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에서 배운 상생 비즈니스
시청 미팅에서 받은 레드존 허가증의 기쁨은 짧았습니다. 담당자가 설명하는 운영 규칙은 제가 꿈꾸던 자유로운 길거리 장사와 달랐습니다.
담당자는 모여있는 24명의 벤더에게 소개 시간을 주었습니다. 저처럼 대부분 덴마크가 아닌 외국 국적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두 다양한 길거리 음식을 팔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곧이어 위생 검사 대비와 허가증 휴대 같은 기본 내용이 설명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코팅된 종이 한 장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앞면은 레드존 지도, 뒷면은 날짜와 장소 번호가 적혀 있었습니다. 벤더들은 갸우뚱하며 담당자의 설명을 기다렸습니다.
" 앞면 지도는 여러분이 사업할 수 있는 24개의 장소입니다. 뒷면은 각 벤더에게 배정된 날짜와 장소입니다. 여러분은 서로 장소를 혼동하지 않도록 하루마다 장소를 변경해 가며 운영하면 됩니다."
이 말을 들은 벤더들은 아우성을 쳤습니다. 참다못한 한 벤더가 손을 들고 물었습니다.
"왜 매일 로테이션을 시키는 겁니까?" 질문을 받은 담당자는 차분하게 답했습니다.
"여러분의 자리에는 자릿세가 없습니다. 시에서도 어떤 자리가 좋은지 모릅니다. 따라서 한 벤더가 좋은 자리를 독점하지 못하도록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매일 자리를 옮겨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벤더들은 그 공정한 이유에 공감했습니다. '꿀자리'도 있었고, '폭탄자리'도 있었습니다. 다들 시간표를 들고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한 벤더가 다시 질문했습니다.
"개인 사정으로 영업을 못 하는 경우 자리를 바꿔도 됩니까?"
담당자는 "벤더 간 상호 합의하에 그건 가능하다"라고 답했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24명의 벤더들은 페이스북 그룹을 만들어 소통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그곳에 모인 24명은 치열한 경쟁을 뚫은 경쟁자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한 거리에서 협력하는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첫날 영업 후 채팅창은 뜨거웠습니다. 다들 각 자리에 대한 후기를 공유했습니다. 심지어 당일 매출까지 공유하는 벤더도 있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다음 날 갈 자리에 대한 사전 정보를 얻었습니다.
매일 장소를 옮겨야 했기에 저는 잠재 고객들에게 제 위치를 알려야 했습니다. 다른 벤더들을 참고하고, 영화 <아메리칸 셰프>에서 본 대로 SNS를 활용했습니다. "오늘의 호떡 자전거 위치는 여기!"라며 영업시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코펜하겐 최초의 'KOREAN STREET FOOD' 타이틀 덕분에 사람들이 팔로우했습니다. 페이스북 공지를 보고 찾아오는 손님도 생겼습니다.
길거리에서 보내는 시간이 외롭지 않았습니다. 호떡을 찾아오는 손님들 덕분이었습니다. 매일 같은 거리에서 얼굴을 마주치는 동료 벤더들도 있었습니다. 가끔 서로 음식을 바꿔 먹었습니다. 음료를 파는 친구는 음료수를 건네기도 했습니다.
한 달쯤 지나 24개의 장소를 다 돌았습니다. 우리는 장소에 대한 데이터를 갖게 되었습니다. '꿀자리'에 배정된 벤더가 못 나오면, 그 좋은 자리를 기꺼이 다른 벤더에게 양보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이런 비즈니스가 덴마크의 추위 속에서 피어난 따뜻한 우정 같았습니다.
하루는 한 은행 직원이 찾아왔습니다. 은행에서 새로 나온 앱 MobilePay(모바일페이)를 소개했습니다. 덴마크 최대 상업은행인 단스케뱅크에서 만든 서비스였습니다. 이는 전화번호 기반의 P2P 송금을 핵심으로 했습니다. QR 코드, 블루투스를 활용한 비접촉식 결제 등 다양한 방식도 지원했습니다.
직원은 이 앱이 점주 입장에서는 위생적이고, 고객도 현금 대신 개인 번호로만 송금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2013년에 이미 이런 기술 (한국 토스앱 출시 2015년 2월 )을 길거리 노점에 도입하고 있다는 사실이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렇게 호떡과 함께 시작된 '행복 배달 프로젝트'의 취지는 간단했습니다. 호떡이 구워지는 8-10분 동안,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덴마크 사람들의 일상 속 만족감을 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손님이 학생이면 학교 생활에 대해서 묻고 직장인이면 직장 생활의 만족도를 물었습니다. 그렇게 호떡을 팔고 사람들과 대화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는 한 손님이 물었습니다.
"행복 배달은 어디에서 어디로 하는 거예요?"
저는 "덴마크에서 찾은 행복의 비결을 한국에 배달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손님은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그럼 덴마크에서는 행복 배달 안 해요?"
저는 잠시 고민하고 말했습니다.
"덴마크는 이미 너무 잘 살고,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니까요. 추운 나라에서 이 호떡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제가 덴마크에 따로 행복을 배달할 곳이 없어요."
그 손님은 제 생각을 바로잡아 주었습니다. 덴마크가 복지가 잘 되어있지만, 그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고 했습니다. 중앙역 뒤편에는 알코올 중독자나 노숙인들을 돌봐주는 카페가 있다는 정보도 주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행복 배달이 일방통행이 아니라 양방향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습니다. 그렇게 매일매일 사람들을 만나고 호떡 맛을 보여주며 프로젝트의 의미를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그 24개의 장소 중에서, 한 장소는 평생 잊지 못할 악몽 같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