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퍼드 메디컬 센터 응급실 가다
팔로알토로 이사 온 뒤 대략 9개월이 되었는데 1월에 전기 자전거 구입 후 자전거와 함께 도로에 추돌하는 사고가 이미 다섯 번은 된다.
어제 스탠퍼드 대학교 교정에 위치한 디쉬(Dish) 언덕을 삼십 분 정도 오르고 내린 뒤에 자전거를 타고 교정을 달리던 중 갑자기 자전거 바퀴가 순식간에 미끄러지더니 바닥에 쓰러졌다. 물론 내 몸은 자전거와 함께 쓰러졌다. 엎어지고 정신을 차려 보니 쓰러진 곳에 먼지로 뒤덮인 철근 덮개 네 개가 도로에 놓여 있는 게 아닌가.
불행 중 다행으로 나는 새 자전거 헬맷과 함께 자전거 전용 긴 검은색 바지와 긴 팔 재킷을 입고 있었다.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은반지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고 자전거에 부착되어 있던 가방도 흙먼지에 덮여 있다. 오 세상에나! 일단은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무릎, 팔꿈치, 팔이 바닥에 쓸려 따갑고 아프다. 아픈 것을 참으며 자전거를 일으켜 세우고 일어나니 지나가던 차의 백인 여성 운전자가 차를 세우더니 내게 도움이 필요한 지 묻는다. 물어봐 줘서 고맙고 괜찮다고 말한 뒤 몸을 가누려는데 또 한 대의 차가 서행하더니 내게 괜찮은 지 물어본다.
솔직히 괜찮지 않지만 괜찮다고 고맙다고 하고는 운전자를 보낸다. 자전거를 타고 귀가할 수 있겠는지 살피느라 조심스럽게 자전거에 올라탔다. 다행히 자전거가 움직인다. 또한 감사하게도 내 두 팔과 다리를 쓸 수 있다.
운동센터 가기는 글렀고 일단 집에 가서 탈의하고 상처를 확인해 봐야겠다. 스탠퍼드 메디컬 센터 응급실이 자전거로 십분 거리에 있지만 오래 대기해야 할 수 있고 비용 또한 수천 달러에 나올지 모르니 일단은 집에 안전히 가는 것이 목표다.
겁이 나고 무섭지만 일단은 페달을 살살 밟고 천천히 집으로 가자. 평소에는 이십 분이면 도착할 텐데 삼십 분 걸려 도착했다. 다시 자전거가 미끄러져 쓰러질 까 걱정이 되어 자전거에 올라타고 있는 것이 즐겁지 않다. 길바닥을 살피느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핀다.
철근 바닥에 고꾸라진 게 아직 너무나 생생하게 몸이 기억하고 있잖은가.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얼굴을
정면으로 박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했나. 상상하기도 싫다.
감사하게도 안전하게 귀가했다. 욕실에 가서 일단은 흙먼지로 더럽혀진 두 손을 비눗물로 씻고 상의와 하의를 조심스럽게 벗었다. 새까만 흙먼지 물이 욕실 싱크대를 가득 채운다.
심하게 생채기난 팔과 무릎에 피부가 벗겨져 있고 피가 흐른다. 흐르는 물을 상처부위에 흘려보내고 흙먼지로 까맣게 된 상처 피부 부위는 알코올을 솜에 묻혀 조심스럽게 닦는다. 아이 따가워! 진피가 드러나니 여간 따가운 게 아니다.
양팔 상처부위 소독 후 듀오 덤(Duo Derm)을 가위로 잘라 상처부위에 붙여 주었다. 다음은 무릎 상처 차례다. 왼쪽 무릎 상처는 긁힌 상처다. 피부가 벗겨져 있으나 깊지 않다. 그다지 심해보이진 않는다.
헌데 오른쪽 무릎 상처가 예사롭지 않다. 피부가 양탄자 접힌 것처럼 돌돌 말려 있고 자상이 깊어 보이는데 피는 거의 나지 않고 피가 피부 안에 고여있는 것 같다. 다른 상처 부위와 달라서 걱정이 된다. 급히 구글 서치하여 보니 아무래도 응급실에 가서 의사에게 보이고 치료하는 게 좋겠다. 챗지피티(Chat GPT)도 응급실에 갈 것을 권한다. 병원에 가서 의사와 병원 직원에게 질문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미리 물어 준비해 두었다.
파상풍 주사를 맞는 게 필요할 수 있다. 녹슬고 날카로운 불체가 상처부위에 닿았을 수 있으니까. 몸에 헐렁하고 가벼운 재질의 깨끗한 옷으로 상하의를 갈아입고 자전거를 타고 스탠퍼드 메디컬 센터 응급실로 향한다.
다행히 십오 분 거리에 불과하다. 첫 방문인데 걱정반 기대반이다. 어두운 밤거리를 달려야 하지만 아홉 시가 넘은 이 시가에는 차량의 이동이 한산하다. 팔로알토에 사는 이점 가운데 하나이다.
스탠퍼드 메디컬 센터는 워낙 과다 진료 및 과다 청구로 내 한국인 지인들 사이에서 악명 높은 곳이다. 중상류층 이상의 백인 지인들은 의료진과 서비스가 우수하다고 칭찬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렇게 평가는 개인의 경재상황에 따라 판이하게 다를 수 있다.
한 예로 한국인 지인은 아들이 응급실 침대에서 하루 밤 보내고 아침에 퇴원했는데 한화로 이천 오백만 원이 청구되었다고 한다. 의료보험이 있어 그에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급했다고 하니.
치료받기 전에 거듭 병원 직원에게 문의해서 내가 소지한 메디컬 커버리지로 응급실 치료비가 모두 지원되는지 확인했다. 일단은 의사를 만나는 게 중요하다. 도착하니 직원이 내 환자 방문 등록을 마치고 간호사가 심장 박동수를 측정한다. 응급실 방문 사유를 질문한 뒤 컴퓨터에 기록한 뒤 대기실에서 이름 호명이 되기를 기다리라고 한다.
환자 대기실에는 대략 이십여 명의 환자들 및 보호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조용하다. 서울에서 북적거리는 대학병원 응급실 방문때와는 사뭇 다른 광경이다. 음소거된 텔레비전 화면이 켜져 있을 뿐이다.
대기한 지 십여분이 채 되지 않아 갈색 웨이브 헤어에 갈색 뿔테 안경을 쓰고 마스크를 두 개 낀 백인 남성 응급실 전문의가 내 이름을 부른다. 금세 그에게 호감이 간다. 대답하니 그가 내 앞에 앉아서는 자신을 소개하면서 내 안경이 멋지다고 말해준다. 나도 그의 안경이 잘 어울린다고 대답했다.
그는 닥터 마틴 검은색 가죽 부츠를 신고 있다. 이렇게 스타일리시하고 댄디한 의사라니! 대개 응급실 의사들은 운동화나 크록스 슬리퍼를 신고 있기 마련이다.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의 표정을 보니 곧 안도감이 찾아온다.
그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다. 오른쪽 무릎 상처부위가 걱정이 왔다고 하니 상처주위를 보여달라고 한다. 그는 상처를 살피더니 괜찮다며 그렇게 깊은 상처가 아니라고 한다. 다른 상처부위 응급조치를 잘했다면서 그와 같이 하면 된다고 한다. 휴, 참 다행이다!
내게 마지막으로 파상풍주사를 맞은 게 언제냐고 묻는다.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고 하니 혹시 모를 감염위험 처치를 위해 파상풍주사를 맞고 가라고 한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며 마치 트럭이 지나가는 것 같은 통증을 느낄 수 있는데 이것이 드물지 않은 일반적인 증상일 수 있다고 한다. 의사의 처방이 필요 없는 (OTC: Over The Counter) 항염제를 복용하면 좋겠다고 한다.
의사의 이름은 크리스천 로스. 닥터 로스의 따뜻한 눈빛과 미소는 그를 더욱 믿음직스럽게 한다. 지나 치지 않은 유머와 부드러운 말씨가 긴장한 내 몸과 마음을 풀어주었다. 그는 다른 환자 진료를 위해 곧 인사 후 떠났다. 간호사가 호명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큰 숨을 들이내 쉬었다. 내가 신경계를 안정시키는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오분이 채 되지 않아 간호사 제니퍼 케이의 호명을 받고 응급실내 독방으로 들어가 파상풍 주사를 맞았다. 커다란 눈망울의 그녀는 매우 출렁이는 자잘한 곱슬 머리카락을 묶어 올렸고 동그란 검은색 안경을 쓰고 있다. 비숑을 애완견으로 두고 있어 비숑 플라스틱 핀을 그녀의 병찰과 함께 간호사복에 달고 있다.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관찰한 것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긴장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특히 스몰 토크가 분위기를 부드럽게 한다.
나는 곧 다시 혼자가 되었고 그녀는 이내 방으로 돌아와 상처치료 비디오 영상 정보가 포함된 오늘 나의 응급실 방문에 대한 기록이 적혀있는 열 장의 서류를 주고는 귀가하라고 한다. 48시간 내에 심한 출혈이 있거나 통증이 있으면 서슴지 말고 응급실에 다시 방문하라고 한다.
이렇게 나의 스탠퍼드 메디컬 센터 응급실 방문은 마무리가 되었다. 오클랜드의 하이랜드 메디컬 센터 응급실 경험과는 천지 차이다. 스탠퍼드 메디컬 센터는 전 세계적으로 우수한 곳이니 만큼 시설뿐만 아니라 뛰어난 의료진을 갖춘 곳이니까 말이다. 대신 엄청 비싼 비용이 요구되는 곳이다. 미국 정부와 하느님께 감사하게도 나는 오늘 응급실 서비스 금액에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의료 혜택 수혜자이다.
가능하다면 병원에 방문하는 일은 피하고 싶지만 살다 보면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이만한 게 얼마나 감사한 지. 사고 후 후유증으로 나는 두통과 근육통을 겪고 있으며 어지럽다. 뇌진탕의 증상들일 것이다. 이 또한 지나 가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