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예술가 라이프

“자동차없이 어떻게 살아요?”

by Athena Kim

나는 운전을 할 줄 모른다. 오십이 되도록 운전면허를 아직까지 따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 동창들은 한창 운전면허 학원에 수강하고 대학입학에 한껏 들떠 있을 시기에 나는 아버지의 학대를 피해 맨 몸으로 집을 나왔다. 이후 서울에서 혼자 수십 년 간 생존하느라 고군분투하며 세월이 흘렀다. 살아남은 게 실로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에서 거주하는 한국인을 포함한 대부분의 거주자들은 운전을 한다. 차량소지를 하지 않더라도 운전면허증 소지하고 운전을 할 줄 아는 분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건 홈리스 분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미국인들과 이민자들도 그렇다. 우버나 리프트 같은 공유 차량 서비스 앱은 위기상황을 대비해 앱을 설치해 두었다. 과거 응급실에 갈 때에 유용하게 사용하였다.


외로운 이민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손쉬운 자기 돌봄의 방법 가운데 하나는 한국 음식을 먹는 것이다. 한국 식당을 찾기 위해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고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지닌 팔 년간 혼자서 외식한 적이 없다. 강구책으로 한국 슈퍼마켓에 대중교통 이용 또는 미국 지인의 라이드 (ride)를 받아 장보기를 하고 집에서 손수 요리해 먹는다. 라이드 해준 지인에게는 정성들여 구운 케이크와 손수 지은 한국 및 캘리포니아 퓨전 집밥을 대접한다. 가는 정이 고와야 오는 정이 곱다고 했쟎은가.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서 가성비를 따지고 스스로 해결하는 오랜 훈련이 되어 있어 큰 도움이 된다.


식당에서 먹는 한식은 짜고 맵고 달며 자극적이기 때문에 내 입맛에 맞질 않고 무엇보다 내 주머니 사정에 맞질 않는다. 매일 요리하고 설거지 하고 정리하는 것이 귀찮을 때가 종종 있다. 당연히 여겼던 어머니의 노고가 새삼 기억되며 철없던 오린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 나도 과거 어머니 나이가 돼 보니 비로소 조금씩 어머니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미 돌아가신 지 십육 년 된 어머니가 해주시던 집밥과 반찬들이 매일 그립고 생각난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그 맛과 비슷하게 만들려고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데 여의치 않다. 하지만 내가 짓는 음식이 참 맛있고 내가 스스로 나를 보살필 수 있음에 감사하다. 심하게 아파서 물 한 모금 넘길 수 없을 때가 과거 수차례 있었다. 혼자서 음식을 떠먹을 수 있는 것은 기적이고 감사한 것이다. 나 스스로의 힘으로 그림을 팔아 돈을 벌어 마켓에 장보기 하러 가서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살 수 있는 여건이 된 것 또한 무척 감사하다.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에는 식당이 즐비하다. 한국 식당들도 곧잘 찾기 어렵지 않고 먹거리가 넘친다. 김치찌개 하나 시키는데 한화로 사만 원 가까이 되고 팁도 최소한 15%는 주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에 지난 팔 년간 살면서 한국 식당에서 외식한 적이 단 한 번 없다. 장점은 같은 돈이면 내가 발품을 팔아서 한국 슈퍼마켓에 가서 재료를 사서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게 더 맛있고 건강에 좋고 가성비가 우수하다. 단점은 체력이 우수하질 못하고 노화의 속도가 가속화되어서 장보기를 하러 혼자 버스를 타고 다녀오면 다음 날까지 지쳐서 회복이 필요하다. 버스운행은 종종 지연되거나 취소되어서 차로는 십오 분 거리가 버스로는 한 시간 이상이 걸리기 십상이다. 기동력과 시간효율성을 고려해 운전면허를 따고 중고차라도 사서 운전하라는 조언을 들었으나 부대비용을 감당할 경제적 여유가 현재로서는 없다.


“어떻게 먹고살아요?”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이 적절히 되는 것인 지 모르겠다. 짧게 대답하자면 “어쩌다 보니 어떻게든 버티고 있네요.”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림 주문 및 판매를 통한 수익으로는 살인적인 월세와 생활비 그리고 비싼 미술 재료비를 감당하는 것이 무척 어렵다. 팔 년 전 페이스북을 통해 연락한 미국인에게 그림을 미화 천 불에 처음으로 판매한 이후 거의 매년 작품당 수천 불에서 최대 사만 불을 받고 판매하여 위태한 힘든 고비를 수십 차례 넘겨 현재에 이르렀다. 건강 악화로 목돈이 급히 필요할 시기에 현금을 기부한 내 작품 소장가들을 비롯하여 미국인 지인들이 있었고 틈틈이 아기 보기를 비롯하여 한국어 가르치기, 통역하기, 반찬 만들어 팔기, 찹쌀떡 케이크 구워 팔기, 한국 요리 그룹 레슨 등에 이르기까지 기회가 되는대로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죄를 짓는 것이 아니면 뭐든지 해야하지 않겠는가.


생전에 화해하지 못한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오늘 저녁 김치 두부 스튜를 한 솥 끓여 뒷 뜰에서 귀뚜라미 울음 소리를 들으며 눈물 세 방울과 함께 맛있게 먹는다.