스에게 의존했습니다. 이 친구는 불평 없이 과제를 도왔습니다.
우리는 콤비 플레이가 좋았습니다. 라스무스는 프로그래밍 전문가 수준이었습니다. 저는 빠른 속도로 광범위한 레퍼런스를 찾는 데 능숙했습니다. 데이터와 잘 만들어진 프로그램 덕분에 프로젝트 평가에서 늘 좋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친구 만들기 어렵다는 덴마크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하는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무거운 택배를 찾으러 갈 때도 라스무스가 차로 도움을 주기도 하고 기숙사에 초대해 밥도 같이 먹었습니다. 한 번은 제가 라스무스에게 김치찌개를 해줬습니다. 김치찌개에 들어간 청양고추가 너무 매워서 그가 사레에 들려 응급실에 갈 뻔했습니다. 다음에는 복수심이었을까요? 라스무스가 가족 집에 저를 초대했습니다. 호밀빵 위에 청어 삭힌 것을 내주었습니다. 저는 먹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갔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문화를 극적으로 이해하며 우정을 쌓았습니다.
3학기를 마치고 졸업 논문 시즌이 되었습니다. 저는 혼자 논문을 쓸 자신이 없었습니다. 라스무스에게 팀 논문을 제안하자, 그는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라스무스는 제 프로그래밍 실력을 알고 있었습니다. 결국 논문의 모든 프로그램은 이 친구가 다 했어야 했습니다. 시간도 두 배 걸리는 일이었습니다.
논문을 쓰기로 한 그때, 일본 도쿄 공업대학 교환연구생 공고를 보았습니다. 저는 논문을 미루고 일본행을 지원했고, 운 좋게 합격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논문은 잠시 중단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라스무스는 감사하게도 한 학기 자기도 휴학하고, 제가 일본 다녀오면 같이 논문을 쓰자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이 친구는 제가 돌아오면 혼자서는 절대 논문을 못 쓴다는 것을 알아서 기다려준 것입니다. 라스무스는 저의 졸업을 자신의 일처럼 여긴, 제 인생의 은인이자 동반자였습니다.
한 학기 동안 일본을 다녀온 후, 우리는 논문에 다시 착수했습니다. 우리는 실험적인 도전을 했습니다. 기존 논문 인용 방식 대신 실제 산업 데이터를 갖고 프로그래밍해 보자고 했습니다. 이는 데이터 확보나 소프트웨어 구매가 어려운 실험적인 주제였습니다.
담당 슈퍼바이저 교수님은 우리의 도전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교수님은 우리를 데리고 직접 회사 방문도 같이 했습니다. 우리는 실제 물류 회사 현장을 둘러보며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논문을 제출하고 마지막 디펜스가 있던 12월이었습니다. 우리 둘은 시간차를 두고 시험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프로그램 심화 질문이 나올까 봐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프로그래밍 질문에는 거의 대답을 못 했습니다.
개별 점수는 라스무스 10점, 저는 7점을 받았습니다. 7점만으로도 졸업은 할 수 있었기에 저는 안도했습니다.
잠시 후, 시험 평가를 했던 두 교수가 우리 둘을 다시 불렀습니다. 교수님은 말했습니다.
" 두 사람이 한 조로 논문을 썼는데 점수차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역할을 잘 나누고 실제 산업 데이터를 가지고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리고 놀라운 말을 덧붙였습니다.
"두 명 모두 12점을 주겠습니다. 이틀 뒤면 크리스마스니, 12월의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우리 둘 다 12점 만점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지난 2.5년간의 어려움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0점 맞고 충격받았던 시점과, 12점 받은 또 다른 충격이 중첩되었습니다. 저는 너무 기쁜 나머지 두 교수한테 습관처럼 90도 인사를 꾸벅했습니다. 라스무스와 부둥켜안고 문밖에 나왔습니다. 문 앞에는 라스무스 부모님이 준비해 주신 케이크와 두 국기가 놓여 있었습니다. 저는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라스무스, 네 덕분에 '내 0점짜리 유학 생활이 12점짜리 해피 엔딩'이 되었다. 정말 고맙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