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中

by 포비

나는 그녀를 좋아했고, 그녀도 그 사실을 알았다. 알 수 밖에 없었다. 내 모든 말과 행동들이 설명해주고 있었다. 오늘은 고백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그녀와 데이트를 한 것이 몇번이나 되지만 용기가 없던 나는 결국 말하지 못하고 아쉬움만 남긴 채 집에 돌아왔었다. 그렇게 혼자 집에 돌아오는 길이면 착잡함과 한심함이 나를 덮쳤다. 사랑하는 여자한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을까? 바보같은 내 모습이 한심했지만 점점 생각은 그녀가 내 고백을 피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것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나는 우울했고, 그녀가 잘 들어갔냐는 연락을 보내오면 다시 행복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그녀가 없는 내 삶은 없었다.


몇번째 데이트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10월의 어느날, 우리는 서울숲에서 만났다. 와인을 한잔 마시고 감각적인 골목들을 걸었다. 밝게 빛을 내뿜고 있는 멋진 건물들 사이를 우리 둘만 걸었다. 그 넓고 조용한 공간에 오직 우리 둘만 있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대화를 나누면서 앞도 잘 보이지 않는 밤의 서울숲에 들어갔고 한 벤치에 앉아서 나는 그녀에게 내 마음을 보여줬다. 물론 이미 내 마음을 다 알고 있었겠지만. 그녀는 나를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나는 앞으로 같이 행복하자고 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손을 잡았고, 집에 바래다주면서 우리의 사랑이 시작됐다.


첫 연애는 아니었다. 그러나 첫 사랑이었다. 같이 있으면 시간이 참 야속하게 달려가고, 같이 없으면 그 사람만을 생각했다. 특히 그녀와 함께 들었던 노래를 만날때면 나는 구름속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우리의 사랑에서 가장 생각나는 장면은 그녀의 생일이다. 나는 좋아하는 책 한권과 아름다운 꽃말을 가진 장미 한송이, 그리고 마음을 꾹 눌러담은 편지를 선물했다. 비싼 목걸이는 못해주고, 멋진 레스토랑은 데려가지 못하는 나였지만 그녀는 그 선물과 작은 이자카야에서 먹는 하이볼 한잔에 만족해주는 사람이었다. 정말 일본 골목길에 있을 것 같은 우드톤의 가게였고, 되게 좁아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어깨를 마주대고 앉았다. 음식은 하나같이 맛있었고 조용한 분위기의 가게와 흘러나오는 잔잔한 재즈 속에서 우리는 속삭이면서 대화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 앉아 손을 맞잡고 딱 서로에게만 들릴 것 같은 목소리로 교감했다. 그녀와 함께 했었던 많은 것들이 이제는 추억으로 남아 내가 좋아하는 장소들, 노래들이 되었지만 그때 그 이자카야 만큼은 절대 다시 가지 못할 것 같다. 어쩌면 많이 지쳤을때 혼자 찾을 것 같기도 하다.


많은 순간들을 함께했다. 여느 연인들처럼 영화를 보고 쇼핑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산책을 했다. 우리는 둘다 걷는 것을 좋아하고 그 어떤 것들보다 서로 나누는 말들이 가장 재밌었기에 많은 시간을 거리에서 보냈다. 내가 좋아하는 동네를 걸으면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의 그 추억들이 내 연애관을 만들어줬다. 그녀와는 참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우리는 매주 비슷한 삶을 살았지만 매주 새로운 말들이 우리 사이를 오갔다. 가장 재밌게 봤던 '비포 선라이즈'속의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처럼. 서로의 삶을 존중하고 짐이 아닌 도움이 되는 관계를 추구했다. 그녀는 질투라는 것이 없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런 여자친구에게 더 믿음을 줄 수 있게 노력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보내고, 하루가 끝날때쯤 만나 와인을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사랑은 그 형태도, 실체도 알 수 없는 것이라지만 내가 했던 그것이 지향하는 사랑의 모습이었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평범한 연애였다. 남들이 다 하는 그런 연애. 오직 나와 그녀만 그 황홀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사랑이었다. 그래서 더 큰 힘을 가지는 기억이다. 가끔 생각나는 매운 떡볶이보다 매일 먹는 집밥이 더 강한 힘을 가진 것 처럼 어느순간 내 일상의 많은 부분이 그녀에게 잠식되어갔다. 그녀가 없는 삶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어렸기에, 언젠가 끝이 날 확률이 훨씬 크다는 것을 서로가 알았지만 세상 모두가 아닐 것이라고 말해도 우리의 사랑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사실 나만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