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떡, 낯선 땅 덴마크의 문을 두드리다
1년의 시간, 무엇을 할 것인가? '행복 배달 프로젝트'라는 막연한 목표 아래, 저는 비장하게 '시장분석'이란 걸 해보기로 했습니다. 코펜하겐 거주 덴마크 친구들과 페북 친구 100명에게 '한국에서 제일 맛있었던 음식'과 '덴마크에도 있었으면 하는 음식'을 물었습니다. 그 결과는 흥미로웠습니다.
K-BBQ, 비빔밥, 불고기... 예상 가능한 상위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를 이은 4위, 호떡. 화려한 한식이 아닌, 소박한 길거리 음식이 덴마크 친구들의 기억에 남은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덴마크 사람들이 사랑하는 시나몬, 길거리에서 간편하게 즐기는 휴대성, 그리고 길고 추운 겨울을 녹여줄 따뜻함. 어쩌면 이 소박한 음식이 덴마크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초기 자본과 장소의 제약 속에서, 호떡은 제게 현실적인 유일한 선택지처럼 다가왔습니다.
아이템은 정했지만,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덴마크에 앗는 식재료로 호떡 반죽과 누르개를 찾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저는 '진짜' 호떡의 비밀을 찾아 한국으로 향했습니다. 호떡 장인들을 검색해 서울 남대문 시장과 부산 남포동 시장을 순례했습니다.
수소문 끝에 만난 남대문 시장의 호떡 장인. 처음 보는 이방인에게 수십 년 노하우를 선뜻 전수해 줄지는 미지수였습니다. 저는 다른 손님들처럼 줄을 서서 사장님의 능숙한 손놀림을 관찰했습니다. 드디어 제 주문 차례가 왔을 때,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걸고 저는 덴마크에서 호떡을 통해 '행복'을 배달하고 싶다는 저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했습니다.
놀랍게도, 사장님은 다음 날 아침, 저에게 반죽과 속 재료의 비밀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사장님은 나중에 말씀하시길, 한국이 아닌 덴마크에서 한국 음식을 소개하며 덴마크의 행복의 비결을 한국에 전달하겠다는 제 프로젝트의 진심이 마음을 움직였다고 하셨습니다.
남대문에서 레시피를 얻은 후, 저는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당시 미디어에서 가장 주목받던 곳 중 하나가 부산 씨앗호떡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줄 서서 먹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부산 씨앗호떡의 인기를 눈여겨보았습니다. 단순한 설탕 대신 견과류를 넣는 것. 이것이 건강을 중시하는 덴마크 시장을 공략할 결정적인 차별점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무거운 철판과 기물들을 싣고, 저는 다시 덴마크로 향했습니다. 이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레시피와 장비는 준비되었지만, 저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길 위에서 장사하기 위한 규칙, 즉 판매 장소와 허가 문제였습니다. '프로젝트'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창업의 기본을 잊었던 것입니다.
제 마음은 이미 코펜하겐 길거리에 나가 있었지만, 호떡을 소개할 장소가 없다는 현실, 허가 절차와 위생법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 섰습니다. 이 막막함 속에서 한 줄기 빛 같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코펜하겐 시에서 세계 음식 노점 지원자를 모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원자의 조건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세계 각국의 길거리 음식을 소개할 수 있는 메뉴를 선정할 것
- 자릿세는 없는 대신 시에서 정해준 여러 자리를 이동하며 장사를 할 것
이 조건 아래 저는 한국의 포장마차와 덴마크의 자전거 문화를 결합한 '호떡 자전거'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저는 곧바로 이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카고 바이크 장인 쇠렌을 만났습니다. 저의 무모해 보이는 계획을 그는 흥미롭게 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철판과 가스통을 장착한 호떡 자전거가 탄생했습니다. 상상이 현실이 되었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자전거는 완성했지만, 넘어야 할 산은 많았습니다. 날씨로부터 자전거를 보호할 장치, 안전한 주차 공간, 그리고 결정적으로 음식을 조리할 위생적인 주방. 집에서 만드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저는 시내 레스토랑들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주방 사용 비용을 지불하겠다고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모두 'No'였습니다. 주방 없이는 프로젝트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져 갈 무렵, 덴마크 친구 에밀이 한 교회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교회 주방이라니! '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교회에 찾아가 프로젝트를 설명했습니다. 기적적으로, 교회는 저렴한 비용으로 주방 사용을 허락했습니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길거리로 나갈 생각에 마음이 부풀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깨달았습니다. 정작 가장 중요했던 시청 벤더 지원 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지원마감은 단 이틀 후. 시간이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지원서를 제대로 준비할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1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위기 속에 절망감이 저를 덮쳤습니다. 이 마지막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온라인 접수는 마감된 것을 확인 후 바짓가랑이 잡는 심정으로 지원서를 들고 찾아간 시청에서 운명처럼 한 청소부 아주머니를 만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