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예술가 라이프

카페 Ballast 인 샌프란시스코

by Athena Kim

새 동네 친구 렉스(Rex) 함께 데이 트립을 가기로 한 토요일 오전이다. 평소 오전 열 시까지 침대에서 나오지 않는 내게는 다소 무리가 있는 오전 여덟 시 픽업. 아이폰 알람 설정 여섯 개. 다행히 픽업 약속시간을 지켰다.


대신 몸이 잠에서 완전히 깨지 않아서 자동차 안에서 반갑게 대화를 시작하는 그에게 평소처럼 적극적으로 반응하기가 어려웠다. 에너지가 다운되어 있는 것이었겠지. 대략 한두 시간은 웜업 시간이 필요한 데 게다가 커피 내릴 시간이 없었구나. 일전에 챙겨준 나의 핸드 드립 커피 맛을 기억하곤 일부러 아침 커피를 생략했다는 그. 아참, 내가 커피를 내려오겠다는 이야기를 한 걸 깜빡했구나.


성격 좋은 그는 가는 길에 샌프란시스코의 카페에 들러 커피를 테이크 아웃으로 픽업하자고 했다. 나는 커피 마시는데 깐깐한 편이다. 내 입맛에 맞지 않으면 마시지 않는다. 그의 차에 동승 중이라 내 취향을 고집하지 않기로 마음을 잡고 그가 하자는대로 따르기로 했다.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비즈니스 서비스 평가 앱, Yelp를 통해 찾은 카페 Ballast. 도착하고 보니 예전에 내 전 남자 친구가 살던 집이 위치한 West Portal 동네이다. 결별후 발을 끊었던 동네라 거의 십년 만이다.


카페 문을 열자마자 난 거의 즉각적으로 이 곳이 마음에 들었다. 누가 예술가 아니랄까 봐 오감이 예민한데 특히 시각적으로 예민한 내게 내부 인테리어와 가구 및 소품들 뿐만 아니라 카페 손님들 및 바리스타의 의상 및 그들의 움직임을 포함한 전체 분위기를 순식간에 스캔한 것이다. 곧 호기심이 발동하고 카페의 곳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Cortado 커피를 주문했다. 로컬 아티스트들의 작품 전시를 했던 흔적이 남아있다. 야외 테라스 공간도 아기자기 예쁘다. 테이크 아웃 커피를 픽업한 뒤 렉스와 나는 그의 차로 돌아가는 대신 커다란 통창문 옆 아름다운 나무 테이블에 나란히 앉았다.


테이블 건너편에는 이십대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우베 라테를 마시고 있었다. 연보라색 라테의 컬러가 예뻐서 말을 건넸더니 그녀는 미소를 띠고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료라고 한다. 스페셜 음료 메뉴에 포함되어 있던 것인데 궁금했으나 평소 익숙한 커피를 주문했다고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Ice breaking이 그렇게 시작되었지. 엷은 갈색 눈동자를 지닌 그녀의 블론드 머리카락은 웨이브가 있다. 뽀오얀 우윳빛 같은 그녀의 얼굴 코 주변에 주근깨가 귀엽다. 복숭아처럼 붉은 그녀의 볼이 사랑스럽다. 이내 그녀에 대해 관심이 생기고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옆모습 앞모습을 관찰하며 프로필이 아름다워 스케치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녀가 나와 렉스가 어디서 사는 지 어떻게 만났는 지 묻는다. 아마도 우리가 데이트하는 연인이라고 짐작한 걸까?


렉스가 순간 나를 바라보는데 나는 그녀에게 우리는 많은 이들이 그렇듯 데이팅 앱을 통해 만났고 가까운 동네에서 산다고 대답했다. 굳이 우리 사이가 어떤 지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없겠다 생각한다. TMI (Too Much Information)일 수 있으니. 그녀은 대학에서 만난 파트너와 재팬타운에서 산가고 한다.


그녀의 이름은 레미(Lemmy). 하와이 출신으로 25% 일본인의 혈통 그 외에는 다양한 유럽계 혈통이라고 한다. 다소 신비롭고 이국적으로 느껴진 게 그래서였구나. 아시안계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초등학생들 공부를 도와주는 튜터로 출근하기 전에 카페에 들른 것이란다. 내가 서울에서 이십 년 가까이 강사 또는 선생님으로 일했었다고 하니 그녀가 반가워한다.


렉스가 내가 화가라고 이야기하는 순간 그녀의 동공이 확장되면서 눈망울이 순간 반짝였다. 그녀는 미술 대학을 졸업했단다. 곧 내 작업의 미디엄이 무엇인 지 전시회를 하는지 등등에 대하여 묻는다. 그리고는 그녀는 나의 전화번호를 알고 싶다며 내게 괜찮겠는지 물었다. “Absolutely!”. 당근이지!라고 나는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안그애도 내가 그녀와 연락초를 교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렉스에게 부탁해 그녀와 함께 사진을 찍었고 나는 그녀에게 곧 문자로 사진을 보냈다. 대화하는 내내 그녀가 친절하고 유쾌하며 호기심이 많고 열린 마음을 가진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SFMoMA) 예술 작품을 감상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틀 뒤에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고 그녀는 다음 날 답신을 했다. 우리는 다음 주 목요일에 만날 것이다. SFMoMA 멤버십이 있는 내가 그녀에게 티켓을 선물할 계획이다. 새로운 만남이 설렌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새로운 이를 카페에서 만나서 연락처를 나누고 다시 개인적으로 만나게 되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서 사는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이들은 에어팟을 끼고 노트북 또는 스마트폰에 거의 얼굴을 묻고 있기 마련이다. 대화를 부르는 제스쳐와는 동떨어진 것이지. 아티스트는 아티스트를 알아보는 걸까? 이러한 경험이 간혹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레미와의 아트 데이트가 기다려진다. 우연히 일어나는 만남은 없지 않을까.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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