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교수와 친구 되는 법
교환학기를 마치고 저는 한국으로 돌아가 졸업을 했습니다. 첫 시험 0점의 충격은 강렬했습니다. 한국과 너무나 다른 수업 방식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이곳에서 더 배워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에 석사를 지원했고, 운 좋게 합격해서 다시 덴마크를 찾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제가 석사를 시작하던 2010년부터 덴마크는 비(NON) EU 학생에게 학비를 요구했습니다. 높은 물가에 학비 자부담까지 더해졌습니다. 저는 심적인 부담감을 안고 석사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번 학기는 진짜 열심히 해야 한다'라고 다짐했습니다.
석사 첫 학기, 담당 교수님과 복도에서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저는 한국에서처럼 "Hello, Professor!"라는 호칭을 썼습니다. 저도 모르게 고개가 60도 정도 숙여졌습니다. 제 인사를 받은 알란(Allan) 교수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Professor 직함은 빼고, 그냥 이름을 불러. 여기에선 고개 숙일 필요도 없어."
저는 당황했습니다. 다음 만남부터 어색하게나마 "Hej, Allan!" 하고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고 반사신경처럼 숙여지는 고개는 애써 들어 올렸습니다. (우리 알란교수는 이 어려움을 알랑가 몰라..)호칭 대신 이름을 부르니 교수님과 제 사이가 가까워지는 듯했습니다. 그 낯선 인사법은 덴마크 교육의 핵심이었습니다.
이러한 호명 문화는 단순한 예의가 아닙니다. 덴마크 사회 전반의 '평등'이라는 가치관에서 비롯됩니다. 덴마크는 모두가 동등한 인간이라는 인식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직장 CEO나 정치인에게도 이름을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에서 교수와 학생은 지식을 함께 탐구하는 동료로 여겨집니다. 교수는 '가르치는 권위자'가 아닌, '토론을 이끄는 파트너' 역할을 합니다. 이름을 부르는 것은 수평적인 학문 공동체를 만들고, 열린 토론을 장려하는 실질적인 장치입니다.
심지어 덴마크어에는*'at lære'라는 하나의 단어가 '배우다'와 '가르치다' 두 뜻을 모두 가집니다. 선생도 학생에게서 배우고, 학생도 선생에게서 배운다는 상호적 학습 철학이 언어 속에 담겨있었습니다. 이름을 부르는 것은 곧 서로가 배움의 동반자임을 강조하는 의미입니다.
이 수평적 관계가 만든 단적인 예시가 있었습니다. 석사 첫 학기 마무리 무렵, 다음 주 구술 평가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수가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수업 평가 시간을 갖겠다고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수업이 끝날 무렵, 조교가 가져온 설문지로 형식적인 평가가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좀 달랐습니다. 저를 제외한 대부분의 학생들이 두 번째 손가락을 들고 발언권을 기다렸습니다.
학생들의 피드백은 거침없었습니다. "연사 초청 약속이 부족했다", "비싸게 산 교재의 3분의 1은 사용되지 않아 아쉽다", "기초 수업 시간이 짧았다" 등 불만 사항을 이야기했습니다.
" 그들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나의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교수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시간 "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다음 주가 시험인데, 이 부정적인 피드백이 점수에 도움이 되겠어?" 손을 들지 않는 저에게도 교수가 물었습니다.
"브루스, 너는 피드백이 있니?"
저는 입바른 소리를 했습니다. "실용적인 문제를 다루어 좋았습니다. 조별 과제도 재밌었고, 질문 시간이 많아 좋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학생들의 피드백은 시험 점수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학생들이 컴플레인했던 많은 부분들이 다음 학기 때 그대로 반영되어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걸 어떻게 알았냐고요? 이번 시험에서도 0점을 받고 재수강했거든요. 하하하
호칭 대신 호명으로 가까워진 교수님과의 관계는 '내 생각'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수평적인 주체로 저를 변화시켰습니다. 하지만 수평적인 관계와는 별개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야 하는 덴마크식 교육은 여전히 저에게 거대한 장벽이었습니다.
저는 결국 두 번째 0점이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다시 받게 됩니다. 높은 학비와 물가, 그리고 두 번의 낙제. 도대체 이 낯선 땅에서 어떻게 버텨야 했을까요? 다음 이야기에서는 빈 병을 줍고 글을 쓰며 하루하루를 버텨냈던 처절한 덴마크 석사 생존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