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통에서 발견한 희망

판트(Pant)로 채운 밥그릇

by 김희욱

덴마크 물가의 압박


새로 시작한 석사 학기는 시작부터 잔혹했습니다. 물가 높은 덴마크에서 생활비는 지갑을 털어가는 하이에나 같았습니다. 심지어 부가가치세(VAT)는 유럽 최상위 수준인 25% 영수증에 덴마크어로 찍힌 부가가치세(MOMS) 숫자를 볼 때마다 스트레스 지수가 수직 상승했습니다.


이 높은 부가세는 덴마크가 복지 국가 모델을 유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높은 VAT 수입은 무료 의료와 교육, 실업 수당 등 복지 시스템의 안정적인 재원이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덴마크 국민들의 행복도와 삶의 질은 높았습니다. 하지만 그 세금 혜택을 보지 못하는 외국 학생 신분인 저에게는 행복 지수는커녕 생존 문제가 걸려 있었습니다.


학교 내 칸틴은 당연히 사치였고 슈퍼마켓은 박물관처럼 구경만 했습니다. 웬만한 끼니는 기숙사에서 간편식으로 때웠습니다. 장기간 버텨야 한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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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 슈퍼마캣 NETTO

가뭄 끝 단비, 판트(Pant) 제도


그때 가뭄 끝 단비를 만났습니다. 덴마크의 공병 보증금 제도, 판트(Pant System)였습니다. 이 판트 제도는 빈 병이나 캔을 반환하면 보증금을 환급받는 시스템입니다. 덴마크는 이 제도로 재활용률 90% 이상을 달성했습니다.


참고: 판트(Pant) 작동 방식

보증금: 음료수 용기 가격에 1~3 덴마크 크로네(약 200~600원)의 보증금이 포함됩니다.

환급: 소비자는 빈 용기를 슈퍼마켓 기계에 넣어 스캔합니다. 기계가 용기를 인식하면 즉시 보증금이 환급됩니다.


학교에 학생들이 마시고 버린 빈 병들이 저에게는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로 보였습니다. 저는 이 쓰레기들을 주워 '재활용도 하고 돈도 모으는' 일석이조의 길을 열기로 했습니다.


판트 줍기 달인의 탄생


저는 어떻게 하면 많은 판트를 주울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데이터 바의 위치를 파악했습니다. 청소부가 쓰레기통을 정리하기 전, 골든타임을 사수하기 위해 청소부의 동선까지 꼼꼼히 기록했습니다.


판트를 수거한 첫 주에는 30개였습니다. 곧바로 노하우가 생겼습니다. 청소부의 동선을 피하는 저만의 '판트 루틴을 만들었습니다. 이제 하루 30~40개는 거뜬했습니다. 주 단위로 100개 판트 줍기는 저에게 새로운 미션이었습니다. 캠퍼스가 넓어서 빌딩별 데이터 바를 부지런히 순회했습니다. 청소부 일도 돕고, 재활용도 하고, 돈도 벌었습니다.


매주 판트를 팔아 번 돈으로 쌀을 샀습니다. 운 좋게 평소보다 판트를 많이 주울 때는 삼겹살에 보너스로 맥주까지 사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때 맥주 한 캔의 행복감은 그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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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트 스테이션

영수증 대신 눌러버린 '도네이션' 버튼


매주 금요일, 기숙사 비어 파티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학생들이 모아 둔 캔을 플라스틱 백에 가득 담아 왔습니다. 자전거 양쪽에 빈 캔 백을 매달고 의기양양하게 오던 길이었습니다. 갑자기 한쪽 백이 길가 한복판에서 찢어졌습니다. 저는 재빨리 선글라스를 꺼내 쓰고, 마치 취객처럼 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주변 시선이 느껴져 굴욕적인 장면을 서둘러 수습했습니다.


겨우 슈퍼마켓에 도착해 분리수거를 끝냈습니다. 금액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죠. 하지만 마지막에 영수증 대신 '도네이션(기부)' 버튼을 잘못 누르는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1초 동안 억장이 무너지는 비명을 속으로 질렀습니다. 환급받을 돈이 모두 환경복지를 위해 기부되었다는 사실에 울상이 되었습니다.


이 '공병 줍기 방식'을 로지스틱 프로젝트로 했더라면 만점이었을 텐데....


SU VS 원고료


판트 덕분에 식료품 걱정은 덜었지만, 주말 외출이나 기본적인 생활비 마련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한국 잡지사에 연락했습니다. 덴마크 현지 특파원, 일명 덴마크 통신원처럼 일했습니다. 매월 취재 기사를 보내고 원고료를 받았습니다. 당시 저는 수업보다 취재가 좋았습니다. 이미 예상된 형태의 수업 시간표보다, 매번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인터뷰가 훨씬 짜릿한 기회였습니다. 저의 학업은 뒷전, 삶은 완벽하게 주객전도되었습니다.


저는 생존을 위해 가끔 수업도 빠지고 일을 하러 갔습니다. 반면, 덴마크 친구들은 늘 여유로워 보였습니다. 저는 생활비를 어떻게 충당하는지 물어봤습니다. 덴마크 친구들은 매월 SU를 받는다고 답했습니다. SU(Statens Uddannelsesstøtte)는 덴마크 정부가 학생들의 생활비를 지원하는 국가보조금입니다. '교육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이 아름다운 제도에 저는 경악했습니다.


와우. 학비도 무료인데, 매달 180만 원 용돈까지 준다고? (현재는 기간과 액수가 축소되었지만) 저는 이 엄청난 복지 앞에서 한숨만 나왔습니다. '그럼 나는?' 학비도 내고, 용돈도 스스로 벌고, 거기에 교수님 눈치까지 봐야 했습니다.


부러워한들 어쩔 수 없습니다. 제가 선택한 '가시밭길'이었습니다. SU는 NON-EU 학생인 저에게는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다행히 빈 병과 원고료라는 투 트랙 전략 덕분에 겨우 버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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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버디 등장


생존을 위한 노력이 과했던 걸까요. 수업을 빠지는 일이 잦아졌고, 과제도 띄엄띄엄 냈습니다. 이대로라면 점수는커녕 졸업도 못할 예감이 들었습니다.


저는 결국 두 번째 0점이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다시 받게 됩니다. 높은 물가, 그리고 두 번의 낙제. 도대체 이 낯선 땅에서 어떻게 버텨야 했을까요? 그때 덴마크에서 인생 친구 라스무스를 만났습니다.

463831165_10224547248540823_2538308137532516843_n.jpg 라스무스 부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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